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애나에 40억달러 이상 투자...2029년 하반기 미국산 HBM 양산
한국 웨이퍼·미국 패키징 연계...AI 고객사 인접 공급망 구축
곽노정 "공급 부족 2030년 말까지"...ADR 상장 이어 미국 접점 확대
곽노정 SK하이닉스 CEO가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에서 열린 AI 메모리 생산 기지 기공식에서 사업 전략과 비전을 발표하고 있다.ⓒ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앞세워 전통적인 메모리 경기 사이클에서 벗어나는 전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과거 메모리 산업은 범용 제품을 대량 생산하다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이 맞물리며 급격한 다운턴을 반복했지만, 인공지능(AI) 시대에는 고객 맞춤형 제품과 공동개발 비중이 커지면서 경기 하강의 양상도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흐름은 미국 인디애나 HBM 첨단 패키징 거점 구축에서도 확인된다. SK하이닉스는 한국에서 생산한 최첨단 웨이퍼를 미국으로 보내 현지에서 패키징과 테스트를 거친 뒤 미국 고객에게 공급하는 체계를 만든다. HBM 경쟁이 생산량 확대를 넘어 고객사 인근에서 제품을 맞추고 검증하는 후공정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의미다.
28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회사는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 라피엣 퍼듀대학교 할로웨이 체육관에서 AI 메모리용 어드밴스드 패키징 생산기지 기공식을 열었다. 인디애나 팹은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처음 구축하는 HBM 생산 거점이다. SK그룹의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첫 미국 내 생산기지이기도 하다. 회사가 2024년 4월 차세대 HBM 패키징 공장 부지로 인디애나주를 낙점한 지 약 2년4개월 만이다.
한국 웨이퍼, 미국서 패키징...2029년 'Made in USA' HBM 양산
인디애나 팹에는 총 40억달러 이상이 투입된다. 2028년 10월 클린룸을 완공하고 2029년 하반기부터 차세대 HBM 양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생산이 본격화되면 약 1000명의 인력이 근무하는 미국 내 핵심 HBM 생산 거점으로 운영된다.
이번 투자의 핵심은 HBM 후공정의 미국 현지화다. SK하이닉스는 한국에서 생산한 최첨단 웨이퍼를 인디애나로 반입한 뒤, 현지에서 어드밴스드 패키징과 테스트를 거쳐 첫 'Made in USA' HBM 제품을 미국 고객에게 공급할 계획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AI 가속기의 연산 성능을 높이는 고부가 메모리다. 적층 단수가 높아질수록 발열과 수율 관리가 어려워지는 만큼, 패키징은 단순 후공정을 넘어 제품 성능을 좌우하는 핵심 공정으로 부상하고 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가 27일(현지시간)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 퍼듀대학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사업 전략 및 투자 비전을 설명하고 있다.ⓒSK하이닉스
범용에서 맞춤형으로...다운턴 공식도 바뀐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도 HBM 중심의 메모리 시장 변화에 주목했다. 곽 사장은 기공식 이후 기자들과 만나 "공급 부족 상황이 2030년 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언젠가는 AI가 정점을 지나거나 또 다른 경기 하강이 찾아올 수 있지만, 다음번 다운턴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가 경험했던 것과는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메모리 시장에 대해 "사실상 100% 범용 제품이었다"며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려 같은 시장에서 경쟁했고 수요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적정 생산량을 조절하기도 쉽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반면 AI 시대에는 메모리 사업 모델이 범용 제품 중심에서 부분 맞춤형 또는 완전 맞춤형 제품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봤다. 곽 사장은 "HBM은 고객 시스템에서 최고의 성능을 내도록 최적화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고객과 SK하이닉스가 차세대 메모리 칩을 함께 개발하고 시스템 성능을 극대화하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메모리 시장도 언젠가는 조정 국면을 맞을 수 있으나 과거처럼 범용 제품을 대량 생산한 뒤 수요 둔화와 공급 과잉이 한꺼번에 덮치는 방식과는 다를 수 있다는 게 곽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경기 하강이 오더라도 수요가 과거처럼 급격하게 감소하기보다 천천히 줄거나 보합세를 유지하는 형태가 될 수 있다고 봤다.
R&D·소부장 생태계까지 현지화...미국 공급망 접점 확대
인디애나 팹에는 생산라인과 함께 어드밴스드 패키징 연구개발(R&D) 테스트베드도 구축된다. 고객사와 대학, 비즈니스 파트너가 차세대 패키지 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시제품 제작과 성능 검증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시설이다.
SK하이닉스는 이날 퍼듀대학교와 어드밴스드 패키징 분야 연구개발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양측은 HBM을 비롯한 차세대 시스템 통합 및 첨단 패키징 기술을 공동 연구한다. SK하이닉스는 미 중서부 지역 주요 대학 및 연구기관과의 협력도 확대해 인재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현지 생태계 조성도 병행된다. 현재 100여개 소재·부품·장비 협력사가 웨스트 라피엣 진출을 논의 중이다. SK하이닉스는 팹 건설과 운영을 통해 미국 내 기업들과 7000여개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이번 투자는 SK하이닉스가 미국 내 자본시장과 생산거점을 동시에 넓혀가는 흐름과도 맞물린다. SK하이닉스는 최근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나스닥에 상장하며 미국 투자자들이 현지 시장에서 SK하이닉스에 투자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다. 국내 증시를 주된 상장 시장으로 유지하면서도 AI 반도체 산업의 중심지인 미국에서 투자자와 고객사 접점을 함께 확대하는 모습이다.
실적에서도 HBM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AI 서버 투자 확대와 HBM 등 고부가 제품 수요가 맞물리면서 회사는 최근 역대 최대 수준의 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주요 고객사와의 장기 공급계약, 차세대 HBM 양산 준비, 미국 패키징 거점 구축이 맞물리며 AI 메모리 중심의 사업 구조가 강화되고 있다.
추가 투자 열어둔 하이닉스..."메모리·로직 경계도 낮아져"
미국 추가 투자 가능성도 열어뒀다. 곽 사장은 미국 내 전공정 투자 가능성과 관련해 "용수, 전력, 인재, 보조금 등 충분한 자원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열려 있다"며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의 경계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곽 사장은 미국에 설립한 AI 회사와 관련해 "SK하이닉스의 다음 사업을 준비하기 위해 중요한 스타트업이나 기업에 투자하는 일종의 투자 플랫폼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투자 대상에는 시스템 반도체, 네트워크, 광학, 인터커넥트 관련 기술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HBM4부터 베이스 다이에 로직 회로를 넣는다"며 "이것은 메모리와 로직 반도체가 결합하기 시작하는 첫 번째 신호라고 본다"고 말했다. AI 반도체 성능 경쟁이 심화될수록 메모리 업체도 단순 공급자를 넘어 시스템 성능 최적화에 관여하는 기술 파트너로 역할이 넓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미국 내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와 한미 협력의 상징성도 강조됐다. 이날 기공식에는 마이크 브런 인디애나 주지사, 토드 영 연방 상원의원, 미치 대니얼스 퍼듀대학교 총장,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전우회 회장, 강경화 주미 한국대사 등이 참석했다. SK그룹에서는 유정준 미주총괄 부회장, 이형희 부회장, 곽 사장 등이 자리했다.
SK그룹은 주한미군 전역 군인 채용 프로그램에도 참여한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동맹재단이 운영하는 '주한미군 전역 장병 취업 플랫폼'에 고용 기업으로 참여해 양국 간 협력 관계를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곽 사장은 "미국은 최고의 고객과 연구역량, 생태계가 함께하는 AI 혁신의 중심지이고, 인디애나 팹은 최초로 'Made in USA' HBM을 제공하는 거점이 될 것"이라며 "미국에 대한 투자와 협력을 확대하고 함께 성장하며, 미국 AI의 미래를 같이 만들어가는 가장 신뢰받는 파트너가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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