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북 군부 '머리에 쇠똥도 안마른' 김정은 절대 신임 불투명
김정일 후광효과 미약 북 주민들 '충성도' 낮아 '과도체제' 가능성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올해 나이 69세. 물경 37년 동안 절대 권력을 휘두르며 북한을 철권통치해온 김정일은 수백만 북한 주민들을 집단 아사시키고 독재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온 나라를 감옥으로 만든 민족 반역자였다.
판문점 도끼 만행과 버마 아웅산 묘지 폭탄테러, KAL기 폭파에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 천안함 폭침에 이은 연평도 포격 등 무자비한 대남 도발로 수많은 동족을 살해한 전범이었다. 두 차례에 걸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국제사회(UN)의 제재를 받은 악의 전형이었다. 그런 김정일이 마침내 사망했다.
김정일은 1961년 김일성종합대학 경제학부 정치경제학과 1학년 때 노동당에 입당했다. 그리고 대학 졸업 직후인 1964년 6월 중앙당 조직지도부의 지도원이 됐으며, 이어서 당중앙위원회 지도원, 과장, 부부장, 부장을 거쳤다. 1969년 9월에는 권력의 핵심 요직인 당 조직지도부 부장을 꿰찼다.
그는 1972년 10월 노동당 중앙위원에 선출되고 다음 해 9월 당 중앙위 서기국 서기 자리에 올랐다. 이 때 후계자로서의 기반을 다졌고 1974년 2월 당 정치위원회 위원(현 정치국원)이 되면서 후계자로서의 지위를 굳혔다. 이후 북한 권력을 장악해 나가다가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자 명실상부한 북한의 제1인자가 되었다.
그러나 2008년 9월 9일 북한 정권 창설 60주년 기념행사에서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지는 운명적 위기를 맞았다. 갑작스런 건강 악화에 겁을 먹은 김정일은 그때부터 권력세습을 서둘렀고, 죽기 전까지 후계체제 권력기반 구축에 안간힘을 썼다.
그러던 중 눈앞에 얼씬거리는 사신(死神)의 그림자를 느꼈음인지 2009년 1월 3남 김정은을 후계자로 내정하고 권력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마침내 2010년 9월 28일 당 대표자회에서 27살 난 애송이 김정은에게 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란 버거운 모자를 억지로 씌워 권력승계 예정자로 공식 등장시켰다.
김정일은 2008년 뇌혈관계 질환으로 쓰러진 뒤 끊임없는 건강 이상설로 시달림을 당해야만 했다. 이를 없애려고 때론 자신이 건재함을 연출까지 해 보였지만 다가오는 사신(死神) 앞에선 절대 권력도 무위였다. 그리고 마침내 2011년 12월 17일 오전 8시 30분 불귀의 객이 되었다. 이로써 김일성-김정일 2대에 걸친 북한의 왕조체제는 종말을 고했다.
그리고 일단은 표면상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3대 왕조시대의 막이 서서히 오르고 있다. 지난 19일 조선중앙방송은 김정일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존경하는 김정은 지도자의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자"고 말해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그 첫 번째 시그널로 김정은이 232명으로 구성된 김정일 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새로 시작되는 김정은 시대는 불안하고 위태롭기 그지없다. 세습후계 체제가 미처 뿌리도 내리기 전에 김정일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갓 28세다. 북한 주민들의 표현에 따르면 아직 머리에 쇠똥도 마르지 않았다. 시대적 상황도 지난날 김일성이 죽고 난 뒤 김정일이 북한을 통치하던 그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국 AP통신은 "김정일의 사망 소식은 그의 아들에게 권력을 넘기려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전함으로써 김정은 후계체제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정을 암시했다.
김정일이 후계자 수업을 받던 1970년대는 냉전시대로 소련과 중국 등 우방의 확고한 정치 군사적 지원이 뒤따랐었다. 북한의 경제사정 또한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 지금 북한의 형편은 말이 아니다. 화폐개혁 실패로 주민들의 불만은 하늘을 찌른다. 그래서 ‘김정일의 건강 악화와 생존 기간 여부가 김정은 후계체제의 안착 변수’라는 말이 나왔고 ‘김정일이 3년만 더 살았어도’라는 얘기가 나온다.
김일성의 절대적 후광과 당 이론 수립, 그리고 청년층 장악이란 3가지 요소를 등에 업고 김정일이 완전한 권력을 장악하는 데 걸린 시간은 10년도 더 됐다. 그렇게 놓고 볼 때 김정일 사망 이후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는 결코 순탄치만은 않아 보인다. 김정일의 권력 승계 과정과 비교할 때 김정은의 권력 승계는 훨씬 더 어려운 과정을 겪게 될 것이란 분석이다.
우선 북한 군부의 김정은에 대한 절대적 신임 여부가 아직은 불확실하다. 당내 기반도 확실치 않다.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 군사위원회 부위원장이 당을 장악하고는 있다지만, 그가 김정일만큼의 후광 효과를 발휘해 줄지 아직은 미지수다. 더구나 북한 주민들에 대한 김정은의 영향력도 김정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설사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가 북한 권력층 내부에서 합의되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다. 표면상으론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 모양새가 드러나 보이기는 하겠지만 내면적으론 군부를 중심으로 당과 행정테크노크라트들이 연합하는 집단지도체제로 갈 가능성이 짙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지난해 6월 7일 열린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2기 3차 회의에서 김정일의 매제 장성택이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승진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후계구도를 사실상 장성택에게 맡긴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일각에서는 장성택의 부상(浮上)을 놓고 김정은이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김정일 유고시 장성택에 의한 ‘과도기적 통치’가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다. 어린 나이와 경험 부족으로 김정은이 본격적인 통치를 하기에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많다. 따라서 상당기간 원로 및 실무그룹의 후견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 해도 김정은이 수령절대주의의 정당성을 획득하지 못한 상황에서 향후 주요 엘리트와 부서 간 권력암투는 피할 길이 없을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야심가 장성택의 ‘수양대군 역할론’이다. 이와 함께 암암리에 중국의 지원을 받고 있는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 ‘옹립 대안론’이다.
북한 군부의 권력암투도 김정은 권력 승계의 변수다. 김정은 세습을 둘러싸고 그동안 북한 군부 내 신구세대 간 갈등이 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군부는 김일성 김정일 체제에서 성장한 세대들이 여전히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지만 김정은으로의 3대 권력세습을 주장한 젊은 강경 그룹이 치고 올라오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권력을 확고하게 구축하지 못했을 때 ‘군부 쿠데타’ 또는 ‘궁정 쿠데타’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어쨌거나 김정일이 사망하고 난 지금 김정은이 북한정권을 맡게 된 것은 분명하다. 동시에 북한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기의 벼랑 끝에 몰려 있음도 확실하다. 그러나 북한의 위기는 한반도의 기회일 수 있다. 우리는 김정일 사망으로 불안하고 위태로운 김정은 시대의 개막에 당면하여 위기에 처한 한반도 정세를 잘 관리해야 할 책무가 있다. 가깝게는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고 멀리는 민족 통일의 길을 열어가야 할 막중한 책무 앞에 섰다.
여기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고양이도 궁지로 몰리면 문다는 사실이다. 위기에 몰린 김정은이 체제 강화를 위해 대남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항존한다. 따라서 정부는 김정일의 급사로 인해 불안이 증폭된 한반도 안보 체제를 관리하는데 추호의 빈틈도 없어야 한다. 또한 있을지도 모를 급격한 북한 체제 붕괴에 대비하여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하면서도 차분히 대응해야 한다.
이제 한반도의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탈북자들은 김일성 사망으로 대한민국이 절호의 기회를 얻었으나 김대중 좌파정권이 김정일 정권을 살려줌으로써 기회를 잃었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는 북한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신중하고 치밀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부와 국민들 사이에 차이가 있을 수 없고, 여야의 구분도 있을 수 없다. 정부는 정부대로 주변국들과 협조하여 한반도 정세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국민들도 동요 없이 일치단결해야 한다. 그리하여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가야 한다
글/김영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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