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도쿄 배경 '신전기' RPG
옛 일본 청춘 애니 감성에 최신 작화
턴제에 패링·태그·AP 관리 결합…자동전투와 다른 '손맛' 살렸다
가장 처음 만날 수 있는 미나토구 마법사들.ⓒ인게임 캡처
화창한 봄, 벚꽃이 만개한 일본 도쿄 거리. 분홍 양갈래 머리를 한 미소녀가 이쪽을 바라보며 손을 흔든다. 따스한 햇살과 특유의 청춘 감성. 바라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다. 이쪽을 '주임'이라고 부르며 미소 짓는다.
"어라, 왜 눈물이…"
그렇다. 이건 게임이다. 이뤄질 수 없는, 오타쿠의 판타지. 일본 애니메이션이라곤 얼마 보지도 않은 사람에게 이런 감성을 느끼게 하다니. 심상치 않다.
17일 일본 치바에서 열린 '도쿄게임쇼(TGS) 2026' 엔씨 부스를 찾아 디나미스원이 개발하고 엔씨가 퍼블리싱하는 서브컬처 RPG '아스트라에 오라티오'의 시연 버전을 직접 플레이했다. 시연 버전은 한국어와 일본어, 영어, 중국어를 지원한다.
게임의 무대는 1889년 도쿄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19세기 일본과는 거리가 멀다. 마법의 등장으로 기술과 문명의 발전이 현실보다 크게 앞당겨진 세계다. 막 완공된 도쿄타워 주변으로 마천루가 솟아 있고 헬리콥터와 헤드셋 같은 현대적인 물건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플레이어는 평범한 인간이자 공무원인 '주임'이다. 정체불명의 기관 '특구청'에 발령받아 도쿄 곳곳에 자리 잡은 마법사들의 영지를 관리하고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조정한다. 주임 자신은 마법사가 아니지만 가끔 고양이로 변하는 저주에 걸려 있다.
시연 빌드는 시나리오와 전투 세션으로 나뉜다. 처음에는 두 요소가 결합된 튜토리얼을 거친 뒤 원하는 콘텐츠를 골라 체험하는 방식이다.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는 12명이다. 개발진은 모바일에서 전체 경험을 온전히 즐길 수 있도록 비주얼 노벨 방식의 시나리오와 전투 화면의 밀도를 조정했다.
도쿄 감성이 담긴 시작화면.ⓒ인게임 캡처
'판타지 청춘 애니'를 게임으로
첫인상에서 가장 강하게 다가온 것은 의외로 음악이었다. 시작 화면부터 부드럽고 듣기 좋은 일본풍 뉴에이지 배경음악이 흘러나온다. 스토리 진입하면 낮게 깔리는 피아노 선율 위로 주인공의 독백이 이어진다. 일본 청춘 애니메이션 영화의 도입부를 보는 듯한 분위기다.
튜토리얼은 결계석을 뚫고 무언가가 침입하고 헬리콥터가 추락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양갈래 분홍색 머리의 소녀 '타나카 에린'과 교토 막부 측 마법사 '쿠죠 유리아' 등이 등장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진지하게 흘러가지만 캐릭터 사이의 대화에는 가벼운 유머를 섞었다. 적대적으로 등장하는 유리아도 첫 키스에 집착하는 등, '적 마법사'라는 역할을 걷어내면 한 명의 사춘기 청소년처럼 비춰지도록 묘사했다.
스킬 컷신에도 청소년스러움을 드러내는 요소가 많다. 사진은 '아키나' 전투 장면. 특수한 약병을 던져 적에게 화상을 입힌다.ⓒ인게임 캡처
작화 역시 눈에 띈다. 매끈하게 다듬어진 최신 서브컬처 게임들의 작화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손으로 직접 선을 그린 듯한 캐릭터의 윤곽과 얼굴 묘사가 인상적이다. 2000년대 전후 일본 청춘 애니메이션에서 봤던 그림체와 색감을 최신 모바일 그래픽으로 다시 옮겨놓은 듯했다. 1889년이라는 숫자보다 2000년대 초반 일본을 떠올리게 하는 화면이지만 오히려 세계관의 낯섦을 줄여준다.
일본 애니메이션처럼 오프닝 주제가와 애니메이션도 별도로 재생된다. 각 챕터와 전투 사이 로딩 화면에서는 캐릭터의 성격이나 설정을 담은 짧은 '아이캐치' 일러스트가 등장한다. 전투와 스토리 사이의 짧은 순간까지 캐릭터 설정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활용한 셈이다. 여러모로 '그 시절 오타쿠를 위한 놀이동산' 같은 느낌이다.
아침에 일어나 "지각이다!" 외치며 토스트 한 조각을 입에 물고 뛰쳐나올 것 같은 비주얼이다.ⓒ엔씨
턴제인데 손이 바쁘다…패링·태그·AP 시스템이 만든 속도감
전투에 들어가면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기본 뼈대는 턴제지만 가만히 스킬 버튼만 누르거나 그냥 자동 전투 돌리는 게임과는 거리가 멀다.
한 라운드는 아군의 행동을 결정하는 '액션 단계'와 선택한 행동의 성공 여부가 결정되는 '판정 단계'로 나뉜다.
모든 행동에는 AP가 필요하다. 일반 스킬을 사용하면 전투 스킬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줄일 수 있고, 판정에서 승리하면 AP를 추가로 소비해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반대로 판정에 패배하면 선택한 행동은 실행되지 않고 적의 공격으로 차례가 넘어간다. 적이 어떤 행동을 준비하는지 먼저 확인한 뒤 어떤 스킬과 캐릭터를 내보낼지 짧은 시간 안에 판단해야 한다.
여기에 '태그'가 전투 템포를 끌어올린다. 적이 브레이크 상태에 빠지면 다른 캐릭터로 교대해 연계 공격을 이어갈 수 있다. 시연 빌드 튜토리얼에서는 에린으로 적을 브레이크 상태에 빠트린 후, 근접 공격에 특화된 '안나'를 투입해 몰아붙이거나, 물 마법과 버프를 사용하는 '리리아'로 능력을 강화한 뒤 다시 공격수로 교체하는 플레이를 경험할 수 있었다.
공격을 연계해 적을 브레이크 상태에 빠트리는 게 중요하다.ⓒ인게임 캡처
각 캐릭터들은 탱커, 딜러(어택커/스위퍼), 서포터, 브레이커, 앵커 등 6개 역할로 나뉜다. 적의 특수 기믹에 따라 역할도 달라진다. 보라색으로 표시되는 일부 기술은 브레이커 계열이 대응하고, 기본적으로 막기 어려운 적의 강력한 공격도 탱커가 대신 받아내는 식으로 파티 구성에 의미를 부여했다.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카운터다. 일부 적은 아군의 행동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는데, 타이밍에 맞춰 카운터 스킬을 사용하면 공격을 받아치고 추가 AP와 행동 기회를 얻는다. 판정은 '퍼펙트'와 '굿'으로 갈린다. 굿 판정에서는 공격을 막아내더라도 일부 피해를 입기 때문에 체력이 낮다면 카운터에 성공하고도 쓰러질 수 있다. 적의 공격이 시작되면 캐릭터 하단에 '리듬게임 바'가 등장하고, 바의 움직임에 맞춰 정해진 입력을 해야 한다.
화면 우하단 방패 버튼을 타이밍에 맞춰 입력하면 패링이 발동한다.ⓒ인게임 캡처
턴제 RPG에 액션 게임의 패링을 끼워 넣은 구조다. 타이밍 자체가 지나치게 가혹하지는 않았지만 캐릭터 교체와 AP 잔량, 적의 다음 행동까지 동시에 보다 보면 처음에는 손이 꼬인다. 연계 공격을 선택할 수 있는 시간도 길지 않아 생각보다 전투 호흡이 빠르다. 서브컬처 게임은 아니지만, '클레르 옵스퀴르: 33 원정대'보다 약간 순한맛이다.
라운드를 거치면서 특수 스킬도 사용할 수 있다. '영지 선언'을 사용하면 캐릭터별 전용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가 나오면서 AP가 전부 회복되고 얼티메이트 스킬 게이지도 오른다. 해당 게이지를 채우면 강력한 궁극기를 사용할 수 있다. 에린의 얼티메이트 스킬은 화면을 뒤덮는 거대한 폭발로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브레이크 유발했다.
영지선언 연출.ⓒ인게임 캡처
시연 빌드에는 전투 시스템을 익히는 '방과후 마법사 트레이닝'도 들어갔다. 초반 학습 구간을 짧게 압축한 탓에 한꺼번에 익혀야 할 요소가 적지 않았지만, 시스템을 이해하고 나니 AP와 태그, 카운터를 어떤 순서로 연결할지 고민하는 재미가 살아났다.
다만 아직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만큼 아직 더 최적화 해야 할 부분도 보였다. 우선 패링에 필요한 리듬게임 바의 가시성이 다소 떨어졌다. 플레이하며 적의 공격을 몇 대 허용하고서 그제야 리듬게임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전투 시스템도 복잡하다 보니, 처음에는 캐릭터를 구경하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적의 공격 전조와 AP 숫자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미형 캐릭터의 그래픽과 스킬 연출까지 게임의 중요 구성 요소로 포함되는 서브컬처 게임으로선 약점이 될 수 있다.
다양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접할 수 있다. 사진은 '치카게'.ⓒ인게임 캡처
복잡한 전투 시스템 대비 단조로운 입력 방식도 괴리를 일으킨다. 특정 기믹 파훼에 성공한 이후에는 단순 스킬 버튼 연타만 이어진다. 물론 모바일 환경을 기본으로 하는 만큼, 조작의 편의성과 재미 사이에서 줄타기 하는 개발진의 노력이 엿보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엔씨와 디나미스원은 이번 TGS를 통해 서브컬처 본고장의 반응을 확인하고, 이후 CBT로 이용자의 피드백도 수집할 예정이다. 두 게임사 모두 '쓰라린 과거(?)'가 있는 만큼, 절치부심의 마음가짐으로 게임을 깎아냈음이 엿보였다. 게임의 완성된 모습이 절로 궁금해진다.
별점: ★★★★
한줄평: 특구청 경력 공채에 기자 이력서는 안 받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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