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 이희만(대전 세림외과원장. 항문외과 전문의)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한다. 출발과 끝이 하나로 만난다.”
이 말이 적합한 비유인지 모르지만 항문외과를 진료하면서 항상 느끼는 것이 있다.
´입´과 ´항문´은 소화기관의 처음과 끝에 위치하지만 비슷한 점이 많다는 점이다. 발생학적으로 보면 두 기관은 생일도 비슷해 입과 항문은 거의 동시에 생성된다.
어머니 자궁에 착상된 태아가 약 8-9주정도 지나면 입과 항문이 생기는데, 항문의 경우는 장에서 내려오는 부분과 항문 쪽 피부에서 올라간 부분이 만나 이루어진다. 입과 항문은 생김새와 구조가 또한 매우 비슷하다. 입에 입술과 치아가 있다면, 항문에는 정맥총과 치상선이 있다.
항문의 내치, 외치정맥총은 일종의 쿠션조직으로 항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치상선은 항문이 개통되면서 항문점막과 항문의 피부가 만나게 된 부분인데 그 모습이 마치 이(齒) 모양의 주름과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항문입구로 부터 1.5cm 위에 있다.
침샘에서 소화를 돕기 위해 침을 분비하는 것처럼 항문 샘에서는 배변을 돕기 위해 윤활유 역할을 하는 점액질을 분비하는 것도 흡사하다.
질환적인 측면에서도 유사한 측면이 많다. 충치와 치질은 국민 병이니 말이다.
그런데 항문외과 전문의로서 참으로 서운한 점이 있다. 사람들이 항문과 입을 매우 다르게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항문은 입에 비해 그 대접이 괄시의 수준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하루 세 번 양치질을 하는 것은 잊지 않고 꼬박꼬박 챙기고 아이들에게 올바른 칫솔질을 가르치는 것에도 열심이다.
하지만 항문 관리를 위해서는 별 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충치가 생기면 얼른 병원에 가면서도 치질 진료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항문도 입처럼 평소 관리가 절실하다. 음식을 먹은 뒤 양치질을 하는 것처럼 용변을 본 뒤에 항문을 깨끗이 해 주는 것이 기본이다.
주목할 점은 양치질에도 방법이 있듯이 항문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데에도 요령이 있다.용변 뒤에는 휴지로 닦는 것보다 물로 씻어내는 것이 좋다. 항문은 여러 주름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휴지로는 완벽하게 청결을 유지할 수 없다.
샤워기로 미지근한 온도의 물을 뿌리면서 씻는 것이 최고이지만 여의치 않으면 비데를 사용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치질에 걸렸다면 조기치질인 경우는 좌욕을 해 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좌욕을 할 때 세수 대야에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는 항문내압이 증가하여 항문에 울혈이 생기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
가정용 좌욕기를 사용하거나 세수 대야를 낮은 의자 위에 올려놓고 하는 것이 좋다. 온수좌욕은 40도 정도의 따뜻한 물에 항문을 담그는 것으로 한 번에 10~15분씩, 하루 3~4회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지만, 만약 여의치 않다면 아침저녁으로 해주면 된다.
물로 씻거나 좌욕 후에는 수건이나 따뜻한 바람을 이용해 잘 말려 줘야 하는 것은 필수다. 항문에 털이 나 있는 경우라면 물기가 오래갈 수 있으므로 특히 건조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항문과 회음부는 음침한 곳인 만큼 습기가 많이 남아 있으면 세균이 쉽게 번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결을 유지하는 것과 함께 평소 항문의 피부를 보호하는 것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입술에 립스틱이나 립글로스를 바르는 것처럼 항문도 세척과 건조 후에는 로션 등을 발라서 피부의 과도한 건조를 방지하고 탄력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세제를 이용한 과도한 세척과 건조는 항문피부의 건조증 및 항문소양증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로션은 따로 구입할 필요 없이 얼굴이나 몸에 바르는 것을 쓰면 된다.
괄약근을 조였다 풀어주는 ´케겔 운동´도 항문의 탄력을 강화시켜 치질예방이나 항문의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항문에 이상 기류가 감지되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지체하지 말고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점이다.
조기에 치료를 하면 쉽게 고칠 수 있는 질환도 방치하게 되어 병이 진행되면 치료도 어렵게 되고 재발이나 합병증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항문주위 농양을 방치하면 치루로 진행되고, 이 조기치루(간단형 치루)를 방치하면 복잡형 치루로 진행되어 수술도 어렵고 재발이 많으며, 치루를 치료하지 않고 오래 방치하면 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
또한 그저 뒤가 불편한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대장, 직장암의 증상일 수도 있다.
항문은 그 길이가 비록 4cm에 불과하다. 하지만 변을 저장하였다가 적절한 때, 적절한 장소에서 배출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기관이다. 조물주가 가장 적재적소에 배치한 신체의 소중한 일부가 바로 항문이다. 부끄럽다고 귀찮다고 괄시하지 말고 입처럼 소중하게 대우받아야 할 기관이 바로 항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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