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1500만원 아끼려다 손해?… 단순 덧셈에 가려진 '화폐의 시간가치'
파산 위기 JAL 살려낸 투자 나침반 'NPV'… 미래 현금에 할인율 적용해야
수천억 항공기 도입부터 일상 소비까지, 실패 줄이는 '시간의 가격표'
최근 주유소 가격판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해진다. 휘발유차를 계속 타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비싸더라도 연료비가 적게 드는 전기차로 바꾸는 것이 나을까.
"기름값을 아끼려고 수천만원을 새로 쓰는 것이 정말 이익일까?"
예를 들어 전기차로 바꾸는 데 지금 1500만원이 더 들지만, 앞으로 연료비와 정비비를 매년 250만원씩 절감할 수 있다고 하자. 단순히 250만원에 6년을 곱하면 1500만원이다. 얼핏 보면 6년이면 추가로 지출한 돈을 모두 회수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지금 지출하는 1500만원과 앞으로 6년에 걸쳐 절약하는 1500만원은 같은 가치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받을 100만원과 1년 뒤 받을 100만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은 지금 받겠다고 한다. 지금 받은 돈은 예금하거나 투자할 수도 있고 필요한 곳에 바로 사용할 수도 있다. 같은 금액이라도 지금의 돈이 미래의 돈보다 가치가 큰 이유다. 이를 화폐의 시간가치라고 한다.
따라서 미래에 들어오거나 절약할 돈은 오늘의 가치로 바꾸어 비교해야 한다. 이때 사용하는 것이 할인율이다. 할인율은 기다림의 대가와 다른 투자기회, 미래의 불확실성을 반영해 미래의 돈을 오늘의 가격으로 바꾸는 환산율이다.
항공사의 항공기 투자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항공사는 노후 항공기를 앞으로 더 운항할 것인지, 아니면 큰돈을 들여 연비가 좋고 정비비가 적게 드는 신형 항공기로 교체할 것인지를 끊임없이 결정해야 한다.
기존 항공기를 계속 사용하면 당장 큰 투자비가 들지 않는다. 반면 신형 항공기를 도입하려면 막대한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기존 항공기에는 높은 연료비와 정비비, 잦은 운항 중단, 탄소배출 비용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청구서’가 계속 따라온다.
반대로 신형 항공기는 가격이 비싸지만 연료비와 정비비를 줄이고 운항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결국 어느 항공기가 지금 더 싼지를 비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느 선택이 앞으로 더 많은 현금을 남기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순현재가치, 즉 NPV(Net Present Value)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방법이다. 새로운 투자로 앞으로 들어올 현금과 절감될 비용을 모두 현재가치로 환산한 다음, 지금 지출해야 할 투자비를 빼는 것이다.
NPV가 0보다 크면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을 반영하고도 경제적 가치가 남는다는 뜻이다. 반대로 0보다 작으면 예상한 현금이 들어오더라도 회사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수익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NPV를 중요한 투자 판단 기준으로 활용하며 회생한 대표적인 항공사가 일본항공(JAL)이다. 2010년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파산을 겪었던 JAL은 재무구조를 개편하는 과정에서 개별 투자안을 NPV 기준으로 판단하는 투자 원칙을 만들었다.
신형 항공기 한 대, IT 시스템 하나처럼 개별 투자안을 선택할 때는 NPV를 계산한다. 반면 항공기와 시설, 시스템 등에 투입된 회사 전체 자본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익을 만들어내는지는 ROIC(투하자본수익률)로 확인한다.
쉽게 말하면 각각의 투자는 NPV로 고르고, 회사 전체의 돈이 제대로 돌아가는지는 ROIC로 살펴보는 것이다.
국내 A항공사가 1000억원을 들여 최신형 비행기 한 대를 도입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 비행기가 기름값을 아끼고 정비비를 줄여 앞으로 5년간 매년 300억원의 순현금을 창출한다고 하자.
5년간 들어오는 현금의 단순 합계는 1500억원이다. 여기에서 투자비 1000억원을 빼고 500억원이 남는다고 계산해서는 안 된다. 5년에 걸쳐 들어오는 돈은 발생 시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할인율 10%를 가정해 5년간 들어올 현금을 오늘의 가치로 환산하면 약 1137억원이다. 여기에서 초기 투자비 1000억원을 빼면 NPV는 약 137억원이 된다. 이 투자는 자본비용을 반영하고도 회사의 경제적 가치를 약 137억원 증가시키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NPV의 또 다른 장점은 여러 투자안이 회사 가치에 기여하는 정도를 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가치가산 원리라고 한다.
신형 항공기 도입의 NPV가 100억원이고 예약시스템 교체의 NPV가 40억원이라면, 두 사업이 서로 독립적이고 모두 시행할 수 있을 때 회사가 새로 만드는 가치는 140억원이다. NPV는 투자안 하나하나에 경제적 가격표를 붙여주며, 그 가격표를 더하면 여러 투자가 회사에 더하는 전체 가치를 알 수 있다.
물론 NPV 숫자가 나왔다고 방심할 수는 없다. 국제 유가가 크게 떨어지면 신형 비행기의 연비 절감 효과가 줄어들 수 있고, 원-달러 환율이 치솟으면 항공기 리스료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항공사는 NPV를 계산할 때 한 가지 숫자만 믿지 않는다. 유가, 환율, 승객 탑승률을 변수로 두고 '기준 시나리오', '낙관 시나리오', '비관 시나리오'를 동시에 돌린다.
NPV의 진짜 매력은 미래를 100% 맞히는 점쟁이 노릇에 있지 않다. "우리가 가정한 유가와 환율이 틀어지면 내 결정이 얼마나 위험해지는가?"를 숫자로 투명하게 드러내 준다는 점에 있다.
"이 노선은 반드시 성공한다"거나 "신형기는 연비가 좋으니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다. 수요를 얼마로 예상했는지, 유가와 환율을 어떻게 가정했는지, 할인율은 왜 그렇게 정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
지금 글로벌 항공산업은 기단 현대화, SAF(지속가능항공유) 도입, 대형 M&A와 노선 재편이라는 거대한 격랑을 지나고 있다. 이런 불확실성의 시대에 ‘마른 수건도 다시 짠다’는 식의 무작정 절약만으로는 미래의 경쟁력을 지키기 어렵다.
항공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새 항공기가 너무 비싸지 않은가"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비싸더라도 앞으로 더 많은 가치를 만드는가"를 물어야 한다. 반대로 미래의 절감액과 수입을 현재가치로 환산했을 때 투자비에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리 최신 항공기라도 도입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가장 적은 돈을 쓰는 선택이 항상 가장 경제적인 선택은 아니다. 그것이 바로 순현재가치(NPV)가 항공사 경영진에게 주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글/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과 교수
김광옥 한국항공대 항공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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