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은 반란은 피와 죽음을 동반한다. 그도 그럴 것이 반란이 일으났을 때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순순히 항복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집권세력들은 어떤 형태로든 반란을 진압할 수 있는 무장 집단인 군대를 양성한다. 그래서 전근대 시대 군인들의 주요 임무에는 외적의 침략을 막는 것 말고도 반란을 진압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가장 많은 반란을 일으킨 것은 다름 아닌 군인들이었다. 성공한 반란의 대부분도 군인들이 주도한 것이다. 당장, 고려를 건국한 왕건이나 조선을 세운 이성계 역시 모두 군인들이었다. 그렇다고 군인들을 양성하지 않을 수 도 없으니 결국 믿을 건 충성심 뿐이었다. 그래서 군인들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하게 요구한다. 전근대 국가에서는 그 대상이 임금이었다. 하지만 임금이 임금 같지 않을 때 군인들의 충성심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특히,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군인들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고 자신들에게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각종 창과 무기류 ⓒ직접 촬영
고종 6년인 서기 1219년은 고려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벌어졌고, 역사의 전환점들이 생겨났다. 일단, 고려를 몇 년 동안 괴롭힌 거란족들이 마침내 강동성에서 포위되었다가 항복했다. 하지만 항복한 거란족들 앞에는 고려군 외에 카치운이 이끄는 몽골군이 함께 있었다. 거란족이 항복한 이후, 카치운은 자신의 부하를 고려의 임금인 고종에게 사절로 보낸다. 그들은 무장할 한 채 대전에 들어와서 임금에게 직접 카치운의 서찰을 건네주려고 해서 대신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좋게 좋게 해결되어서 넘어갔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해 9월, 최충헌이 죽었다. 그를 미워했던 사람에게는 앓던 이가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겠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아들 최우가 아버지의 자리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최우는 전횡을 부리던 아버지의 측근들을 제거하고 부정하게 모은 재물들을 왕에게 바치면서 인심을 얻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기본적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은 독재자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사회 곳곳에서는 불평과 불만들이 터져나왔고, 그 중 하나가 바로 1219년 10월, 의주에서 벌어진 한순과 다지의 반란이었다.
두 사람이 반란을 일으켜 방수장군 조선과 의주의 수령 이체를 죽이고는 스스로 원수(元帥)라고 일컬었으며, 관청에다 감창사와 대관을 설치하였다. 제멋대로 국가의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주니, 여러 성들이 호응하였다.
고려사 반역열전에 실린 두 사람의 처음 신분은 변경을 지키는 군인인 수졸이었다. 그런데 한순은 별장이 되었고, 다지는 낭장이 되었다는 내용이 그다음으로 나온다. 별장은 정7품의 무관직이며, 낭장은 정6품의 무관직이다. 품계는 별장인 한순보다 낭장인 다지가 높은 편인데 반역 열전에는 한순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아마도 한순이 주도적으로 반란을 일으켜서 그런 것 같다. 병사였던 두 사람이 별장과 낭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거란족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국가에 충성하고 잘 싸워서 승진한 그들이 왜 반란을 일으켰고, 곡식을 나눠주자 다른 성들이 호응한 이유는 역시 두 사람의 반역 열전에 잘 나와 있다. 서북면 병마사 김군수에게 보고를 받은 조정에서는 장군 조염경을 파견해서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한순과 다지는 조충과 김군수, 정공수 등을 제외하는 나머지 관리들과 장군들은 모두 포악하고 탐욕스러워서 백성들이 견디기 어렵다고 하소연한 것이다. 보고를 받은 최우는 연루된 자들을 유배형에 처하는 등 조치를 취하기는 했지만 협상은 잘 진행된 것 같지 않다. 한순과 다지가 이끄는 반란군이 북계를 휩쓸자 최우가 진압군을 파견한 것이다. 그러자 한순과 다지는 금나라의 장군 우가하와 손을 잡는다. 금나라 군대를 의주로 끌어들여서 주둔시키고 자신들은 박주에 머물면서 고려군과 대치한 것이다. 두 사람은 아마도 거란족과의 전쟁에서 충분히 실전경험을 가졌고, 지휘관들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나 도적들과는 달리 조직적으로 저항하면서 진압군과 싸웠을 것이다.
전황이 지지부진하자 진압군을 이끌고 있던 김군수는 묘안을 떠올린다. 한순과 다지가 끌어들인 금나라 장군 우가하에게 사절을 보내서 고려와 금나라는 동맹 관계인데 반란군과 손을 잡고 고려 땅에 들어온 것을 항의한 것이다. 우가하는 잘못을 깨달았다기 보다는 그들과 계속 함께 하면 자신에게 좋을게 없다는 판단을 했다. 결심을 한 우가하는 한순과 다지를 불러들여서 연회를 베풀어준다. 그리고 술에 취하게 한 다음에 목을 베어서 개경으로 보낸다. 체포된 잔당들은 유배를 보냈다가 풀어줬는데 다음 해 동진의 군사들과 함께 다시 의주로 쳐들어온다. 하지만 이번에는 고려군에게 패배하면서 복수에 실패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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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섭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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