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군부인’, 역사왜곡 고증참사 아니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5.24 07:00  수정 2026.05.24 07:00

'21세기 대군부인' 제작발표회 현장.ⓒ데일리안 방규현 기자

최근 '21세기 대군부인' 논란을 두고 많은 이들이 ‘역사왜곡’, ‘고증참사’라고 하면서 앞으론 역사 고증을 잘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문제해결을 위해 고증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문가 주장도 제기됐다.


하지만 역사왜곡이나 고증미비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시나리오의 기본 발상, 기본 설정에 심각한 잘못이 있었다. 고증을 아무리 잘 해도 이런 식의 설정이면 앞으로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이 작품은 조선왕조가 현대로 그대로 이어졌다는 상상을 담았다. 작품을 쓴 유지원 작가는 “‘21세기 대군부인’은 가상의 입헌군주국을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판타지 드라마”라며 “조선 왕실이 굳건히 현대까지 이어졌다는 상상 아래 우리의 전통과 아름다움을 보여드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나 조선의 예법을 현대에 적용하고 가상의 현대 왕실을 그리는 과정에서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이 부족했다”고 했다.


작가는 고증이 부족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조선의 많은 부분을 고증을 거쳐 재현한 것으로 보인다. 감독도 제작과정에서 전문가에게 자문을 받았다고 했다. 많은 이들이 집중적으로 질타하는 것이 국왕 즉위식에서 ‘천세’라고 외치고, 왕이 ‘구류면류관’을 썼다는 점인데 그런 걸 다 자문을 받았다는 것이다. 대군, 대비, 이런 호칭들도 다 고증된 역사적 사실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걸 아무리 최고의 전문가들을 통해 고증하고 자문 받아서 표현해도 설정 자체가 무조건 해선 안 되는 내용이라는 점에 있다. 조선을 현대에 재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인 것이다. 이 핵심을 놓치고 고증문제라고만 여기면, 앞으로 이런 드라마를 고증을 더 잘해서 만들면 된다는 것인가? 철저한 고증으로 조선을 재현하면 되는 것인가?


역사왜곡도 엉뚱한 지적이다. 이 드라마는 과거 역사를 표현한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는 현재를 상상한 작품이다. 역사왜곡만 안 하면 향후에 이런 상상의 작품을 또 만들어도 될까? 당연히 아니다. 역사가 아닌 상상의 내용이 문제다.


‘고증을 잘 해서 조선 재현을 잘 해라’가 아닌 ‘조선 재현 자체가 문제다’라는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조선 재현이 문제인 이유는 현대가 과거와 다르기 때문이다. 과거엔 황제국인 중국에게 왕국인 조선 등이 사대하는 체제였다. 조선 왕실은 중국 황실보다 급이 낮았다.


현대엔 이런 식의 서열적 체제가 용납되지 않는다. 모든 나라가 평등하다는 게 현대 국제질서의 기본 원칙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에 조선 왕실의 문화를 덮어씌우면 마치 한국이 지금도 중국 아래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조선 왕실 문화를 잘 고증해서 역사적으로 엄밀하게 재현할수록 이런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 그래서 ‘천세’ 같은 문제도 발생한 것이다.


더군다나 중국이 동북공정 등으로 한국문화를 흡수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게 더 문제다. 중국이 대국화하면서 한국 같은 나라를 자기들의 아래에 있는 국가 또는 과거식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제후국처럼 바라보는 중국 누리꾼들도 많다.


조선을 현대에 재현하면 이런 중국의 의도에 말리는 결과가 빚어진다. 그러므로 입헌군주국 판타지를 만들더라도 조선이 아닌 대한제국을 재현하든지 아니면 아예 상상의 황실을 새로 구성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왕이 아닌 황제이고 대군이 아닌 친왕인 것이다. 무조건 조선 고증을 잘 하라고만 하면 왕의 아들은 결국 또 대군으로 표현될 것이다. 이것은 고증 오류가 아닌 한국 격하다.


현대 한국이 중국에 대하여 자주국의 위상을 지켜야 한다는 점, 중국의 대국화에 의해 발생하는 우리의 위협감, 이런 맥락을 모르면 앞으로도 이번과 같은 사고가 터질 수 있다. 그러니까 고증이 아닌 현대 국제관계의 흐름 파악이 문제의 핵심이다.


'21세기 대군부인' 같은 대형 작품을 만들면서 작가부터 제작사, 주요 제작진 전체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 놀랍다. 그저 조선 재현에만 함몰됐던 것 같다. 이런 제작진에게 고증을 요구하는 건 조선 재현을 더 잘 하라는 소리다. 현대 한국의 자주성 확립엔 조선 왕실 재현 판타지 자체가 맞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글/ 하재근 문화평론가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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