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의왕’이라 부르는 이유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5.27 07:00  수정 2026.05.27 07:00

고은경희한의원 구로디지털단지점 이한별 원장.

부처님 오신날을 맞으면 절에서 흥미로운 표현을 듣는다. 부처님을 ‘의왕(醫王)’이라 부르는 것인데, 이는 단순한 종교적 비유가 아니다. 불교 전통에서 의학은 수행의 일부였고 이 철학이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우리 한의학의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보살(菩薩)이 반드시 통달해야 하는 다섯 가지 학문을 오명(五明)이라 한다. 그 중 네 번째가 바로 ‘의방명(醫方明)’이다. 의학과 약학을 통해 몸을 강하게 하고 타인의 질병을 치료해 중생을 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불교에서 의학 지식은 선택이 아니라 보살의 필수 덕목이었다. 부처님을 의왕이라 부르는 것은 그 전통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삼국시대 한의학은 중국 의학만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불경에 담긴 인도의학 지식이 함께 영향을 주었다. 백제에서는 의료를 담당한 승려인 승의(僧醫)들이 중국 남조시대의 한의방과 불교를 통해 전해진 인도 의방을 융합시켜 독자적인 의학을 발전시켰다.


그 결과물이 우리나라 최초의 의서 중 하나인 ‘백제신집방(百濟新集方)’이다. 실제로 백제와 신라의 승의들은 일본에 건너가 일본 의학 건설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한반도 의학이 단순 중국 의학의 수입이 아니라 인도의학의 흐름을 함께 소화해낸 결과라는 의미다.


흥미로운 것은 한의학의 특정 영역, 특히 안과(眼科)가 다른 부분과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한의학에서 눈은 오장육부(五臟六腑)와 연결돼 있으며, 특히 간(肝)과의 관계를 강조한다.


안구건조증부터 시력 저하까지 눈의 문제를 전신의 기능 부전으로 보는 방식이다. 이 독특한 관점은 인도 의학 아유르베다(Ayurveda)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기원전 5세기 인도의 수슈르타(Sushruta)라는 의사는 ‘Sushruta Samhita’라는 의서를 저술했는데, 이 책에서 76가지의 눈 질환을 분류하고 백내장 수술까지 기술했다. 눈을 단독 장기가 아닌 전신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하는 관점 자체가 아유르베다의 핵심이었다.


아유르베다와 한의학의 유사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닐 수 있다. 아유르베다는 에테르·공기·불·물·흙의 다섯 요소로 인체를 설명하고 체질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한의학은 목·화·금·토·수의 오행(五行)으로 인체를 이해하고 사상의학에서 네 가지 체질로 분류한다.


철학적 기반이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독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다섯 요소로 세계를 설명하는 방식’과 ‘전신의 균형으로 질병을 보는 관점’이 놀랍도록 닮아 있다. 불교라는 통로가 인도의 사유 방식을 동아시아 의학에 녹여냈을 가능성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실제 임상에서도 이 차이는 뚜렷하게 나타난다. 한의학에서는 눈이 피로한 환자의 간 기능을 살피고 전신의 기혈(氣血) 순환을 개선한다. 귀비탕(歸脾湯), 명목지황탕(明目地黃湯) 같은 처방은 눈만을 위한 ‘눈 약’이 아니라 전신의 영양을 보충해 눈이 제 기능을 하도록 돕는다.


현대 안과처럼 눈 자체의 구조적 문제만 다루는 방식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어디서 이 관점이 나왔는지 묻는다면 불경을 들고 동쪽으로 걷던 승의들의 발길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의학사는 지역과 문화를 넘어 흐른다. 한의학이 순수 ‘한국의’ 의학이 아니라 불교와 함께 인도로부터 받은 유산이 담겨 있다는 사실은 한의학의 가치를 낮추지 않는다. 오히려 역사의 깊이를 보여줄 뿐이다. 부처님을 따랐던 승의들의 손길이, 오늘도 환자들의 눈 건강을 통해 이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글/ 이한별 한의사·구로디지털단지 고은경희한의원 대표원장(lhb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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