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도밴드 “조선팝, 국악에 가두지 않으려 해요…좋은 음악이 먼저” [인터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8.19 08:29  수정 2026.08.20 07:22

9년 만에 완성한 첫 정규 ‘원’…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쓴 춘향가

‘조선팝 창시자’라는 수식어는 서도밴드를 대중에게 알린 힘인 동시에 넘어야 할 경계였다. 전통음악을 바탕으로 한 밴드라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그 틀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들의 음악도 늘어났다. 첫 정규앨범 ‘원’(ONE)은 조선팝을 하나의 음악적 형식으로 규정하려 했던 시간을 지나, 그 의미를 더 넓게 펼쳐놓은 결과물이다.


ⓒ서도밴드

서도밴드는 지난 14일 첫 정규앨범 ‘원’을 발매했다. 2021년 첫 EP ‘문: 디스인탱글’(Moon: Disentangle)을 선보인 지 약 5년 만이다. 앨범의 시작은 9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도밴드가 초창기에 만든 주요 레퍼토리가 판소리 ‘춘향가’를 바탕으로 한 곡들이었다. 그동안 ‘사랑가’와 ‘이별가’는 음원으로 발표했지만, 춘향과 이몽룡의 이야기를 이루는 나머지 곡들은 하나의 앨범으로 묶지 못했다.


“춘향가 레퍼토리 전체를 꼭 앨범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멤버들에게 숙원사업처럼 남아 있었어요. 데뷔 이후 계속 시도했지만 시기적으로 여의치 않았고 편곡에도 늘 아쉬움이 있었죠. 9년을 돌아 지금이 됐을 때 비로소 모두의 마음이 모였어요. 첫 정규는 이 이야기로 내야 한다고요”(서도)


‘원’에는 일곱 개의 본곡과 다섯 개의 짧은 아니리 트랙 등 총 12트랙이 담겼다. 서곡에 해당하는 ‘아리랑’으로 문을 열고 춘향가의 주요 장면을 다섯 곡에 걸쳐 풀어낸 뒤 ‘나를 너를’로 마무리한다. 각 본곡 앞에는 인물의 대사와 장면의 전환을 담당하는 판소리의 아니리를 밴드 음악으로 재구성해 배치했다. ‘사랑가’의 아니리를 제외한 사설은 서도가 새로 썼고, 멤버들도 각각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연태희 ⓒ서도밴드

“아니리는 다음 장면을 청자에게 던져주면서 저희 음악의 서사적인 명분을 채워줘요. 그래서 이 앨범은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순서대로 들어주셨으면 해요. 그래야 저희가 떠올린 장면과 감정을 온전히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연태희)


한 글자인 앨범명에는 여러 뜻이 겹쳐 있다. 무언가를 바라는 ‘원함’이 원망과 원한으로 변하고, 다시 맺힌 감정이 풀리면서 삶이 원처럼 순환한다. 첫 정규앨범을 뜻하는 숫자 ‘원’의 의미도 담겼다.


“제목은 너무 길지 않으면서도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여러 단어를 찾다가 무심코 ‘원’이 나왔는데 앨범과 가장 잘 어울렸죠. 원하는 마음의 원이 될 수도 있고 원망이나 원한의 원, 첫 번째 앨범을 뜻하는 원도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의미는 결국 순환인 것 같네요”(정현빈)


익숙한 춘향의 모습도 오늘의 감각으로 다시 바라봤다. ‘언제까지’는 옥에 갇혀 이몽룡을 기다리는 춘향의 슬픔뿐 아니라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상대를 향한 분노와 답답함에 주목한 곡이다. 가사는 기다림과 원망을 이야기하지만 음악은 느린 비가 대신 심장이 뛰는 듯한 펑키한 리듬으로 전개된다.


김성현 ⓒ서도밴드

“기존 춘향가에서는 춘향이 옥방에 갇혀 하염없이 울면서 도련님을 기다리는 처절한 감정이 주로 표현되잖아요. 그런데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마냥 기다리기만 하면서 화도 나고 ‘왜 이렇게 안 오지’ 하는 원망도 들었을 것 같았어요. 심장이 쿵쾅거리고 얼굴도 빨개질 텐데 차분하고 슬픈 음악만 연주하는 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죠”(김성현)


서도는 “과거의 가치가 임을 절개 있게 기다리는 ‘열녀 춘향’이었다면 지금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우리의 감성”이라며 “이런 재해석이 등장했기 때문에 새로운 춘향가가 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같은 이야기를 다루는 밴드의 시선도 9년 동안 달라졌다. 처음 곡을 만들 때는 멤버들이 춘향과 이몽룡에게 감정을 이입해 사랑과 이별을 극대화했다면, 이번에는 한 걸음 떨어져 두 인물을 바라보며 청자가 이야기 안으로 들어갈 자리를 남겼다.


“예전에는 춘향과 몽룡이 만나고 헤어질 때 저희도 그 인물의 옷을 입고 바로 옆에서 함께 연주하는 느낌이었어요. 지금은 그 장면을 바라보는 관객보다도 한 걸음 더 뒤에 서서, 듣는 분들이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도록 연주했죠. 청자가 춘향이 될 수도, 몽룡이 될 수도 있고 제3자가 되어 바라볼 수도 있었으면 했어요”(김태주)


서도 ⓒ서도밴드

서도밴드는 자신들의 정체성인 조선팝을 두고 오랜 시간 고민했다고 한다. 초기에는 특정한 선율이나 리듬, 창법처럼 음악적인 요소를 통해 장르를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이번 앨범에는 어쿠스틱한 ‘아리랑’부터 알앤비 색채의 ‘사랑가’, 록 발라드에 가까운 ‘이별가’까지 서로 다른 장르의 곡이 공존한다.


“저희는 결국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저희 음악 자체를 전통음악이나 국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음악이 먼저 있고 그 음악이 흥미로운지가 첫 번째예요. 그래서 저는 조선팝에 더 강력한 정체성이 생기려면 결국 사랑받는 곡이 나와야 하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조선팝은 이런 음악입니다’라고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죠. 어떤 곡이 사람들에게 박히면 그때부터 ‘이런 게 조선팝이구나’ 하고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서도)


첫 정규앨범으로 오랜 숙제를 끝냈지만, 다음 목적지를 미리 정해놓지는 않았다. 서도는 자신이 좋아하는 서핑에 빗대 앞으로의 태도를 설명했다.


“파도를 이겨 먹으려고 하면 오히려 가라앉아요. 물속으로 들어가 몸에 힘을 빼고 흐름을 느껴야 파도가 지나가죠. 세상일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으니까 현재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면서 물결을 잘 타고 싶어요”(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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