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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위대한 알코올중독자’<60>] 금주운동가


입력 2022.11.25 14:01 수정 2022.11.25 14:01        데스크 (desk@dailian.co.kr)

<작가 주> 우리나라는 음주공화국이라 할 만큼 음주에 관대한 사회입니다. 반면, 술로 인한 폐해는 매우 심각합니다. 주취자의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알코올중독자가 양산됩니다. 평화로운 가정과 사회가 풍비박산나기도 합니다. 술 때문에 고통 받는 개인과 가정, 나아가 사회의 치유를 위해 국가의 음주·금주정책이 절실하게 요청됩니다. 술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습니다. 항상 경계해야 하는 마음으로 이 소설을 들려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제60화 금주운동가


김석규는 중앙정부 부처에까지 초청 강연을 다녀온 이후 그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졌다.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음주․금주 전문가가 된 것이었다. 대기업과 지방정부의 강사 섭외 1순위가 되었고, 민정호 서기관의 강력한 추천에 힘입어 보건복지부의 금주․절주정책 자문위원으로 위촉되었다. 전문가적인 식견에 명성까지 더해지니 어느덧 김석규는 연예인 버금가는 유명인사가 되어있었다. 덕분에 스케줄을 관리하고 운전해 줄 매니저가 필요할 정도로 분주해졌다. 그래서 이철백이 택시기사를 그만두고 김석규의 매니저로 일하게 되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야. 내가 네 기사 노릇을 하게 되다니.”


“기사가 아니라 매니저 실장이야. 이 실장. 껄껄.”


서울에서 방송 녹화를 마치고 강주로 내려가던 길이었다. 중형 세단 뒷좌석에 앉아 김석규가 흡족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철백이 매니저가 된 후 김석규는 편안하게 일정 관리를 받았고 수입은 이전보다 훨씬 더 늘어났다. 이철백 역시 택시기사를 할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보수를 받고 있었다. 이철백은 무엇보다 방선희에게 경제적으로도 가장 노릇을 하게 된 것이 더 없이 뿌듯했다. 방선희는 요즘 술집 경기가 좋지 않아 연이은 매출 감소에 의기소침해 하던 참이었다.


“오늘 저녁에 다 모인대?”


“종탁이 부부, 봉식이 부부, 미옥 씨 모두 다 오기로 했어.”

“선희 씨에게 오늘은 손님 받지 말라고 하지 그랬어.”


“내가 알아서 조치해 뒀으니까 걱정하지 마.”


김석규는 최근에 패널로 참여하게 된 TV 예능프로그램 녹화에 들어가기 전 문득 지인들과 저녁식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위 사람들을 소홀히 대한 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철백에게 미리 모임을 준비하도록 부탁해 놓은 것이었다.


김석규와 이철백이 블랙&화이트에 들어서자 지인들이 모두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우레와 같은 환호와 박수로 김석규를 맞이했다. 마치 금의환향하는 개선장군을 대하듯 지인들의 박수와 함성이 블랙&화이트 안에 가득 찼다. 아내 박미옥도 자랑스러운 마음을 담아 뜨겁게 박수를 쳐주었다.


“아유, 고생 많았어. 우리 자기.”


이철백이 테이블 위에 잘 차려진 진수성찬을 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방선희를 격려했다. 그러자 사람들도 이구동성으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테이블에는 웬만한 고급 레스토랑 못지않은 음식들로 가득했다. 티본, 연어, 전복 등의 스테이크, 다금바리와 참치회 등의 생선요리, 그리고 가리비, 메로, 왕새우, 쇠고기 안심 등의 구이는 물론 그라탕과 수제 소시지까지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뿐만 아니라 주류는 와인과 양주, 맥주와 소주, 막걸리 등 종류별로 구비 되어 있었다.


“건배 먼저 해야지. 우리 석규 건배사 한번 들어보자. 자, 다들 잔을 채워주세요.”


이철백이 익살스럽게 이덕화의 걸쭉한 목청을 흉내 내며 김석규의 잔에 음료수를 따라주었다.


“오늘 같은 날 술 한잔 해야지!”


김석규의 도플갱어 한종탁이 목청을 높였다.


“금주운동가에게 술이라니? 음주운동가인 종탁이 너나 많이 드세요.”


이철백이 면박을 주자 사람들이 으하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오늘 제가 여러분을 모시게 된 건 그 동안 제대로 인사 한번 드리지 못해서입니다. 오늘의 제가 있기까지 ‘역전의 용사’ 공저자인 철백이와 종탁이가 있었고, 출판비용을 대면서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은 선희 씨가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드리고, 아울러 늦은 나이에 신규 공무원이 되어 시민에게 봉사하는 우리 봉식이에게도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김석규의 건배사가 끝나고 사람들이 다함께 술잔을 쭉 들이켰다. 한종탁이 카, 소리를 내자 아내 노지연이 등짝을 후려 패며 핀잔을 주었다.


“석규 씨처럼 술 좀 끊어봐.”


“지연 씨, 요즘도 종탁이 술 많이 마시나요?”


“어휴, 말도 마세요. 아마 조만간 석규 씨처럼 입원해야 할 거 같아요.”


“그래요. 사람 안 되겠다 싶으면 강제로라도 입원 시키세요.”


“알았어. 앞으로 술 좀 줄일 테니 오늘 한번만 봐 줘.”


한종탁이 당장 꼬리를 내리면서도 소갈머리 없게 술잔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노지연이 코웃음과 함께 눈을 흘겼다. 김석규는 못 본 척 고개를 돌리며 임봉식에게 시선을 던졌다.


“봉식이 넌 공무원 할 만하냐?”


“자네 집사람 밑에서 근무한다. 계장님, 한잔 드세요.”


임봉식이 술잔을 들어 박미옥의 주스 컵과 가볍게 부딪쳤다.


“선희 씨, 오늘 술값입니다.”


김석규가 안주머니에서 두툼한 봉투 하나를 꺼내 방선희에게 건넸다.


“이렇게 많이요?”


“얼마 안 됩니다.”


“그냥 넣어 둬. 석규 때문에 매출이 많이 떨어졌잖아.”


이철백의 말에 방선희가 마지못한 듯 봉투를 받아들었다.


“여기도 매출에 영향을 받나요?”


김석규가 묻자 방선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요?”

“아마 2~30%는 줄어든 거 같아요. 근데 문제는 앞으로 더 떨어질 거 같아서죠.”


“이거 괜히 미안한데요.”


김석규가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으나 박미옥은 내심 뿌듯한 기분이었다. 남편 김석규의 왕성한 활동 결과가 술집 경기 침체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나비 효과라는 게 있다. 나비의 날개 짓처럼 아주 작은 행동이 태풍과 같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김석규의 금주운동은 나비 효과와 흡사했다. 신문과 방송, 강연을 통하여 김석규는 국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음주를 조장한다는 일종의 음모론까지 제기했고, 마침 정부여당에 대한 공격 빌미를 찾던 야당과 재야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증폭시키기에 여념 없었다.


“지금 분위기로는 금주운동이 정치운동으로 번질 조짐도 보이고 해서 술집 경기가 더 안 좋아질 것 같은데 아예 업종을 변경하는 건 어떨까요? 오늘 이 메뉴들로 레스토랑을 하는 것도 괜찮아 보이고요.”


“그렇잖아도 레스토랑을 염두에 두고 이 음식들을 배우고 익힌 거예요.”


“저도 최대한 도울게요.”


김석규는 레스토랑 블랙&화이트와 선희 씨의 성공을 기원하며 참석자들과 함께 건배를 외쳤다. 그 짧은 시간에도 한종탁은 아내 노지연의 눈치를 살펴가며 얼마나 마셔댔는지 벌써 혀가 꼬부라져 있었다. 곰배!


ⓒ

박태갑 소설가greatop@hanmail.net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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