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한다고 했을 때, 이동국-염기훈-이승렬을 택하고 이근호를 포기한 것은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가장 큰 도박이나 다름없다.
세상 모든 일은 어차피 선택의 연속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 때론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다.
고심 끝에 ‘2010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 23인을 결정하기 위해 나머지 3명을 밀어내야했던 허정무 감독으로서도 마지막까지 이들의 존재유무에 따른 이해득실을 계산하느라 장고를 했다.
벨라루스전 부상으로 하차한 곽태휘를 포함 이번에 탈락한 4명은 모두 그냥 포기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 자원들이었다. 하지만 팀 내 포지션 경쟁과 부상 등에 발목이 잡혀 끝내 월드컵의 꿈을 접어야했다.
가장 뼈아픈 것은 곽태휘 이탈로 인한 수비라인의 약화다. 유럽무대 경험자들이 주축이 된 측면에 비해 국내파 위주로 짜인 대표팀의 중앙수비진은 경험과 기량 면에서 역대 최약체로 꼽히는 게 사실이다.
그나마 팀 내에서 가장 뛰어난 제공권과 공격가담 능력, 최근 가장 안정된 페이스를 보였던 곽태휘의 탈락은 치명타다. 190cm대의 장신들이 즐비한 그리스나, 힘과 탄력이 뛰어난 나이지리아를 상대로 세트피스에서 위험부담이 더욱 커졌다.
곽태휘의 이탈로 대표팀의 주전은 조용형-이정수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이들은 위치선정이 빼어나고 투쟁심이 있지만, 중앙수비수로서의 피지컬은 그리 뛰어난 편이 아니다. 곽태휘의 대체자 강민수는 최근 소속팀에서도 부진했고, 김형일은 대표팀에서 꾸준히 선발되긴 했지만 정작 실전에는 자주 나서지 못했다.
허정무 감독은 중앙수비진의 불안정을 조직력과 전술변화에서 해답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팀의 기본전술은 4-4-2지만 본선에서는 미드필드를 강화하는 4-5-1이나 4-2-3-1로 전환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수비형 미드필더 2명을 동시에 기용해 플랫 4앞에 붙여 수비를 극단적으로 강화하는 방법도 있다. 혹은 2002 한일월드컵의 스리백 카드를 꺼내들고 유사시 변형 포백이나 5백에 가깝게 변신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행히 대표팀의 주축 수비수들은 저마다 측면과 중앙을 두루 소화하는 게 가능하고, 스리백과 포백에 모두 익숙하다.
이근호의 이탈로 대표팀에 공격 옵션 하나가 줄어든 것도 아쉽다.
비록 최근 골 침묵이 길어지며 주전경쟁에서 밀렸지만, 과감한 돌파와 공간침투 능력을 갖춘 이근호는 한국의 월드컵 첫 상대인 그리스를 상대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리스 수비수들은 키가 크고 몸싸움에 강하지만 순발력이 떨어져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역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박주영이나 안정환은 직접 공을 가지고 플레이하는데 강하고, 이동국은 부상으로 그리스와의 1차전에 출전할 수 없다. 염기훈은 최근 이근호 못지않게 폼이 부쩍 떨어져있다. 근래 페이스가 가장 좋은 이승렬 정도가 이근호의 대체자가 돼야 하는데 국제경험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아킬레스건이다.
한국의 월드컵 16강 진출을 위해 그리스와의 첫 경기를 반드시 잡아야한다고 했을 때, 이동국-염기훈-이승렬을 택하고 이근호를 포기한 것은 허정무 감독으로서는 가장 큰 도박이나 다름없다.
구자철과 신형민은 각각 기성용과 김정우의 백업 자원으로 꼽혔지만, 김재성-김남일에게 밀렸다. 기성용이 최근 컨디션을 찾지 못하고 있고 김재성이 부상 후유증이 있다는 것을 감안할 때, 올 초 전지훈련과 평가전에서 좋은 움직임을 나타낸 구자철에게 좀 더 기회를 주지 않은 게 아쉽다. 신형민은 벨라루스전에서의 부진과 기성용과의 호흡이 맞지 않은 게 치명적이었다.
허정무 감독은 김재성의 멀티 능력과 김남일의 경험을 더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김재성은 소속팀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지만 유사시 측면과 중앙을 두루 소화할 수 있고, 킥력과 활동량도 빼어나 유사시 기성용-이청용의 자리를 모두 커버할 수 있다. 김남일은 러시아 이적 이후 조금씩 예전의 기량을 회복하고 있는 데다 풍부한 국제경험까지 갖춰 월드컵같은 큰 무대에서 젊은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어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데일리안 스포츠 =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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