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우승→박근혜 당선?’ 우연한 상관관계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입력 2012.12.21 08:53  수정

KS 우승 연고지서 당선인 배출

6차례 선거 중 3차례 '반타작'

역대 대통령 당선 여부와 프로야구 우승팀의 상관 관계가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일부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의 우승과 관련, 박근혜 후보가 당선될 것이란 우스갯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역대 대통령 당선인의 출생지와 한국시리즈 우승팀 연고지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이 대통령 선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었고, 그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 그저 우연의 일치로 생각하면 된다. 게다가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여섯 차례 치러진 대선에서 이와 같은 공식이 정확히 맞아떨어진 사례는 절반인 세 차례에 불과하다.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 박근혜 당선인은 지난 1952년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에서 출생했다. 이후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대구를 떠났지만 정계에 입문한 뒤 1998년 재보궐선거(15대 국회의원)부터 18대 총선까지 무려 14년간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경북을 연고로 한 프로야구팀은 삼성. 삼성은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지기도 했지만 투타 전반에 걸친 안정적인 전력을 바탕으로 성적을 끌어올렸고, 결국 정규시즌 1위를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 3년 연속 만난 SK를 상대로 4승 2패의 우위를 점하며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우승의 금자탑을 세웠다.

현재 국정을 수행 중인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이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한 해는 2007년으로 SK 와이번스가 2패 후 4연승으로 첫 우승을 차지했을 때다. 인천이 연고인 SK와는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당시 SK는 ‘야신’ 김성근 감독(현 고양 원더스)이 이끌던 때였다. 재일교포 출신인 김 감독의 출생지는 잘 알려진 대로 일본 교토다. 게다가 두 사람은 태어난 시점도 비슷하다. 이 대통령은 1941년 12월 19일생이며, 김 감독은 1942년 12월 13일에 태어났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월드컵이 열렸던 2002년 대선에서 승리했다. 당시에는 이승엽과 마해영의 홈런을 앞세운 삼성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때였다. 경남 김해가 고향인 노 전 대통령과 대구가 연고인 삼성은 다소 거리 차가 있지만 같은 영남권이라는 부분에서 공통분모를 형성한다.

특히 2002년에는 야구를 포함해 각종 프로스포츠 분야에서 영남권 팀들의 강세가 두드러졌다. 프로농구에서는 대구 동양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가 2001-02시즌 통합 우승에 이어 2002-03시즌에서도 정규시즌 1위에 올랐고, 프로축구 K-리그에서는 울산 현대가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하기도 했다.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의 승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전남 신안군 하의면 출신의 김 전 대통령은 오랜 야당 생활을 겪었고, 4번째 도전 만에 대권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이해에 프로야구 우승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해태 타이거즈였다. 앞서 해태는 80년대와 90년대 초반 팀의 중흥을 이끌던 주축 선수들이 은퇴를 했고, 급기야 ‘무등산 폭격기’ 선동열의 일본 진출로 전력 구성에 애를 먹던 시기였다.

하지만 김응용 감독(현 한화)의 지도력과 이종범, 이강철, 이대진 등의 맹활약을 앞세워 1996년과 1997년, 2연패에 성공하게 된다. 특히 1997시즌 우승은 해태 왕조의 마지막을 알리는 상징적인 해이기도 했다. 당시 해태의 어려운 상황은 ‘인동초’ 김 전 대통령과 닮아 있기도 했다.

역대 대통령 당선연도와 그해 한국시리즈 우승팀.

경남 거제 출신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됐던 1992년에는 부산을 연고로 한 롯데가 우승을 차지한 해이기도 했다. 당시 롯데는 김민호, 김응국, 박정태 등 무려 5명의 3할 타자를 배출해내며 소총부대의 위력을 떨친 바 있다.

무엇보다 롯데가 우승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부산고 출신의 고졸신인 염종석이 혜성처럼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정규시즌서 무려 204.2이닝을 던지며 17승 9패 평균자책점 2.33을 기록한 염종석은 포스트시즌에서도 삼성과 해태, 빙그레를 잇따라 격파하며 우승의 수훈갑이 됐다.

1987년은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치러진 대통령 선거였다. 당선자는 이른바 ‘3김’을 꺾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었다.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은 경북 달성으로 이해 우승한 해태 타이거즈와 무관하다.

그러나 해태 말고도 주목해야할 팀이 있다. 바로 전기 및 후기 리그를 우승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이다. 당시 MVP 장효조와 홈런왕 김성래, 타점왕 이만수 등을 앞세운 삼성은 팀 타율 3할(0.300)이라는 가공할 공격력을 선보였다. 여기에 마운드는 23승을 올린 에이스 김시진이 버티고 있었다.

물론 정규시즌 성적이 포스트시즌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삼성은 플레이오프서 OB를 3승 2패로 물리치고 올라온 해태에 4전 전패를 당했다. 특히 한국시리즈 MVP였던 해태 김준환에게 3차전 역전홈런과 4차전 결승타를 내준 것이 뼈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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