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中, 美에 공장 짓고 미국인 고용하면 괜찮다"
100% 넘는 관세 피해 '현지생산' 새로운 진입로 가능성
현행 커넥티드카 규제는 中업체 미국 생산·판매까지 차단
규제 변화 현실화 땐 현대차·기아 美서 中업체와 직접 경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AP/뉴시스
중국 자동차의 미국 진출을 사실상 막아왔던 높은 장벽에 변화 가능성이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자동차 업체라도 미국에 공장을 짓고 현지인을 고용한다면 생산을 허용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다.
당장 중국 업체의 미국 진출이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실제 정책 변화로 이어질 경우 미국 현지 생산에 막대한 투자를 쏟아온 현대차·기아에도 새로운 경쟁 변수가 될 전망이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자동차 업체의 미국 현지 생산에 대해 "중국이 들어와 공장을 짓고 미국인을 고용한다면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자동차 업체들을 거론하며 "일본도 그렇게 한다. 그들은 이곳에 공장을 짓고 우리 국민을 고용한다"고 했다. 중국 업체 역시 미국에 직접 투자해 자동차를 생산하고 미국인을 고용한다면 일본 등 다른 해외 완성차 업체와 다르게 취급할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중국 업체가 멕시코 등 인접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으로 자동차를 수출하는 방식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완성차 생산지를 미국 안으로 끌어들여 제조업 투자와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제조업 정책과 맞닿아 있다.
이에 따라 그간 미국 시장 진출이 사실상 원천 차단돼 있던 중국 자동차 업체에도 일말의 가능성이 생겼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미국으로 수출하는 기존 방식이 아니라 미국에 직접 공장을 짓고 현지 고용을 창출하는 방식이라면 시장 진입을 허용할 수 있다는 선택지가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그동안 중국 자동차 업체는 사실상 미국 시장 진출이 불가능했다. 중국산 전기차에는 100%를 넘는 고율 관세를 매겨 중국에서 낮은 원가로 차량을 생산하더라도 미국으로 수출하는 순간 가격 경쟁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가 자리잡았다. BYD와 지리 등 중국 업체들이 유럽과 동남아, 남미 등에서 빠르게 판매를 확대하면서도 미국 시장에서는 좀처럼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다.
관세만의 문제도 아니다. 미국은 국가안보를 이유로 중국과 연계된 커넥티드카 기술의 미국 시장 진입도 강하게 제한하고 있다. 미국 상무부가 확정한 규제에 따라 2027년형부터 중국과 연계된 차량통신시스템(VCS)이나 자율주행시스템(ADS) 소프트웨어를 적용한 커넥티드 차량의 수입·판매가 금지된다.
중국과 일정 수준 이상의 연계성을 가진 자동차 제조사가 미국에서 생산한 커넥티드 차량을 판매하는 것도 제한된다. 여기에 배터리와 핵심 부품을 둘러싼 공급망 규제까지 더해지면서 중국 업체의 미국 승용차 시장 진출은 사실상 봉쇄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곧바로 이런 규제를 없애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중국 업체가 미국 현지에 공장을 짓더라도 커넥티드카와 소프트웨어, 배터리·핵심 부품 등을 둘러싼 고강도 규제는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기 때문이다. 실제 차량을 생산해 판매하기 위해서는 기존 규제와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 사이에 상당한 정책 조정도 필요하다.
위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그럼에도 중국 업체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에 '발이라도 들일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는 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는 중국산 자동차의 수출뿐 아니라 중국 업체 자체의 미국 시장 진입 가능성도 희박했지만, 미국 내 투자와 고용을 전제로 현지 생산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 대통령 입에서 직접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 가능성에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는 곳은 그동안 미국을 '무풍지대'로 삼아온 현대차·기아다. 현대차그룹은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에 대응해 현지 생산 확대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왔다. 조지아주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하면서 관세와 보조금 정책 변화에 대응하는 '현지 생산'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현대차·기아 입장에서는 중국 업체가 사실상 배제돼 있다는 점도 미국 시장의 중요한 경쟁 환경 가운데 하나였다. 중국 업체들이 전기차와 배터리 분야에서 빠르게 경쟁력을 끌어올리며 중국과 유럽에서 현대차·기아를 압박하고 있지만 미국에서만큼은 고율 관세와 각종 규제에 막혀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가 미국 현지생산을 조건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된다면 이 같은 구도도 달라진다. 현대차·기아가 유럽, 인도 등에서 이미 맞닥뜨리고 있는 중국 업체와의 전기차·가격 경쟁이 핵심 시장인 미국으로 옮겨올 수밖에 없어서다.
특히 중국 업체들은 자국의 치열한 가격 경쟁을 거치며 전기차 원가를 빠르게 낮췄고 배터리와 전장부품 등 핵심 공급망을 수직계열화한 곳도 적지 않다. 미국 현지생산에 따른 인건비와 조달비용 상승으로 중국에서와 같은 가격 경쟁력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겠지만, 현대차·기아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 사실상 없었던 경쟁자가 추가되는 셈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실제 중국 자동차 업체가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진통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가 관련 규제를 손보더라도 중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미국 정치권과 현지 자동차업계의 경계가 강하기 때문이다.
미국 자동차업계에서는 정부 지원과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중국 업체가 저가 전기차를 앞세워 미국 시장에 진입할 경우 현지 완성차 산업과 일자리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제기돼왔다. 중국 자동차의 미국 진입을 국가안보 문제로 보는 시각도 여전히 강하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가 미국에 공장을 짓는다고 해서 현행 규제를 곧바로 다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미국이 투자와 고용을 조건으로 중국 업체에 시장 진입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다면 현대차·기아를 포함한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미국 시장 전략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