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냐, 감정가냐…자율 맡긴 잔금대출, 단지별 ‘제각각’ 우려

배수람 기자 (bae@dailian.co.kr)

입력 2026.08.25 15:54  수정 2026.08.25 16:05

이억원 “담보가격 기준 은행 판단 사안”

기준따라 차주별 대출 한도 엇갈려

은행 자율 뒤에 숨은 당국

시장은 ‘혼선’, 은행은 ‘난감’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잔금대출 취급 기준은 은행 자율에 맡긴다며 세부 지침을 마련하지 않을 거라고 선을 그었다.ⓒ연합뉴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목표를 기존보다 두 배로 높이고, 늘어난 대출 여력을 잔금대출 등 집단대출에 우선 공급하기로 했지만, 시장 혼선은 계속되는 모습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신축 단지 잔금대출 한도를 산정하는 담보가격 기준을 은행 판단에 맡기면서 대출 한도 축소 우려가 커지고 있어서다.


25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이억원 위원장은 지난 24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서울 서초구 ‘디에이치방배’ 잔금대출 산정 기준을 묻자 “은행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할 문제”라고 답했다.


당국 차원의 별도 지침은 마련하지 않는단 입장이다.


이 위원장은 “당국의 역할이 있고 은행의 역할이 있다”며 “금융기관들이 (정책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이것으로 할지, 저것으로 할지는 은행 개별적으로 결정할 일”이라고 못 박았다.


잔금대출은 신축 아파트 입주 단계에서 기존 중도금 대출을 상환하고 잔금을 치르기 위해 일으키는 집단대출이다.


통상 준공 시점의 KB시세나 감정평가액을 기준으로 LTV(주택담보인정비율)를 적용해 한도를 산정해 왔다.


그러나 서울 핵심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치솟으면서 최초 분양가와 입주 시점 감정가 간의 격차가 수억원 이상 벌어지는 단지가 대폭 늘었다.


담보가격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차주가 실제 받을 수 있는 대출 한도는 달라진다. 총량이 30조원가량 늘었음에도 은행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현재 은행들은 분양가의 60%, 감정가의 50% 중 낮은 가격을 기준으로 잔금대출 한도를 산정하고 있다.


감정가를 기준으로 삼을 경우, 대출액이 급증해 총량 관리에 비상이 걸리고, 향후 건전성 관리에 발목이 잡힐 수 있어서다.


한정된 대출 재원을 최대한 많은 차주에게 골고루 공급하겠다는 의지도 반영됐다.


가령 분양가 10억원, 감정평가액이 16억원인 단지의 경우 LTV 50%를 적용하면 감정가를 기준으로 할 때 대출 한도는 8억원 수준이지만, 분양가를 기준으로 삼으면 5억원으로 축소된다.


시세 상승 폭이 클수록 대출 한도 차이가 더 극명하게 나타나는 만큼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 강남권 신축 단지에는 모두 분양가 기준을 적용하기로 했다.


입주를 앞둔 신축 단지들 사이에선 분양가가 아닌 감정가로 잔금대출을 취급해 달라는 민원도 빗발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입주예정자는 “자금 계획을 다 세워둬도 소용이 없다”며 “입주 두 달 앞두고 분양가 기준으로 하겠다고 말을 바꿔버리면 열심히 일해서 갚을 능력이 있더라도 당장 1억~2억원 빌릴 데가 마땅찮아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입주예정자는 “감정가 기준으로 하던 LTV가 입주를 한 달 앞두고 분양가 기준으로 바뀌었다”며 “잔금대출은 걱정 없을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5억원 필요하던 게 3억원으로 줄었을 뿐 달라진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금융권 안팎으론 특정 단지에 대출 재원이 집중 공급될 경우 형평성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작 필요한 세부 지침은 마련하지 않고 총량 관리에 따른 부작용과 차주들의 반발을 은행 자율 판단에 따른 결과로 떠넘기는 것 역시 정책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 있단 지적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당국에서도 결정하기 힘든 부분이니 은행 자율에 맡긴 게 커 보인다”며 “감정가와 분양가 격차가 엄청나 대출이 필요한 차주는 지금처럼 은행 쇼핑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은행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라며 “은행별 총량 관리가 중요한데 기준을 은행별로 제각각 두도록 하면 연말에 어떤 은행은 돈이 부족하고 어떤 은행은 돈이 남아도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어 서로 눈치만 보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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