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투자, '승부수'인가 '논란의 씨앗'인가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12.19 06:00  수정 2025.12.19 09:19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투자 구조 둘러싼 손익 배분·공시 논란

워런트·수수료 조건 놓고 법조계·주주 측 문제 제기 확산

고려아연 "미 정부 지원 대가일 뿐 경영권 영향 없다" 반박

신용평가사, 단기 부담 인정하면서도 중장기 전략성 병행 평가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과 장형진 영풍 고문. ⓒ데일리안 박진희 디자이너

고려아연의 미국 테네시주 제련소 투자가 ‘성장 전략’인지 ‘경영권 방어 수단’인지를 둘러싼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에 유리한 지분 인수권과 수수료 구조가 공개되면서, 사업 리스크는 고려아연이 부담하고 지배력은 외부로 넘어가는 구조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영풍·MBK파트너스는 공시와 절차를 문제 삼아 금융당국에 민원을 냈고, 법조계에서는 경영권 분쟁 국면에서 이런 구조가 현 경영진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해외 핵심광물 투자에서 통상적인 구조이며 경영권과 사업 주도권은 여전히 회사에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영풍·MBK파트너스는 지난 16일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민원에서 미국 제련소 투자와 연계된 신주인수권(워런트) 부여 구조와 수수료 조건이 주주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음에도 충분히 공시되지 않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민원에는 미국 정부가 주당 0.01달러에 최대 14.5%의 지분을 취득할 수 있고, 제련소 기업가치가 150억 달러(약 22조원)에 이를 경우 추가로 20% 지분을 취득할 수 있어 최대 34.5%까지 지분 이전이 가능하다는 점, 제련소 운영법인이 미국 정부가 최대주주인 합작법인(JV)에 연 최대 1억 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구조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영풍·MBK파트너스는 공식 입장문을 통해 해외 제련소 사업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지만,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통해 특정 제3자에게 우호 지분을 제공하는 방식은 상법이 허용하는 ‘경영상 목적’을 충족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자금 조달이 목적이었다면 주주배정 증자 등 다른 합리적 대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방식을 택한 점에서 절차적 정당성과 주주 평등 원칙에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잃는 것 없는데…고려아연만 리스크 떠안은 구조”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투자 구조 및 핵심 쟁점. AI 인포그래픽

이런 가운데 투자 구조의 실질적 손익 배분을 둘러싸고 법조계에서도 비판적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 변호사는 사업 가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거래 구조를 경제적 부담과 이익 귀속이 비대칭적인 구조라고 평가했다.


그는 “미국 정부가 대규모 현금을 직접 투입하기보다는 할인된 조건의 지분 취득 권리를 확보하는 형태”라며 “사업 리스크와 재무적 부담은 고려아연이 부담하는 반면, 미국 측은 크게 손해 보는 것 없이 지분과 함께 공장 가동에 따른 산업·고용 효과, 핵심광물 공급망 접근성을 확보하는 구조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주당 0.01달러에 지분을 취득할 수 있는 워런트 조건과 관련해 “일반적인 사업 투자 관점에서 통상적인 조건으로 보기 어렵다는 문제 제기가 가능하다”며 “사업 주체인 미국 현지 제련소 법인이 아니라 한국 본사인 고려아연에 대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하는 구조는 사업적 필요성 외의 다른 목적이 작동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구조로 인해) 이 많은 것들을 넘겨주고 결국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백기사’를 얻은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거래가 과거 한진칼 경영권 분쟁과 유사하다는 시각도 제기했다. 그는 “과거 한진칼 사례에서 지주회사 차원의 자산과 지분을 활용해 외부 우군을 확보한 것과 구조적으로 닮아있다”며 “경영권 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제3자가 신규 주주로 참여하는 구조 자체가 특정 경영진에게 시간과 유리한 구도를 제공하고 다른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상황이 된다는 점에서 이해충돌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절차적 정당성 역시 쟁점이다. 그는 “미국 등 선진 시장에서는 이해관계가 있는 경영진을 배제하고 독립이사 중심의 독립위원회를 구성해 거래 조건의 적정성을 검증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번 사안은 이사회 소집과 자료 제공 과정 등을 볼 때 충분한 사전 검토가 이뤄졌는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고 했다.


고려아연이 제시한 KPMG의 적정성 검토에 대해서도 “회사가 직접 의뢰한 용역 결과물은 객관성에 한계가 있으며, 독립적 의사결정 기구가 주도한 평가와는 법적 의미가 다르다”고 덧붙였다.


외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핵심 사업회사 지분을 확보하는 구조 자체에 대해서도 “동맹국이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드문 사례이며, 국가 간 관계 변화에 따라 장기적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워런트·수수료는 대가일 뿐…경영권은 고려아연에 있다”
고려아연 미국 제련소 자금조달 구조. 고려아연 IR 자료 캡처

이에 대해 고려아연은 해당 투자 구조와 관련한 시장의 우려에 대해 과도한 해석이 있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은 미국 측에 부여된 제련소 운영법인의 워런트에 대해 미국 정부의 출자금과 금융 지원 규모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고려아연은 “이런 워런트 제공은 미국 정부가 타 핵심광물 기업에 지분 투자할 때도 요청하는 조건”이라며 “미국 정부와 협의를 통해 결정된 사항으로, 이에 대한 비판은 해외 프로젝트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방적 주장”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미국 정부는 희소금속 기업 MP머티리얼즈에 투자하는 과정에서도 지분 취득 옵션을 확보한 사례가 있다.


그러면서 “모든 워런트가 행사되더라도 모든 워런트를 행사하더라도 자사의 100% 자회사의 일부 지분을 보유하는 수준으로, 미국 제련소 운영법인의 최대주주와 경영권, 사업 주도권은 고려아연에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정부 측에 연간 최대 1억 달러의 수수료를 지급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제련소 건설 과정에서 필요한 인허가·규제 대응·원료 조달·수요처 발굴 등 제반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가라고 했다.


미국 핵심광물 시장에 독자적으로 진출할 경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는 만큼, 해당 수수료는 과도하지 않으며 외부 회계법인 KPMG의 적정성 검토도 거쳤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은 “2029년 단계적 가동, 2030년 본 가동 이후 연매출 5조6000억원, 영업이익 1조2500억원 규모의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시 논란과 관련해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필요한 범위 내에서 충분히 공시를 진행했으며, 일부 세부 조건은 향후 확정 시점에 맞춰 추가 공시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고려아연은 “세부 사항은 이미 이사회에 모두 보고한 사항”이라며 “오히려 문제는 이사의 비밀 유지 의무를 위반해 왜곡한 정보를 외부에 제공하고 발설한 것”이라고 했다.


한편, 신용평가업계는 재무 부담과 전략적 의미를 함께 주목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는 미국 제련소 투자가 단기적으로 대규모 자본 지출과 보증 부담이 수반돼 재무 부담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미국 내 핵심광물 공급망을 선점할 경우 중장기적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와 성장성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적적으로 바라봤다. 또 미국 정부와의 협력 구조는 인허가와 수요처 확보 측면에서 사업 안정성을 높일 수 있는 요인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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