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연체 기록만 볼 건가"…靑 '포용금융론'에 고신용자 역차별 논란

김은지 기자 (kimej@dailian.co.kr)

입력 2026.05.05 04:00  수정 2026.05.05 04:00

김용범, 황금연휴 금융 구조 개편론 제기

李대통령 '잔인한 금융' 문제 의식 구체화

불법대부 무효 메시지까지 맞물려 파장

野 "신용사회 파괴하는 포퓰리즘 개악"

이재명 대통령이 2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뉴시스

청와대가 이른바 '포용금융론'을 전면에 띄우면서 고신용자 역차별 논란이 번지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황금연휴 동안 금융 시스템 개편 필요성을 잇달아 제기했고, 이재명 대통령도 법정 허용치를 초과한 불법대부의 상환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이 지난해부터 제기해온 '잔인한 금융' 문제 의식이 청와대 차원의 금융 구조 개편론으로 구체화되는 양상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9일 국무회의에서 연 15%대 서민 대출 금리를 지적하며 금융 구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당시 이 대통령은 "고신용자에는 저이자로 고액을 장기로 빌려주지만, 저신용자에는 고리로 소액을 단기로 빌려줘 죽을 지경일 것"이라며 "가장 잔인한 영역이 금융 영역 같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어떻게 서민 금융이란 이름을 붙이느냐"며 "경제 성장률 1% 시대에 성장률의 10배인 15%가 넘는 이자를 주고 서민이 살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최근 김 실장도 금융 시스템을 주제로 한 자기 성찰 형식의 글을 연달아 올리며, 은행권과 신용평가 체계를 겨냥한 메시지를 냈다. 김 실장은 지난 1일 페이스북에 '금융의 구조 시리즈를 시작하며'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이번 연재가 "왜 가장 여유 있는 사람은 가장 낮은 금리를 누리고, 가장 절박한 사람은 가장 비싼 돈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1편에서 이 대통령의 문제 제기를 직접 언급했다. 그는 대통령이 어느 날 "한국 금융은 왜 이렇게 잔인합니까"라고 다시 입을 뗐고, 그 말이 "송곳처럼 가슴에 박혔다"고 했다. 이어 신용등급을 두고 "이것은 점수가 아니라 구조"라며 "금융이 설계한 보이지 않는 계급장"이라고 규정했다.


2편에서도 김 실장은 이 대통령의 질문을 다시 소환했다. 그는 "왜 가장 어려운 사람이 가장 높은 금리를 내는가"라는 대통령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고 한 뒤, 현재의 금융 구조를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김 실장은 "나 역시 이 시스템의 한복판에 있었기에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우리가 만든 이 구조는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만든 것이기에, 바꿀 수 있다"고 했다.


마지막 시리즈에서 김 실장은 "글을 쓴 목적은 신용 질서를 무너뜨리거나 무책임한 탕감을 주장하자는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지금의 질서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그 과정에서 도대체 어떤 구간이 버려지고 있는지를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신용평가 체계와 관련해 "언제까지 과거의 연체 기록이나 카드 이력만 쳐다보고 있을 건가. 금융 이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갚을 능력이 없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통령도 연휴 중인 3일 불법사금융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냈다. 이 대통령은 엑스(X·옛 트위터)에 불법사금융 피해 신고 문턱을 낮추는 내용의 대부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의 글을 공유하며 "법정 허용치를 초과하는 불법 대부는 무효다. 즉 갚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적었다.


이 위원장은 해당 글에서 "연 60%를 넘는 대부계약은 원금도, 이자도 모두 무효다. 법은 이미 피해자 편에 서 있다"며 불법 사금융 피해 신고를 독려했다.


다만 청와대의 메시지가 저신용자 구제와 불법사금융 대응에 쏠리면서, 고신용자 역차별과 신용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정치권 내 비판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앞서 지난해 9월 이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금융 원칙을 뒤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발했다.


최보윤 수석대변인은 당시 논평에서 "성실히 신용을 지켜온 고신용자도 똑같이 서민"이라며 "그들을 '더 낼 사람'으로 낙인찍고 금리를 올려 부담을 전가하는 것은 역차별이자 국민 갈라치기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금융 복지는 국가의 책임이지, 특정 집단의 지갑을 털어 메울 일이 아니다"라며 "대통령 한마디에 금리 정책이 흔들린다면 시장 불안은 커지고, 그 피해는 국민 전체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대신 정부가 법으로 정해진 서민금융 예산을 제대로 집행하고, 보증 확대와 채무조정 제도 강화를 통해 금융 사각지대를 메워야 한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최근 논란이 재점화되면서,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대통령의 하명에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이 스스로 '잔인한 시스템의 공범' 운운하며 기상천외한 대출 제도 개편을 예고했다"고 비판했다.


나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정작 신용사회를 파괴하는 건 그들의 잔인한 포퓰리즘 개악"이라며 "고신용자가 반드시 고소득자인 것은 아니련만, 이렇게 제도를 뒤집으면 앞으로 대체 누가 성실히 돈을 갚겠느냐"고 반문했다.


끝으로 "성실하게 빚을 갚아온 대다수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며 '정의'를 운운하는 것은 명백한 기만"이라며 "기존 시스템을 바꾼다는 핑계로 하루하루 정직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잔인한 정치는 당장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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