李 한마디에 흔들린 판…8조 KDDX, 경쟁입찰로 뒤집혀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5.12.22 18:28  수정 2025.12.22 19:17

장기 표류 뒤 지명경쟁으로 방향 전환

수의·공동설계 대신 경쟁입찰 택해

보안 감점 적용 여부가 승부 가를 변수

한국형 차기 구축함 조감도(KDDX) ⓒHD현대중공업

1년 6개월 넘게 표류해 온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방식이 지명경쟁입찰로 결정됐다. KDDX 사업이 다시 출발선에 선 가운데 당사자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의 표정은 엇갈리고 있다. 사업자 선정 시점이 내년으로 넘어가면서 해군 전력화 일정이 추가로 늦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방위사업청은 22일 방위사업추진위원회(방추위)를 열고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를 지명경쟁 방식으로 선정하기로 의결했다. 방사청은 국가계약법에서 정한 일반 원칙을 준수하고 사업 참여 기회를 폭넓게 보장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반영됐다고 설명했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톤(t)급 이지스 구축함 6척을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해군 주력 전력 사업이다. 선체와 전투체계,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산화하는 첫 구축함 사업으로, 해군 기동함대 전력의 핵심 축으로 평가받는다.


함정 건조 사업은 개념설계, 기본설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후속함 건조 순으로 진행된다. KDDX 사업에서는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개념설계를, HD현대중공업이 기본설계를 맡았다. 기본설계는 2023년 12월 완료됐지만 이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단계로 넘어가지 못한 채 사업은 장기간 정체됐다.


사업자 선정 방식은 그간 수의계약, 경쟁입찰, 공동설계 등 세 가지 안을 놓고 논의가 이어졌다. 기본설계를 맡은 HD현대중공업은 함정 사업 관례와 기술 연속성을 근거로 수의계약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반면 개념설계를 수행한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군사기밀 유출 사건을 지적하며 정당성을 이유로 경쟁입찰 필요성을 주장해 왔다.


방사청은 최근까지도 기술 연속성과 납기 관리 측면에서 기본설계를 수행한 HD현대중공업과 수의계약을 맺는 방안을 가장 효율적인 시나리오로 검토해 왔다. 해군이 운용 중인 광개토대왕급 구축함(DDH-I) 3척 등 최소 6척이 2028년부터 2032년 사이 퇴역 예정인 점을 감안한 판단이었다.


다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충남 천안 타운홀 미팅에서 “군사기밀을 빼돌려 처벌받은 곳에 수의계약을 주느니 하는 이상한 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수의계약을 선택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이 특정 기업명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기존 수의계약 논의에 제동을 건 발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한화오션

지명경쟁입찰 방식이 확정되면서 향후 쟁점은 평가 과정에서 보안 감점이 적용될지 여부다. HD현대중공업은 과거 군사기밀 유출 사건과 관련해 1.8점의 보안 감점을 받은 바 있다. 방사청은 추가 감점 적용 여부를 놓고 내부 검토를 진행 중이다.


이에 대해 방사청은 단정적 해석을 경계했다. 방사청은 “KDDX 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대한 보안 감점 적용 여부를 결정한 바 없으며 현재 관련 사항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며 “보안 감점이 확정적으로 적용된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고, 제안서 평가는 관련 절차에 따라 공정하고 신중하게 판단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상혁 방사청 함정사업부장 직무대리는 방추위 이후 백브리핑에서 “이번 결정을 근거로 선도함 건조 기본계획을 다시 수립해 방추위에 상정해야 한다”며 “제안요청서 작성과 입찰 공고, 협상 절차를 거쳐 늦어도 내년 연말까지 계약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사업 당사자인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방추위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간 지켜져 온 원칙과 규정이 흔들린 데 대해 아쉽게 생각한다”며 “결정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향후 절차가 법과 원칙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한화오션 관계자는 “KDDX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자 선정방식이 이제라도 결정된 것은 다행스러운 결과”라며 “한화오션은 향후 KDDX 사업 수주를 통해 대한민국 해군력 증강에 기여하고, 2030년대 K-해양방산을 이끌 수 있는 명품 함정을 건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선 지명경쟁입찰 방식 확정으로 사업이 재개 국면에 들어섰지만 실제 전력화 지연을 얼마나 최소화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입찰 이후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을 경우, 해군 전력 공백 논란이 다시 불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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