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서 "내가 '프로젝트 Y'의 무기 되고 싶었다" [D:인터뷰]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입력 2026.01.11 11:25  수정 2026.01.11 11:25

1월 21일 개봉

전종서는 등장부터 확실한 결을 가진 배우였다. 날것의 에너지, 위험한 긴장감이 공존하는 얼굴로 영화 ‘버닝’(2018)을 통해 강렬한 첫 인상을 남긴 그는, ‘콜’(2020)에서 소름 끼치는 악역 영숙을 연기하며 연기력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이후 ‘연애 빠진 로맨스’(2021), ‘모나리자와 블러드 문’(2023), ‘발레리나’(2023) 등 장르와 국적을 넘나드는 작품 선택으로 스크린에서의 입지를 다졌고, 드라마 시리즈 ‘몸값’(2022),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2022), ‘웨딩 임파서블’(2024), ‘우씨왕후’(2024)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까지 확장했다. 연기력과 화제성, 작품성을 동시에 확보한 선택들이 이어지며 전종서는 동시대 또래들 중에서도 독보적인 궤적을 구축해온 배우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앤드마크

이처럼 장르와 인물을 가리지 않고 자신만의 밀도로 캐릭터를 구축해온 전종서의 행보는, 그가 다음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에 대한 기대를 자연스럽게 키운다. 전종서의 스크린 컴백작 '프로젝트 Y'는 화려한 도시 그 한가운데에서 다른 내일을 꿈꾸며 살아가던 미선(한소희 분)과 도경(전종서 분)이 인생의 벼랑 끝에서 검은 돈과 금괴를 훔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영화 ‘박화영’, ‘어른들은 몰라요’를 연출한 이환 감독의 첫 상업영화 데뷔작이다.


“(한)소희 배우와 함께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가 영화관 상황이 유난히 안 좋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이걸 같이 해보면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이상한 용기를 냈던 것 같아요. 저희를 믿어주시겠다는 분들도 계셨고요. 또래 여자 배우 투톱 영화인 만큼, 단순히 흘깃 보더라도 아이코닉하게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옷이나 패션 같은 이미지적인 부분에도 많이 신경 썼고, 포스터 한 장 만으로도 저 두 여자가 나와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하는 궁금증을 남기고 싶었어요. 그래서 한번 도전을 해보자고, 그렇게 의기투합하게 됐어요.”


도경은 뛰어난 운전 실력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인물이다. 인생의 벼랑 끝에서 다시는 오지 않을 기회를 붙잡기 위해, 모든 것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검은 돈과 금괴를 훔치는 과감한 선택을 감행한다. 미선과 함께 이 바닥을 뜨겠다는 목표 하나로 거침없이 질주하지만, 곧 돈과 금괴에 얽힌 이들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단단해 보이는 외면과 달리, 위태로운 내면을 품은 도경은 미선과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이야기를 이끈다. 전종서는 이 인물을 통해 두 여자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균형과 반전의 서사를 강조하고 싶었다.


“제 캐릭터는 겉으로는 터프하고 강인해 보이지만, 사실은 유리알 같고 어디로 튈지 모르고 금방 깨질 것 같은 반전을 가진 인물이었으면 했어요. 반대로 소희 배우가 맡은 미선은 연약하고 섬세해 보이지만, 의외로 행동파고 굉장히 질기고 묵직한 캐릭터예요. 서로 반전의 요소를 하나씩 가져가면서, 데칼코마니처럼 닮아 있는, 둘이지만 하나 같은 느낌을 만들고 싶었어요.”


전종서는 이번 작품을 통해 상업영화 안에서 이환 감독이 가진 정서를 조금 더 솔직하고 거칠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마음은 촬영 현장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장면에 필요하다면 먼저 몸을 던지겠다는 선택을 주저하지 않았다.


“이 영화에는 날 것의 솔직함과 젊음의 패기가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상업영화가 가진 보수적인 지점들에 대해서도, 캐릭터를 통해 조금 더 과감해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고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이 영화의 무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 방향성 안에서 현장에서도 제가 먼저 ‘이 장면에서는 옷을 더 벗을게요’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안 된다, 입으셔라’고 하셨어요. 감독님이 배우 출신이셔서, 배우의 초점에서 디렉션을 주시고 직접 연기하는 것처럼 보여주시는 점이 인상적이었고, 전체적으로 같이 연기하면서 찍는 느낌이 강했던 현장이었어요.”


의상 역시 캐릭터를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실제로 평소 자신이 입을 법한 옷들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영화 전체에서 등장하는 의상의 수는 최대한 줄였다. 화려한 변화보다는 반복되는 이미지로 인물의 인상을 각인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선택이었다.


“아이코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서 의상팀과 정말 많이 이야기했어요. 실제로 제가 입을 법한 옷들을 많이 입었고, 영화 전체에서 입는 옷의 수를 최대한 줄였어요. 관객분들 머릿속에 미선과 도경의 몇 컷 장면만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앤드마크

도경과 가영(김신록 분)의 관계는 모녀이면서도 애증에 가깝다.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내던 엄마를 구하러 향하지만, 그 끝에서 도경이 마주하는 것은 또 한 번의 버림이다. 생존의 순간에서 가족이라는 이름마저 무력해지는 장면은 강한 인상을 남기며, 전종서, 김신록 배우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와 호흡 역시 서사의 밀도를 끌어올린다


“가영은 제 친엄마로 등장하는데, 가족이지만 악연 같은 관계예요. 엄마를 안 보고 산 지 오래됐는데, 필요한 상황이 생겨서 찾아가거든요. 엄마를 살리러 갔는데 거기서 또 한 번 버림받는 순간이 와요. 엄마에게 버림받는 짐승 같은 순간을 연기해보고 싶었어요. 그 감정의 한풀이를 뒤에서 석구에게 하게 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 장면이 굉장히 임팩트 있었어요. 전체 영화 안에서는 이런 드라마적인 서사가 조금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그 장면을 어떻게 가져갈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가영의 곁에서 도경과 함께 자란 미선에게 가영은 또 하나의 엄마였다. 가영의 죽음 이후, 미선이 감정을 숨기지 않고 감정을 쏟아내는 반면, 도경은 홀로 감정을 삼키며 눈물을 훔친다. 같은 상실을 마주하고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슬픔을 드러내는 두 인물의 대비는, 도경이라는 인물이 품고 있는 혼란과 균열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원래는 도경이가 폭발하듯이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연기하면서는, 왜 내가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왜 저 여자 때문에 울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엄마가 죽는 게 왜 이렇게 연결되는지도 혼란스러웠어요. 미선을 통해 엄마의 죽음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감정이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차라리 우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재촬영 끝에 드라마틱하게 우는 방향을 선택했어요.”


배우 한소희와의 호흡 역시 작품의 중요한 축을 이룬다. 두 사람의 인연은 영화 촬영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소희가 먼저 전종서에게 인스타그램 DM을 보내며 교류를 시작했고, 캐스팅 전부터 자연스럽게 친구가 됐다.


“연기적으로 깊이 이야기할 여유가 없는 현장이었어요. 시간도 부족했고, 날씨도 춥고, 육체적으로 굉장히 열악했거든요. 그런데 제 옆에 항상 저 말고도 똑같이 모든 신을 같이 해내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이 컸어요. 빠르게 감독님과 의견을 나누면서 찍다 보니 리듬이 자연스럽게 맞춰졌어요. 옆에서 본 소희는 소탈하고, 소박하고, 솔직하고 대범한 친구예요. 같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배우로서는 예술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선택이나, 그 외에 보여지는 모습들도 굉장히 매력적이에요.”


영화가 끝난 뒤, 미선과 도경의 삶은 어디로 향했을까. 정답은 없지만, 전종서는 여전히 도경과 미선이 함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선이가 여행 가자고 하면, 도경이가 따라다니지 않을까요. 아마 같이 여행을 다니고 있을 것 같아요.”


작품이 쌓이면서 전종서도 자연스럽게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연기해온 시간이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의식하지 않아도 몸에 남는 감각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고, 취향이나 시선도 달라졌다


“20대를 돌아보면, 그때 좋아했던 것들이 또렷하게 보여요. 지금은 그때 몰랐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도 하고요. 지금까지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앞으로의 선택에 좋은 양분이 되길 바라요. 지금의 제 취향은 20대 때와 많이 달라졌어요. 옷, 인테리어, 언어 선택, 사람을 대하는 방식까지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작품을 하면서, 내가 이미 갖췄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제목 속 ‘Y’에 대해 전종서는 ‘유스’(Youth)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청춘의 한가운데를 통과하던 시기에 만난 작품이었고, 그래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만 같다.


“이 작품은 저에게도 시절인연 같은 영화예요. 재작년에 찍은 작품인데, 유난히 기억에 많이 남아요. 많은 관객들이 보러 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새해에 보기 아주 걸맞은 영화라고 생각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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