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 선수 유출’ 셀링리그와 허무리그 사이

데일리안 스포츠 = 임정혁 객원칼럼니스트

입력 2015.07.11 09:27  수정 2015.07.12 10:01

득점왕 에두 이어 수원 정대세까지 K리그 떠나

해외 부자 구단들과 맞설 자생력 키워야

K리그는 정대세, 에두 등 해외 리그로 선수를 빼앗기고 있다. ⓒ 연합뉴스

자고 일어나면 K리그가 괴롭다. 거대자금을 등에 업은 중국 슈퍼리그가 K리그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최용수 FC 서울 감독을 노렸던 것은 감독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일종의 경고였다. 시즌 중에도 얼마든 대형 팀의 감독을 돈으로 뺄 수 있다는 계산이 깔린 행동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쓴 메르스 공포가 중동발 미지의 감염병이 앞으로도 속출할 수 있다는 무언의 메시지였다면 최 감독을 향한 장쑤 세인티의 구애는 '선수든 감독이든 중국이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 돈으로 데려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의리를 택한 최용수 감독의 '로맨스'가 아니었다면 이런 현상은 더욱 빨라졌을 것이다. 지금은 그 속도가 잠시 늦춰졌을 뿐이다.

몇 년 전부터 K리그 선수를 빼가던 중국의 행보는 더욱 불이 붙었다. 아무나 입맛에 맞으면 푹푹 찔러보는 형국이다. 결국 지난 8일 전북에서 뛰던 에두가 중국 갑리그(2부리그) 허베이 종지와 계약했다. 1위팀 전북에서 리그 득점 선두(11골)를 달리는 선수마저 속수무책으로 내준 셈이다. K리그와 팬들은 단순히 외국인 선수 하나 지키지 못한 것 이상으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다.

선수 입장에선 이리저리 따져 봐도 떠나는 게 당연하다. 똑같은 축구를 하면서 더 많은 돈을 받길 원하는 건 모든 이의 꿈이다. 특히 축구 선수는 돈을 벌 수 있는 기간이 제한돼 있으며 더군다나 에두는 외국인 선수다. 거대자본 속에서 한 줄기 희망과도 같은 의리나 명분의 '로맨스'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에두의 이적에 앞서 정대세를 뺏긴 점은 그래서 더 아프다. 중국도 아닌 일본 J리그 하위권 팀인 시미즈 S펄스에 선수를 내주고 말았다. 정대세는 올 시즌 수원에서 6골 5도움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수원도 2위를 달렸다. 수원 팬들 앞에서 선보인 염기훈과의 호흡은 정대세를 한 차원 높은 선수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이 모두 비즈니스가 가미된 축구 산업적인 측면에선 효용 가치가 후순위로 밀렸다. 수원이 재계약에 머뭇거리는 사이에 정대세는 더 나은 계약조건을 시미즈에서 찾았다. 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팬들은 숙연했고 정대세도 그 앞에선 아쉬워했다. 그러나 "남은 축구인생을 시미즈에 바쳐 나 자신을 희생하겠다"는 게 이적 이후 정대세의 출사표다. '차'도 떼이고 '포'도 떼인 K리그의 팬들은 이 안에서 일종의 허무함을 느꼈다.

최근 K리그의 선수 이탈을 보며 일각에선 "이러다 셀링 리그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을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셀링 리그와 그저 선수를 뺏기기만 하는 '허무 리그'는 다르다. 둘 사인엔 선수가 떠난 빈자리와 빈틈을 어떻게 채우느냐 하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셀링 리그는 선수를 내준 뒤 얻은 이적료나 부산물을 재차 구단과 축구 저변에 투자하는 걸 기본으로 한다. 그 이상의 것을 취하겠다는 적극적인 태도다. 유소년 시스템을 더욱 다듬거나 값싼 몸값의 선수를 발굴해 키워내는 것이 셀링 리그의 필수 요소이자 자존심이다.

흔히 셀링 리그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네덜란드 프로축구리그 '에레디비지에'나 포르투갈 프로축구리그 '프리메이라리가'에서는 "여기에서 잘하면 최상위권 리그의 선수가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있다. 네덜란드나 포르투갈의 어린 선수들이 자국 리그의 유소년 시스템도 전부 거치지 않고 외국으로 떠나는 사례가 적은 이유다. 이곳의 뛰어난 선수들 대부분은 자국 유소년 시스템에서 실력을 갈고닦은 뒤 성인 리그 활약 이후 다른 리그로의 진로를 모색한다. 이런 점은 K리그에도 시사하는 바가 있다.

사실 K리그를 산업적 측면에서 보면 지금과 같은 선수 이탈은 언젠간 왔어야 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축구는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공통분모가 충분한 스포츠다. 유럽 빅리그부터 동남아 최하위 리그까지 선수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다양하다. 그런 넓은 시장성을 뒤로하고 K리그 구단들은 지금까지 기형적으로 유지됐다. 자생력이 없으면서 기업들로부터 스폰 개념의 운영 자금을 받아 버텨왔다.

이참에 체질개선을 전면에 내걸고 구단들의 자생력부터 키워야 한다. 그 과정에서 파열음과 잡음은 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해외 여러 구단과 맞설 수 있는 기초체력부터 다져야 한다. 그건 팬들의 충성도라든지 리그 전체를 향한 애정이라든지 다양한 대안으로 나올 수 있다. 지금 당장 선수들 연봉 공개의 부작용이나 여타 다른 것들을 지적하는 건 일시적인 마취제에 불과하다.

차라리 K리그는 인정할 부분을 인정해야 할 때다. 그 대신 선수들이 떠나고 남긴 작은 것들을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쏟아 붇겠다고 팬들과 약속해야 한다. 그래야 허무하게 선수만 뺏기는 허무 리그에서 벗어나 셀링 리그를 거쳐 내실 가득한 리그로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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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혁 기자 (bohemian1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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