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탄 쏘아올린 HD현대·롯데케미칼…석유화학 구조조정 물살타나

정진주 기자 (correctpearl@dailian.co.kr)

입력 2025.06.12 14:54  수정 2025.06.12 14:54

HD현대오일뱅크 롯데케미칼, 대산 NCC 설비 통합 방안 논의

석화 업계, 공급과잉·수익성 악화로 구조조정 현실화 기대감

과거 통합 논의와 달리 자산이전·감산 방식까지 구체화

정부 대책·특별법 발의 등 정책·입법 대응도 맞물려 전개

롯데케미칼 대산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국내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충남 대산의 나프타분해시설(NCC) 통합을 검토 중인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는 관련 정책 지원책을 조율 중이며 정치권에서는 특별법 발의도 이어지고 있다.


공급과잉과 수익성 저하로 누적된 구조적 위기 속에서 산업계, 정부, 정치권이 각자 맞물려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구조조정이 실질화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은 대산 NCC 설비 통합 방안을 논의 중이다.


두 회사는 공동 설립한 합작사 HD현대케미칼을 통해 연 85만t 규모의 NCC를 운영하고 있으며, 롯데케미칼도 대산에 별도 NCC(110만t)를 보유하고 있다. 논의 중인 시나리오는 이들 설비를 HD현대케미칼로 현물출자하고 수요 상황에 따라 점진적 감산을 진행하는 구조로 전해진다.


이에 대해 양사는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대산 NCC 설비 통합 방안을 논의하는 배경에는 석유화학 업계 전반의 구조적 위기가 자리하고 있다. 범용 제품 중심의 생산구조가 글로벌 공급과잉과 중국의 자급률 확대, 중동발 신규 설비 가동 등의 여파로 수익성 악화에 직면하면서, 과잉 설비에 대한 정리 필요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여수·대산 등 주요 석유화학단지에 NCC 설비가 과도하게 밀집돼 가동률 저하가 지속돼온 만큼, 이번 논의는 시장 대응 차원의 감산 및 자산 통합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또한, 이번 사례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실질적 구조조정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쏠린다. 민간 기업 간 통합 논의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실제 실행까지 이어진 적은 없다.


정부·정치권도 움직인다


정부도 움직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의 후속 조치를 마련 중이다. 관계부처와 함께 설비 통폐합에 따른 지역경제 충격 완화를 위한 대책을 조율하고 있으며,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지정, 고용유지지원금 매출 요건 완화, 공정거래법상 공동행위 특례 등 제도 개선도 논의되고 있다.


정치권도 발을 맞추는 모양새다. 주철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석유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과도 맞물리는 내용으로, 구조조정 과정에서 세제·금융 지원과 규제 완화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조항들이 담겼다. 현재는 발의 단계지만, 여당 소속 의원이 대통령 공약 이행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만큼 향후 정책화 가능성도 높게 점쳐진다.


산업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가운데 정부와 정치권의 대응이 맞물리면서 구조조정의 현실화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론 실행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자산 이전 시 발생하는 세제 이슈, 생산능력 감축에 대한 공정위의 경쟁 제한 심사, 설비 감축에 따른 지역 반발 등 해결 과제가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 사례를 계기로 구조조정의 '실행 모델'이 현실화될 경우, 다른 기업들로도 논의가 확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전반의 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석유화학업계는 정부의 구조조정 지원 취지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세제·금융 지원 등 구체적인 방안이 시행령에 명확히 담겨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준IMF 수준 위기…정부 조정자 역할 나서야”


석유화학업계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되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초 유분 설비의 과잉 경쟁 해소를 위해 NCC 통폐합이 불가피하며 정부가 조정자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 생존을 위한 골든타임이 임박한 상황에서 민간 자구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배진영 성균관대 교수는 "기초 유분의 공급 과잉 상황에서 NCC 설비의 통폐합은 산업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라며 "롯데케미칼과 HD현대의 설비 통합 논의는 향후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NCC는 중복 설비를 폐쇄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 M&A가 아닌 '통폐합' 형태가 될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 자구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정부가 재정·세제 등에서 '당근'을 제공해야 기업들도 자발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배 교수는 특히 "석유화학 업계는 여전히 여섯 곳 이상이 기초 유분 설비를 보유한 채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다"며 "SK하이닉스 등 정부가 구조조정에 나섰던 과거 사례처럼,이번에도 정부가 직접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상황은 준(準)IMF 수준의 위기 국면이며,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으려면 LG화학 등 주요 업체들도 협상 테이블에 나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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