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산소호흡기 낀 폐암환자 '구수증서' 유언 효력 인정"

어윤수 기자 (taco@dailian.co.kr)

입력 2026.05.04 10:47  수정 2026.05.04 10:47

1·2심 "유언장 작성 충분히 녹음도 가능"

3심 "호흡곤란 증상…자유로운 유언 곤란"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데일리안DB

임종을 앞둔 환자가 남긴 '구수증서(타인이 말로 전한 내용을 글로 작성한 증서) 유언' 역시 효력이 인정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유족 A씨가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예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내보냈다고 4일 밝혔다.


A씨는 자신의 이부(異父)형제인 B씨가 2021년 4월 숨지기 직전 병상에서 남긴 유언에 따라 B씨의 예금 9600만5752원원 지급을 요구했으나 은행으로부터 거부당하자 이듬해 8월 소송을 제기했다.


B씨는 유언 당시 말기 폐암 환자로 호흡이 어려워 산소소흡기 등을 찼고 마취 성분이 들어간 진정제까지 맞아 발음이 어눌한 상태였다.


B씨는 A씨와 증인 2명이 입회한 상태에서 "모든 재산을 A씨에게 증여한다"는 유언을 남겼다. B씨가 말하면 한 명이 이를 받아 적고 다시 읽어주는 방식으로 이뤄졌고 이같은 유언 과정은 동영상으로 촬영됐다.


민법상 유언은 자필증서나 녹음, 공정증서, 비밀증서 등 형태를 원칙으로 하되 질병이나 기타의 급박한 사유가 있으면 구수(口授·말로 전하다)증서 방식으로 이뤄진 유언의 효력도 예외적으로 인정한다.


은행은 그러나 B씨가 남긴 유언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이 인정될 정도로 당시 상황이 급박하지 않았다는 것.


1·2심도 구수증서 유언을 무효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언장이 작성될 당시 망인은 자신의 재산 상태와 유증의 의미, 상대방 등을 충분히 인지하고 말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녹음에 의한 방식으로 유언을 할 수 없었다고 보기 어려워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유언 당시 망인은 신체 상태가 전반적으로 저하돼 있었을 뿐만 아니라 호흡곤란 증상으로 산소호흡기를 낀 상태에서 자유롭게 말을 하는 것이 곤란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망인이 일부 계좌번호를 말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유언 당시 의사 능력이 있었다는 증거일 뿐 스스로 유언 전체를 녹음할 만큼 건강 상태가 양호했다는 뜻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은 "유언의 요식성을 엄격하게 판단하는 이유는 유언자의 진의를 명확하게 하고 법적 분쟁과 혼란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수증서에 의한 유언을 하는 과정에서 문제제기에 대비해 녹음이나 녹화 등의 보조수단을 사용할 수 있고 망인의 구수 과정을 녹화한 것은 이런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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