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지구의 온도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고, 일회용 컵 하나를 쓸 때도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시대다. 도덕적 의무감과 개인의 욕망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현대인은 자주 길을 잃는다. 연극 ‘렁스’는 바로 이 지점, 가장 사적인 대화에서 시작해 인류 전체의 생존 문제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연극열전
무대 위에는 흔한 의자 하나 없고, 조명의 극적인 변화나 장면 전환을 위한 암전도 없다. 남녀 주인공 두 명은 오직 자신들의 대사와 몸짓, 그리고 호흡만으로 90분 남짓한 시간을 채운다.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은 역설적으로 인물들의 내면과 대사에 고스란히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낸다. 여기서 장치의 도움 없이 오직 인간의 ‘숨’(Lungs)으로만 극을 이끌어가겠다는 연출적 의도가 드러난다.
“아기를 가질까?”
극은 남자가 불쑥 던진 이 제안으로부터 출발한다. 이 한마디는 평화롭던 연인의 일상에 거대한 균열을 낸다. 환경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여자는 즉각적으로 반발한다. 아이 한 명이 평생 배출할 이산화탄소의 양, 에펠탑 무게에 달하는 쓰레기, 인구 과잉으로 신음하는 지구의 현실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때문이다. 평소 재활용 분리수거를 철저히 하고, 환경 단체에 기부하며, 스스로 ‘좋은 사람’이라고 믿어왔던 이들이지만 출산이라는 근원적인 문제 앞에서 신념이 거칠게 충돌한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공포, 양육의 책임감, 그리고 서로에 대한 신뢰 문제가 뒤섞인 대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점차 감정적인 폭언으로 변질된다. 갈등 끝에 이들은 임신에 성공하지만, 불행히도 유산이라는 비극을 맞이한다. 이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쌓이고 결국 두 사람은 이별한다. 세월이 흘러 재회한 그들은 여전한 감정을 확인하고 마침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연극은 두 사람이 늙어 죽음을 맞이하는 남은 생의 전 과정을 압축해 보여준다. 별도의 의상 전환이 없는 이 극에서, 배우들이 극의 흐름에 따라 신발을 바꿔 신는 행위로 세월의 흐름과 삶의 단계를 표현한다.
ⓒ연극열전
이 과정에서 제목인 ‘렁스’의 다층적인 의미가 선명히 드러난다. 작품 속 폐는 단순히 생명을 유지하는 신체 기관에 머물지 않는다. 두 사람은 앞으로 수십 년간 숨 쉬며 살아갈 한 인간을 세상에 내놓는 일의 무게를 되짚는다. 그 과정에서 아이가 평생 배출할 탄소의 양을 따져보며, 새 생명을 산소와 이산화탄소를 교환하는 하나의 ‘폐’로 바라보기도 한다. 환경을 파괴하는 주범이자 동시에 살아 숨 쉬는 기적인 인간의 모순이 이 단어에 압축돼 있다. 결국 제목이 가리키는 폐는 지구라는 생태계 안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의미한다.
작가 던컨 맥밀란은 이들의 대화를 통해 현대인이 겪는 도덕적 불안증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거대한 지구적 재앙 앞에서도 결국 인간은 자신의 작은 불행과 사랑에 가장 크게 흔들리는 나약한 존재임을 보여준다.
시계처럼 끊임없이 돌아가는 원형 무대 위에서 시간은 잔인할 정도로 빠르다. 대사 한 마디로 몇 년의 세월이 건너뛰고, 청년이었던 남녀는 어느새 노인이 되어 무대 위에 서 있다. 극이 끝날 때 관객의 귓가에 남는 것은 그들이 내뱉었던 수많은 말과 거친 숨소리다.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숨을 쉬고 말을 하며 끊임없이 지구의 자원을 소비하고 타인과 부딪힌다. 서툴고 이기적일지라도,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끝까지 대화를 포기하지 않는 두 남녀의 발버둥은 관객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이번 시즌에는 임주환·박성훈·김경남이 남자 역을, 정운선·전소민·신윤지가 여자 역을 맡았다. 공연은 8월 2일까지 충무아트센터 중극장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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