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한 번에 멈춘 국가행정…디지털 정부의 민낯

배군득 기자 (lob13@dailian.co.kr)

입력 2025.09.28 11:30  수정 2025.09.28 11:31

국가자원, 단일 전산실 화재로 647개 시스템 동시 마비

전자정부 마비 사태…AI 정부 전환 ‘빨간불’

예고된 위기와 반복된 정책 실패

‘하드웨어 리스크’ 앞에 멈춰선 한국

윤호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장(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난 27일 정부세종청사 중앙재난안전상황실에서 열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관련 중대본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대한민국 전자정부의 본질적 취약성을 일거에 드러냈다. 단일 전산센터의 일부 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인해 전국적 수준의 행정마비가 현실화됐다. 반복되는 전산 재해의 구조적 한계, 그리고 인공지능 정부로의 전환에 내재된 걸림돌이 명확히 부각됐다.


행정 마비, 한 층 불에 멈춘 국가


지난 26일 대전 소재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하 국가자원) 전산실에서 불이 나며, 647개 정부 핵심업무 시스템이 동시 중단됐다.


모바일 신분증, 국민신문고, 정부24 등 국민이 직접 이용하는 서비스 436개를 포함해, 각종 행정민원이 ‘올스톱’ 했다. 단일 건물, 단일 전산실 일부에서 일어난 사고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 등 대부분의 주요 부처 전산 업무를 마비시켰다.


이는 수많은 국민 민원·행정·금융업무에 직접적 타격을 줬다. 문자·영상 119 신고, 우편물 업무, 민원 및 세금납부 등도 큰 혼선을 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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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사고 직후 ‘경계’에서 ‘심각’으로 위기단계를 격상,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체제로 전환하며 ‘전면 복구’에 나섰다. 그러나 실질 복구에는 수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고 직후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로 발생한 정부 서비스 장애로 인해 국민께서 겪으신 불편에 대해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상황의 중대함을 고려하여 위기경보 수준을 경계에서 심각으로, 위기상황대응본부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로 격상해 화재 상황과 장애 현황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대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차관은 이어 “항온항습기를 우선 복구 중이다. 이후 서버를 재가동해 시스템을 복구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서비스 장애 원인은 선제적 가동중단 및 항온항습기 손실 등 복수 요인이다. 특히 ‘이중화 시스템 부재’와 ‘온나라 등 핵심업무망 직접 피해’가 복구를 어렵게 만들었다.


전자정부의 반복되는 이중화 실패


정부는 화재 직후 ‘장애 3시간 이내 복구’를 반복적으로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번 화재로 실질적 재해복구체계는 현저히 부실함이 드러났다.


과거 카카오 판교 화재에서도 전체 IT 인프라 ‘이중화 미비’로 먹통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근본적 인프라 보완이 이뤄지지 않았다. 공공 IT 예산의 90%가 노후 인프라 유지에 쓰이고, 실질 백업 투자는 계속 미뤄졌다.


정부 R&D·혁신 예산, 정책결정의 우선순위 미비가 누적된 결과다. 실제로 주 전산실 백업서버·클라우드 이중화·외부 복제서버 등 원론적 대책만 반복해 제시됐을 뿐, 현실적 인프라 개선은 뒷전을 밀렸다.


한편 일부 독립 전산망(국방부·병무청 등)만 정상가동된 것은 ‘전체 행정 IT 일원화’에 따른 부작용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국가안보와 시민권 보장’이 물리적 전산실 한 곳의 안전 수준에 좌우되는 상황임이 재확인된 셈이다. 이는 ‘디지털 강국, AI 정부’라는 국가 비전에 심각한 신뢰 저하를 야기했다.


AI 정부, 혁신인가 허상인가


정부는 이번 화재로 오는 2027년까지 ‘공통 AI 기반 정부’ 도입을 천명하고도 실제 AI 전환 인프라의 밑바탕이 무너지는 장면이 연출된 것이다.


AI 정부의 핵심은 물리적·디지털 인프라 모두의 이중안전망이다. 하지만 기본적 데이터센터 안전과 백업·재난복구 체계가 미비한 상황에서, AI·클라우드·거대언어모델 등 첨단기술 도입은 ‘겉치레’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높다.


정부 업무망 내 AI 도입·자동화 확대 계획도 이번 사태로 일정이 연기됐다. AI가 국가행정을 실질적으로 혁신하는 데 필요한 ‘가용성·복원력·재난대응’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이 밖에 ▲예산 집행의 고질적 관성 ▲국가안보 위협과 사이버 공격 대응력 부족 ▲실질적 ‘국민피해’ 전가 등도 구조적 문제로 반복되고 있다.


IT업계 한 전문가는 “전자정부의 허상과 구조적 취약성을 넘어서려면, 근본적 이중화 설계와 백업, 재난관리 체계 ‘실질 강화’가 이제는 선택이 아닌 필수임을 다시 확인시켜 준 사건”이라며 “이번 대전 국가자원 화재가 남긴 뼈아픈 교훈은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디지털 국가’의 리스크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혁신의 핵심 전제, 즉 ‘인프라 안전망’은 계획이 아니라 실천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초기 설계상의 문제와 뒤늦은 개선 작업에서 안전 관리가 충분치 않았다. 정부가 3시간 내 복구를 공언했지만, 백업센터 가동이 제한적이어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며 “리튬이온 배터리 등 중요 설비를 전산실 내부에 둔 방식, 네트워크 자동 우회 기능 부재 등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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