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렬 박사, 15년간 연구
이종관 교수 “고인돌이 담고 있는 우주적 의미와 인간 삶의 진리를 밝히는 데 성공”
수천 년 전, 사람들은 왜 거대한 돌을 옮겨 땅에 세우고 하늘의 별자리를 새겼을까? 단순한 무덤인가, 아니면 인간과 자연, 우주를 잇는 어떤 ‘지도’였던가?
ⓒ
지리학자 이병렬 박사가 고인돌에 새겨진 하늘의 길, 그리고 그 길을 따라 살아간 선사인의 사유를 담은 책 ‘하늘의 길, 고인돌에 새기다’(출판사 홀리데이북스)를 출간했다. 이 책은 고인돌을 무덤이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천문 지리와 인간의 삶을 조율한 복합적 구조물로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허무는 융합적 저작이다.
전북 고창이 고향인 저자는 늘 수천 기의 고인돌을 봐왔다. 이를 학문적 접근은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고창 고인돌의 입지와 방향에 내재한 자연지리적 원리를 탐색하기 시작했고, 이후 ‘문화역사지리학’이라는 렌즈로 고인돌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박사학위를 마친 후 고창으로 귀향한 그는 15년간 (사)고창문화연구회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마을지, 성씨 등 지역학을 체계적으로 연구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우연히 항공사진 속 부곡리 고인돌 군들이 북두칠성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고, 이것이 이 연구의 전환점이 되었다.
저자는 이후 수천 기에 이르는 고인돌을 직접 실측하며 조사했다. 위성지도와 드론 등을 활용해 고인돌의 배치와 방향성을 분석했고, 그 결과 이 고대 거석 구조물들이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춘분·추분, 하지·동지와 같은 태양의 주요 절기, 그리고 북두칠성, 북극성, 은하수 등의 별자리와 정합성을 갖고 배치되었음을 밝혀냈다. 또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수많은 성혈(바위구멍)은 임의의 장식이 아닌, 별자리의 구성과 대응된 ‘하늘의 표식’이었다. 그는 ‘천상열차분야지도’, ‘천문유초’ 등 고대 천문서를 통해 성혈 배열과 고대 천문학 간의 연관성을 입증했으며, 이를 토대로 “고인돌이 고대의 ‘천문 관측소’이자 ‘시간의 좌표계’ 역할을 했다”는 논지를 폈다.
저자가 조사한 대부분의 고인돌은 특정 산세와 물길, 고개의 위치 등 자연지리적 요소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저자는 “고인돌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고대인들이 하늘과 땅, 사람 사이의 조화를 기원하며 터를 정하고 구조를 세운 종합적 공간 구성체였다”고 말한다.
고인돌에 대한 저자의 시선은 한반도에 머무르지 않는다. 저자는 이집트의 피라미드, 마야의 신전, 잉카의 마추픽추 등 세계 각지의 거석문화와 한반도 고인돌 사이에 공통의 인식 코드가 있음을 주장한다. 저자는 “‘거석 코드’는 하늘을 관측하고, 그것을 땅 위에 새기려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자 인식의 흔적이다. 문자 이전, 인간은 별을 보고 방향을 정하고 계절을 이해했다. 고인돌은 바로 그러한 지식이 형태를 이룬 구조물이며, 이는 전 인류의 공통된 정신적 자산이라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고인돌이 단지 죽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삶을 위한 구조였다는 점이다.
저자는 “고인돌은 시간의 흐름을 기록하고, 절기와 계절의 변화를 예측하며, 공동체의 농경과 의례를 주관하는 사회적·천문학적 중심축이었다. 이 점에서 고인돌은 오히려 ‘삶의 구조물’이었다. 그는 고인돌이 공동체의 시간과 질서를 조율하는 장치로 기능했으며, 그것은 고대인의 세계관, 존재에 대한 철학, 우주에 대한 인식이 응축된 결정체였다”고 말한다. 고인돌이 말 그대로 ‘하늘의 길’을 땅에 새긴, 인류 사유의 천문학적 흔적이자 철학적 기념비하는 것이다.
저자는 “‘하늘의 길, 고인돌에 새기다’는 고인돌을 둘러싼 기존의 고고학적 해석에 도전하는 동시에, 지리학과 천문학, 인문학의 지식을 결합해 새로운 고인돌학을 제안하는 작업”이라며 이 책을 통해 고인돌을 단순한 유적이 아닌, 고대 사회의 철학과 삶, 그리고 우주 인식이 응축된 복합적 사유 구조물로 해석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고인돌을 보는 우리의 시선을 확장하고, 잊혀진 선사인의 정신 세계를 현재로 복원하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이종관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추천사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가 하이데거나 크리스티안 노르베르그 슐츠의 영향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공간철학과 거의 일치하는 독자적인 관점을 확립했다는 것이다. 그는 고인돌이 자리 잡은 땅과 하늘, 그리고 그 방향성에 대해 어떠한 학문적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접근함으로써, 고인돌이 담고 있는 우주적 의미와 인간 삶의 진리를 밝히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 진리는 마치 보석처럼 응결되어 책의 제목이 되었다”고 말했고, 김두규 우석대 교수는 “그의 오랜 답사와 연구는 기존의 연구와 전혀 다른 새로운 결과를 도출하였다. 고인돌을 단순한 무덤으로 보는 기존의 학설을 뛰어넘는 새로운 학설이 되기에 충분한 결과물이다. 풍수지리만으로 해석할 수 없는 천문 · 지리의 총체적 연구결과물이다”라고 책에 대해 평했다.
0
0
기사 공유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