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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1>] 방송 하차


입력 2022.11.30 14:01 수정 2022.11.30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사진은 본문과 관계 없습니다.ⓒ데일리안사진은 본문과 관계 없습니다.ⓒ데일리안

제61화 방송 하차


김석규의 금주운동이 성과를 나타낼수록 일각에서 경기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정부에서는 국민건강을 위한 일에 그만한 희생은 감수해야 된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일축하면서 우회적으로 김석규의 금주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에 국가의 음주 조장론을 주장해왔던 김석규는 재빨리 입장을 바꿔서 정부의 지지에 감사를 표명했다. 그러자 정부여당에 대해 맹공을 퍼붓던 야당과 재야의 입장이 홀연 궁색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정부에서 금주운동을 지지하는데 그치지 않고 담뱃값 인상의 금연정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연일 흘러나왔다. 이번 참에 금주와 금연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아서 국민건강을 지키자는 의도인 것 같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현재 정부 내에서 2천원 인상안이 유력한데 그 이상의 인상은 무리인 것이 금연정책 못지않게 애연가의 흡연권도 보장되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다소 애매한 논리가 익명 관계자의 전언이라며 보도되었다.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경기침체로 인한 세입 감소를 담뱃값 인상으로 보전하려는 ‘꼼수 증세’를 꾀하다 보니 스스로 논리적 모순에 빠진 거라며 비판하고 싶었지만 김석규의 음주 조장론에 편승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어 몸을 사리는 중이었다. 현재 가장 유력한 세입 증대 방안은 법인세 인상인데 정부여당에서 대기업의 반발을 사는 법인세 인상보다 만만한 서민의 담뱃값을 건드리는 꼼수를 부려도 여론의 외면을 받고 있는 야당에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언론을 통해 여론의 추이를 지켜본 정부에서 담뱃값 2천원 인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여론은 정부 여당의 편이었고 야당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었다. 인상안은 대다수 의원들의 찬성으로 가결되었다. 김석규는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며 감격에 겨운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금주운동의 마지막 관문을 넘어섰다는 안도감이 들어서였다. 정부의 확고한 금연의지는 곧장 금주운동 지지로 이어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었다. 김석규는 노심초사했던 마음이 풀리며 불현듯 피로가 몰려들었다.


그날 저녁 방송 녹화를 마치고 김석규는 곧장 강주로 내려갔다. 마침 이틀가량 스케줄이 비어있었다. 김석규는 자정을 넘긴 시각에 도착하여 시내의 아파트에서 하룻밤을 묵고는 다음날 오전 미천으로 들어갔다. 강연과 방송 활동 등으로 시골집을 떠난 지 6개월만이었다. 봄빛 가득한 시골집 마당의 텃밭엔 개망초, 엉겅퀴, 민들레가 잡초와 뒤엉켜 무성했고 툇마루엔 오래된 먼지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김석규는 가슴을 쫙 펴고 깊게 심호흡을 하며 처마 위에 위태롭게 올려진 퇴락한 기와와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빛바랜 기둥에 애정 어린 시선을 주었다.


시간이 멈춘 듯 폐허 같은 마당에 한참을 서 있던 김석규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는 헛간에 나뒹구는 숫돌과 낫을 찾아 정성껏 날을 벼려서 무성한 잡초를 베어내고 온몸에 흠뻑 젖은 땀을 시원한 펌프 물로 씻어냈다. 김석규는 펌프 물에 걸레를 빨아서 방과 툇마루를 문질렀다. 켜켜이 쌓인 먼지로 금방 걸레가 시커멓게 변해서 몇 번을 펌프 물에 헹궈냈는지 몰랐다. 이윽고 청소를 마쳤을 땐 뉘엿뉘엿 해가 지고 있었고 온몸은 다시 땀으로 흥건했다. 때마침 저녁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고 김석규는 문득 참을 수 없는 시장기를 느꼈다.


“방금 정PD한테서 문자가 왔는데 다음번 녹화부터 참여하지 않아도 된대. 하차 통보야. 전화해도 받질 않아. 네가 한번 연락해봐.”


이철백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해왔다. 정PD는 김석규가 출연하는 공중파 방송의 토크 프로그램 연출자였다. 김석규는 그게 무슨 말인가 의아했지만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런지 심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얼른 라면이라도 하나 끓여서 허기를 달래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연락해 봤어?”


라면을 먹고 설거지를 막 끝내고나니 이철백에게 확인 전화가 걸려왔다. 김석규는 내일 전화해 보겠다고 대답하며 서둘러 통화를 마쳤다.


어둠이 내린 시골집엔 적막함이 가득했다. 김석규는 불도 켜지 않은 채 툇마루에 앉아 멀리 하늘을 응시하며 골똘히 생각해 보았지만 개편시즌도 아닌데 갑작스러운 하차 결정이라니 도무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김석규는 늦은 시간이라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궁금하기 짝이 없어 정PD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한참 통화대기음이 울리고 난 뒤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석규야!”


이튿날 아침 일찍 이철백의 목소리에 김석규는 잠에서 깨어났다. 어젯밤 프로그램 하차 소식에 잠을 설쳤더니 결국 늦잠을 자게 된 것이었다.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이철백은 숨을 헐떡이며 툇마루 앞에 서있었다.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한달음에 뛰어 올라온 모양이었다.


“무슨 일이라도 났냐?”


“큰일 났지, 그럼. 이게 뭔 일인지 모르겠네.”


이철백이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어젯밤 늦게 케이블과 라디오 방송의 PD에게서 하차 통보 문자가 왔는데 늦은 시각이라 전화하기도 그렇고 해서 새벽같이 직접 달려왔다는 것이었다. 김석규는 잠이 덜 깬 얼굴로 건성건성 듣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TV와 라디오에서 마치 군사작전 하듯 일사분란하게 하차결정이 내려지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에 김석규가 즉시 PD들에게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어제 정PD처럼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안내 멘트만 흘러나왔다.


김석규는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만 하고 아침밥상을 차려 이철백과 함께 식사를 했다. 이철백은 식사하는 내내 당장 서울로 올라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며 열을 올렸지만 김석규는 묵묵히 젓가락질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며칠 후 보건복지부에서는 김석규에게 ‘금주․절주정책 자문위원 해촉 통지’ 공문을 보내왔다. 김석규는 일련의 일들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심 끝에 민정호 서기관에게 전화를 걸어보았다. 민정호가 무척 난감해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다가 김석규의 거듭된 요청에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는데, 금주운동으로 주세 세입이 줄어들고 경제지표가 하강곡선을 그리면서 경제부처의 항의가 무척 심해졌다는 것이었다.


“아니 보건복지부에서 금연정책의 일환으로 담뱃값을 인상시키자마자 금주운동에서 발을 빼버리면 어떡합니까? 금주와 금연, 투톱으로 국민건강 지키자는 게 복지부의 계획이 아니었나요?”


“죄송합니다. 김 선생님. 제가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서요.”


민정호가 진심으로 미안해하며 전화를 끊었다. 김석규는 내친 김에 공중파 방송의 정PD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렵게 통화에 응하게 된 정PD는 보건복지부의 사례를 김석규로부터 전해 듣고는 자신도 직접 들은 얘기가 아니라 단언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 청와대 쪽에서 언급이 온 걸로 안다는 것이었다. 그 근거로 정PD가 든 것 역시 금주운동이었는데 이게 단순한 사안이 아니라 정치적 이슈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는 게 문제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PD는 자중하다 보면 방송 출연할 기회는 오지 않겠냐고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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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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