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인데 장수를 왜 바꿨을까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8.19 07:00  수정 2026.08.19 08:05

여한구 전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뉴시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 직권 면직


지난해부터 한미 관세 협상 등 주요 통상 현안에서 실무 사령탑 역할을 해온 여한구 산업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지난 15일 0시를 기해 직권 면직됐다. 산업부에서는 전혀 사전에 눈치를 채지 못하고 다음주 일정까지 언론에 배포했다 한다. 청와대도 배경을 잘 모른다고 답했다. 정무직 인사에서 직권면직은 상당히 이례적인 조치다.


여 본부장의 경질은 미국의 무역법 301조 조사와 쿠팡 등 민감한 통상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 이뤄졌다. 여 본부장은 경질 바로 전날인 13일에도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비상경제본부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 참석하는 등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했다.


여한구 전 본부장은 산업통상부 내에서 손꼽히는 재사(才士·재주가 있는 남자)로 평가 받았다. 미국 하버드대학 케네디 스쿨에서 공부했고 지난해 대미 협상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아 한미 관세 협상을 주도했다. 이후로도 미국 무역대표부(USTR) 등을 상대로 대미 투자와 301조 관세, 비관세 장벽 문제 등에 대한 협의를 이끌어 왔다.


현재 대미 통상 환경은 매우 민감한 상태다. 최근 미국 정부는 20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의 이행 속도를 문제 삼으며 “서두르지 않으면 지난해 10월 한미 정상이 합의한 관세율 15%보다 관세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우리 정부를 압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직권 면직의 설(說)들


굳이 전쟁을 앞두고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거나 협상 창구를 바꾸지 않는 관계를 들먹거릴 필요도 없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더군다나 통상·관세·투자 등 한미 협상은 극도로 예민한 상황이다. 이 정도 고위직이면 본인이 사의를 표명하는 의원면직 형식을 취하고 언론에는 ‘경질됐다’고 알린다. 그런데 후임자도 정하지 않은 채 연휴 첫날 급하게, 굳이 직권면직을 강조한 데는 뭔가 특별한 배경이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여 전 본부장의 직권 면직은 몇 가지 차원에서 그 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선 정부는 한미 관세 협상과 통상 협상이 지지부진한 가운데 그 책임을 물어 경질한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한미 관세협상 부진의 책임을 물어 경질했다면 협상 실패를 자인하는 꼴이니 정부로서는 자가당착이 된다.


양국간 협상 지연에 대해 민간 출신 장관과 직업 공무원 출신 본부장이 엇박자를 내고 있어, 공무원 조직에 경종을 주고 미국에 성의표시를 하기 위해 본부장을 경질했다는 분석이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경질하면 국회 청문회 등 정치 일정이 복잡해진다는 점도 고려했을 수 있다. 김정관 장관이 지난 16일 예정에 없이 급히 미국을 방문한 점이 이러한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이 관측에는 별다른 국내 정치의 셈법은 작용하지 않는다.


미국과의 관계 때문?


미국 트럼프 대통령 측이 지목한 기피인물(persona non grata)로 지목돼 전격 경질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 전 본부장은 지난 2021년 5월 문재인-바이든의 한·미 정상회의에 통상협상 실무자로 배석했다. 지난달 중순 강경화 주미대사가 급거 귀국했을 때 미국 측의 기피 인물이라고 정부에 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사실이라면 워낙 철저한 보안을 요하는 사안이니 강 대사가 유선상으로보다는 직접 인사권자를 만나 전달하고 청와대가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조처했을 것이다.


강 대사는 조현 외교부 장관 지시로 지난달 중순 일시 귀국해 한미 관계 전반에 대해 유관 부처들을 포함한 업무 협의를 가졌다. 주미대사가 업무 협의를 위해 귀국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때 강경화 대사는 쿠팡 사태 때문인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쿠팡 때문에 귀국할 필요까지 있었을까? 때마침 지난달 초 미 하원이 쿠팡 사태에 대한 비판적 보고서를 내고 백악관도 공개 경고하기는 했다.


정치적 역학구도에 따른 해석도 나온다. 여 전 본부장은 문재인 대통령 시절 통상국장과 통상실장, 청와대 비서관을 거쳐 통상교섭본부장을 지낸 터라 친문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인사다. 이재명 대통령의 친문 거세가 고위 공직 사회부터 시작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해석만큼은 절대 적중하지 않기를 바란다.


현안은 산적한데, 구구한 억측만...


한미는 지난해 11월 외교·안보, 통상 분야를 망라하는 ‘팩트시트(Fact Sheet·공동 설명자료)’를 발표하고 6개월만에 실무 그룹을 꾸려 지난 6월 방한한 엘리슨 후커 국무부 정무 담당 차관과 킥오프 회의를 가졌다.


후속 일정은 아직 잡히지 않았다. 아직 후임이 정해지지 않았으니 당분간 대미 통상 협상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다. 구구한 억측이 오래 계속되는 것은 결코 국익에 바람직하지 않다. 왜 직권면직했는지 하루 빨리 속시원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글/ 김구철 금강대 연구교수·전 TV조선 선거방송기획단 단장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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