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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③] 밴드 줄리아하트, 멜로디에 깃든 가사의 미학


입력 2020.04.08 10:58 수정 2020.08.05 15:19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정규 7집 앨범 'FARAWAY', 3월 27일 발매

코로나19로 콘서트 연기, 추후 공연 일정 미정

ⓒ줄리아하트 ⓒ줄리아하트

‘지금’을 기록한다는 건은 아티스트가 누릴 수 있는 특권 중 하나다. 안타깝게도 현 가요계에서는 가사 자체의 매력을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후크송, 콘셉트송이 쏟아지면서 가사 자체가 아닌, 중독적인 멜로디에 활자를 끼워 맞추는 형식의 곡들이 난무한다. 그래서 밴드 줄리아하트의 노래가 더 반갑다.


줄리아하트는 2000년대 언니네 이발관의 기타리스트 정대욱(정바비)을 중심으로 뭉친 밴드다. 올해로 벌써 20년차 밴드가 된 이 팀의 8할은 가사에 있다. 프론트맨 정바비의 노랫말은 하나의 단편 소설 같은 수려함과 섬세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지난달 27일 내놓은 정규7집 ‘FARAWAY’은 정바비는 물론 김나은, 유병덕 등 멤버들의 색깔도 함께 어우러지면서 음악 속의 읽을거리가 더 풍성해졌다. 비단 가사 만이 아니라 곡의 제목, 띄어쓰기 하나까지도 말을 고르고 골라 만들어낸 흔적이 역력하다. 고작 띄어쓰기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작은 차이가 때로는 큰 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D. 새 앨범 ‘FARAWAY’가 나왔다.


바비: 보통 음반작업이 한차례 끝나면 쉬고 싶다는 기분이 드는데 이번엔 다르다. 빨리 다음 앨범 작업을 하고 싶다.


병덕: 노래를 만들고 편곡하고 녹음하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지만 많은 앨범 작업을 해서 그런지 이제 전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그래서 특별한 감정이 들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앨범을 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싱글과는 무게감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족한 나와 늘 함께해주고 이끌어준 바비형, 나은, 무곤, 주식이형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장 크다.


D. 싱글로 냈던 앨범들을 제외하면 2년 반, 햇수로는 4년 만에 나온 앨범이다.


바비: ‘서교’ 작업 당시 마지막 앨범이라고 얘기한 적은 없었지만, 내심 ‘줄리아 하트의 마지막이 있다면 이 앨범이 가장 어울리겠다’고는 생각했다. 솔직히 그 이후에 ‘어떤 걸 하고싶다’ 그런 게 딱히 없었다. 그저 지금 멤버들과 같이 하는 게 즐겁고 자주 볼 일을 만들고 싶다는 마음이 첫째였고, 그러다보니 앨범이 있어야겠다 싶었다.


병덕: 6집과 7집 사이 ‘징글걸’ ‘Kiss’(winter ver.) 그리고 ‘Best summer ever’ 싱글을 냈지만 긴 이야기를 하기는 조금 힘들었다. 발표 이후 따르는 공연을 할 때도 정규만큼 힘을 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정규앨범은 그런 부재를 충족시켜주지만 그만큼 오래 걸린다고 생각한다.


D. 6집 음감회에서 “초기곡까지 탈탈 털어 사용해서 남은 게 없다”고 했는데?


바비: 자연스럽게 곡이 나올 때를 기다리다보니 오래 걸린 것도 있고 내 스스로가 ‘앨범 무드’로 들어서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녹음은 11곡을 했는데 나중에 앨범으로서 일관된 느낌을 해치는 거 같아서 2곡을 뺐다.


D. 앨범을 채워 넣는, 그리고 이후에 비워내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바비: 녹음까지 해놓고 뺀 적은 처음이었는데, 처음엔 반발 심리가 없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 앨범들이 다 그렇게 꽉꽉 채우는 풍조도 아니고, 나 역시 그렇게 긴 앨범을 통으로 잘 안 듣는다. 이번 앨범 러닝타임이 33분인데 이 정도가 딱 좋지 싶다. 예전엔 음반은 무조건 12곡이 들어있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게 뉴 노멀이다.


병덕: 녹음까지 다 해놓고 뺀 2곡은 어렵게 편곡하고 녹음한 곡이라서 언젠가 꼭 발표를 하고 싶다.


주식: 개인적으로는 덜어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 보니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다.


D. 이번 앨범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무곤: 밝은 분위기의 앨범이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잔잔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서 의외였다. 가장 좋았던 곡에 대한 의견이 갈렸던 것도.


주식: 지인 중 지난 앨범들에 대한 날선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분들이 “이번엔 괜찮네” 정도의 반응을 보여서 인상에 남았다.


D. 앨범 제목의 띄어쓰기를 두고 많이 고민했다고. 결국 돌고 돌아 결국 ‘FARAWAY’로 결정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


바비: ‘멀리’(FAR AWAY)는 방향성이고 ‘먼’(FARAWAY)은 그 결과인 현재 상태라고 생각했다. 그런 안도감을 담고 싶었달까. 1번곡에서는 방향성을 얘기하고 그 다음 곡들에서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마지막 곡이 끝나면 청자들이 슬픔으로부터 멀어지는 법에 대한 저마다의 답을 갖게 되길 바랐다. 그러면 그것이 먼 상태가 될 테니까. 조형적으로도 ‘FARAWAY’가 좋았다.


D. 무엇보다 제목들이 하나 같이 다 예쁘다.


바비: 보통 제목을 먼저 짓고 그 제목 자체가 가지는 힘이 하나의 노래를 추진해주는 과정을 즐긴다. ‘슬픔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본명 같은 별명’ ‘소꿉’이 그런 케이스인데 어울리는 제목을 찾아 오래 고민한 경우들도 있었다. ‘LUA’ ‘잘못된 게 아냐’는 녹음 막바지에 제목을 결정했다.


병덕: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작업할 때 부르는 제목과 앨범이 나온 후에 부르는 제목이 다른 경우가 꽤 많다. 이건 제목이 정해지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작업할 때 주고받는 음원의 파일명과도 관련이 있다. 예를 들면 ‘난 네가 우리집에서 제일 좋아’ 의 경우 ‘Home’이라고 칭하며 작업했다. 입에 익숙해진 제목을 버리고 새로운 제목을 지을 때 곡에 새 옷을 입혀주는 느낌이 든다. ‘밤산책’의 경우 끝까지 고민을 하다가 정했는데 많은 분들이 제목을 좋아해주셔서 기쁘다.


ⓒ줄리아하트 ⓒ줄리아하트

D. ‘밤산책’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제목, 가사 등 배경이 ‘밤’인데 부제에 ‘햇빛’을 사용한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가.


병덕: 코모레비(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는 밤에 존재 하지 않을 것 같지만, 복잡한 설렘의 감정은 어둠을 빛으로 바꾸고 해비(日雨)는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쏟아진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어둠인지 빛인지 모를 그것은 우리의 감정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해줄 것 같았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밤산책에서 어둠이 또 다른 빛이 되었을 때 어쩌면 낮보다도 더 커다란 황홀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D. ‘LUA’와 ‘PHO’가 각각 5,6 번 트랙으로 연달아 배치됐다. 연달아 듣게 되면 ‘LUA’의 화자를 처절하게 슬픈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바비: 처절하기까지… 그냥 미련이 있는 사람 정도인거 같다. 하하. ‘LUA’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곡이다. 가장 마지막에 만든 노래, 가장 금방 만든 노래이기도 하다. 꿈을 꾸다 깨어나서 한참 멍하니 생각을 하다가 일어나서 뭔가 홀린 것처럼 썼다. 가끔 한 대상에 대한 강렬한 상념에 의해 노래를 만들고 나면 그 곡이 그 사람이 준 선물처럼 느껴진다. 물론 마음고생은 좀 해야 한다.


D. ‘슬픔으로부터 가능한 멀리 가겠다’ ‘함께 걸은 밤의 안개는 기억할 수 있다’ 등의 가사들이 참 묘하다.


바비: ‘슬픔…’은 가사를 많이 고쳤다. 첫 번째 버전은 완전히 중증 우울증에 관한 내용이었다. 전혀 슬픔으로부터 멀리 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라 대폭 희망적으로 고쳤다. 창문도 열고 외투도 벗고 그렇게. 그렇지만 여전히 최초 버전의 그림자는 어른거리고 있어서, 그런 어딘가 얼기설기한 느낌이 나름대로의 입체성을 부여하는 것도 같다. 내 지론 비슷한 건데, 사람과 노래는 어딘가 이상한 점이 있어야 매력적이다. 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D. 작가로서의 정바비와 밴드의 일원으로서의 정바비는 어떻게 다른가.


바비: 둘 다 술을 많이 마시지만 밴드의 일원으로서의 정바비가 좀 더 즐겁게 마신다.


D. 정바비는 줄리아하트 외에도 가을방학, 바비빌에서도 작사·작곡을 맡고 있다. 곡 작업을 할 때 팀별로 차별성을 염두에 두고 있을지도 궁금하다.


바비: ‘차별성을 두고 싶다-두지 말자-그래도 두자’의 변증법적 과정을 지난 십 수 년간 거치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는 김나은이 프로듀서로 대폭 참여했다. 줄리아하트 앨범에서 다른 멤버와 공동 프로듀스한 것은 처음이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 앨범에서는 더 깊이 관여할 거 같고 그 과정을 기대하고 있다.


D. 이제 줄리아하트의 다음 앨범은 또 몇 년 후에나 들을 수 있을까.


바비: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 이맘때.


D. 관객 수보다 공연에서 부르는 곡 수가 더 많았다고 하소연했던 때도 있었는데, 올해 20주년을 맞았다. 축하드린다.


바비: 내가 제작을 겸하고 있는데, 제작자로서 장부 재무지표를 보고 있으면 이 팀은 계속 음반내주면 안 되는 게 맞긴 하다.


D.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팀을 유지해 오면서 많은 변화들도 있었을 것 같다.


바비: 4집까지 매 앨범 멤버가 달랐다. 3집에서는 심지어 나 혼자 있었는데, 드럼 필인 하나까지 다 프로그래밍해서 재현했다. 그런 시간들이 있어서인지 보상처럼 지금 라인업이 갖춰지지 않았나 싶다. 한 명 한 명이 각자 흥미롭고 좋고 재미있는 사람들인데 5명이 다 같이 있을 때는 그 5배 이상으로 좋다. 이래서 그만둘 수가 없다.


무곤: 밴드에 참가하게 된 후 개인적인 인생의 큰 변화들 속에 줄리하하트는 항상 존재했고, 이제는 내가 뭔가 큰 역할이나 중심이 아니더라도 길게 호흡하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물론 살아남아야겠지만.


D. 20년 후의 줄리아하트를 상상해 보자면?


바비: 솔직히, 2020년에도 인디밴드를 하고 있을 거라 상상도 못했다. 지금 무엇을 상상해도 20년 후의 모습과는 다를 것 같다. 그래서 상상보다 바람을 한다. 지금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느낌들을 그때도 소중하게 생각하기를.


무곤: 간만에 모여 각자 즐겨듣는 곡들 골라 와서 합주하고 뒤풀이하고 있지 않을까.


나은: 똑같을 것 같다. 지금처럼 건강하진 않겠지만.


주식: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많은 시도를 해왔고, 그때까지 하지 않았던 일을 시도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병덕: 지금도 곡이 많지만 그 땐 더 많아져서 셋리스트를 정하기 힘들어하지 않을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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