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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결정적 장면㊳] 이것마저 오스틴 버틀러? 딸도 착각한 ‘엘비스’ 탄생 비결


입력 2022.07.15 10:58 수정 2022.07.16 21:29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엘비스 프레슬리의 현신 ⓒ이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엘비스 프레슬리의 현신 ⓒ이하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누군가 나를 위해 시간을 들이고 마음을 담아 무언가를 빚어 주면 감동이 아닐 수 없다. 배우 오스틴 버틀러는 영화 ‘엘비스’에서 전설의 로큰롤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기하기 위해 1년 반의 시간을 들여 노래와 춤을 연습하고, 표정과 몸짓을 익히고, 생애와 정신에 다가가려 노력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은 “엘비스의 영혼과 오스틴의 영혼이 맞닿았다”고 표현했다.


13일 개봉한 영화 ‘엘비스’(감독 바즈 루어만, 수입·배급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는 전기영화다. 우리는 분명 엘비스 프레슬리가 사망한 줄 알지만, 알면서도 스크린 위에서 살아있는 엘비스를 만나기를 원한다. 특히나 지난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통해, 배우 라미 말렉에 의해 창조된 록밴드 ‘퀸’의 리드싱어 프레디 머큐리를 목격한 바 있기에 기대치 자체가 한없이 높다.


게다가 엘비스 프레슬리는 개성과 특징이 강했던 가수였고 세계 각국에서 모방된 바 있기에 그 특성을 정확히 안다고 자부하는 이가 많아서 평가는 엄격할 수밖에 없다. 웬만해선 관객을 만족시키기 어려운, 웬만큼 잘하지 않고서는 턱도 없는 상황. 하지만 배우 오스틴 버틀러는 해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책임져야 했던 사람들. 엄마와 아빠, 그 사이의 매니저 톰 파커. 톰을 연기한 톰 행크스의 인상적 연기. 톰 파커는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덕이었을까 독이었을까 ⓒ 엘비스 프레슬리가 책임져야 했던 사람들. 엄마와 아빠, 그 사이의 매니저 톰 파커. 톰을 연기한 톰 행크스의 인상적 연기. 톰 파커는 엘비스 프레슬리에게 덕이었을까 독이었을까 ⓒ

영화 ‘엘비스’에서는 되살아온 듯한 엘비스 프레슬리를 만날 수 있다. 트레이드마크가 된 점프수트라든가 구레나룻, 한껏 치켜세운 앞머리, 쏙 빼닮게 메이크업 된 얼굴 등 의상과 분장팀에 의해 완벽 재현된 외모도 물론 볼거리다. 딸 리사 마리 프레슬리가 아빠 목소리로 착각할 만큼 목소리가 흡사하고, 직접 불렀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가수인가 싶게 노래를 잘하는 것도 기본에 불과하다.

생전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보여준 음악인으로서의 열정, 젊은 사회인으로서의 패기, 가족과 친구들을 아낀 사람으로서의 인간미가 누수 없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생전의 엘비스를 본 적이 없다고 해도, 영화 ‘엘비스’ 속 그 모습이 진짜 엘비스였던 것으로 느껴질 만큼 한 인물의 내면과 철학, 고뇌와 환희, 생의 안과 밖 전체를 온 마음과 온몸으로 구현했다.


1960년대 백인이면서 흑인음악을 하는 엘비스, 심장박동 같은 리듬 속에 온몸을 떨고 다리를 흔들며 우리의 희열 본능을 깨우는 프레슬리를 보고 흥분했던 당시의 관객들과 똑같이 ‘오스틴 버틀러표 엘비스’를 보며 흥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웬만해선 우리의 흥분을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웬만한 콘서트도 이보다 짜릿하기는 어렵다.


배우 오스틴 버틀러가 전하는 전율. 시계를 되돌려 콘서트 현장에 가 있는 듯한 짜릿함 ⓒ 배우 오스틴 버틀러가 전하는 전율. 시계를 되돌려 콘서트 현장에 가 있는 듯한 짜릿함 ⓒ

비결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데 얼마 전 화상으로 연결된 인터뷰에서 들을 수 있었다. 배우 오스틴 버틀러는 바즈 루어만 감독이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영화를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기 위해 준비를 시작했다. 버틀러는 오디션 한 달 전에 미리 소식을 들은 것, 준비를 할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운명’이라고 표현했다. 먼저 그에 관해 자료조사를 시작한 버틀러는 이전엔 ‘슈퍼휴먼’으로 다가왔던 엘비스 프레슬리가 점점 ‘사람’으로 느껴졌다. 프레슬리의 개인적 경험이 자신에게 좀 더 뚜렷하게 다가오고, 그를 알게 될수록 자신의 안에서 어떤 결정체로 응집되는 것을 느꼈단다.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여행을 하듯 조사를 이어가고, 거기에서 시작해 그가 역사적으로 어떤 인물인지뿐 아니라 인간적으로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가며 전설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오스틴 버틀러의 내면에 차곡차곡 쌓였다. 그리고 바즈 루어만 감독을 만나며 혼자 하던 작업은 ‘함께’가 됐다. 처음 만난 날부터 엘비스의 인생과 사랑, 이별과 예술에 대해 5시간을 얘기 나눈 것을 시작으로 5개월 동안 다른 배역의 캐스팅을 위한 오디션을 함께 진행했다. 오디션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버틀러의 프레슬리 탐구가 계속됐음은 물론이다.


놀라운 것은 버틀러는 자신이 아직 엘비스 프레슬리 역에 확정됐다고 생각하지 않았음에도 바즈 루어만 감독과 함께 다양한 시도와 실험을 하고, 벽에 부딪히면 어떻게 뚫어가야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그 작업이 1년 반으로 늘어지고, 루어만 감독이 버틀러를 걱정해 적당히 하라고 말릴 정도에 이르기까지 ‘엘비스 프레슬리에 관한 심취’가 계속됐다.


감독 바즈 루어만, 배우 오스틴 버틀러(왼쪽부터) ⓒ 감독 바즈 루어만, 배우 오스틴 버틀러(왼쪽부터) ⓒ

루어만 감독은 “오스틴이 오디션장에 들어오자마자 엘비스 역할을 맡기로 정해져 있었다”며 그의 겸손을 분명히 했다. 이어 감독이 배우에게 어떤 역할을 주는 게 아니라 그 배우가 그 인물로 거듭나는 것이고, 자신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적의 배우를 찾고 배우가 자신을 더 새롭게 발견하도록 도울 뿐이라며 버틀러에게 공을 돌렸다.


루어만 감독의 회상에 따르면, 오스틴은 오디션에 오기 전에 이미 엘비스의 면모를 가지고 있었다. 또, 보컬이나 동작 훈련을 통해 ‘엘비스’스러워지는 것도 어렵겠지만 역사적 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은 더욱 어렵고, 흔히 아이돌을 신격화시키고 완벽한 사람으로 바라보기 쉬우나 그 창의적 영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우상화된 사람일수록 가슴에 텅 빈 부분과 내면의 슬픔이 있는데 그것을 파악하는 게 어려운데, 오스틴 버틀러는 긴 시간을 통해 그것을 해냈다고 극찬했다. 이 호평 끝에 ‘오스틴과 엘비스의 영혼이 서로 맞닿아 있었다’는 표현이 나왔다.


루어만의 극치의 칭찬에도 버틀러의 겸손은 이어졌다. 자신은 가수가 아니고 정말 친한 친구 앞에서만 노래를 부를 정도로 수줍음도 많은 사람이어서 정말 준비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스스로 생각했고, 최선을 다해서 보이스 코치와 연습했단다. 프레디 머큐리를 연기한 배우 라미 말렉에게도 조언을 구했음은 물론이다. 작은 흉내에 집착하지 말고 전면으로 그를 만나라는 말렉의 얘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마워했다. 판데믹으로 촬영 전에 1년 반의 시간이 주어졌고, 어차피 별달리 할 일도 없는 처지여서 다른 일 하지 않고 연습에 몰두했다고 오스틴 버틀러가 말할 때는 ‘데뷔 이전의 엘비스 프레슬리 역시 자신이 얼마나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줄 몰랐겠지’ 싶은 공통점이 읽혔다.


음악으로 말을 걸다.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 엘비스도 오스틴도 그리고 우리도… ⓒ 음악으로 말을 걸다.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 엘비스도 오스틴도 그리고 우리도… ⓒ

한 인물을 되살아온 듯한 모습으로 창조해 내기 위해선 연습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오스틴 버틀러의 엘비스 프레슬리 되기에는 세 가지 결정적 장면이 보인다. 먼저 음악을 통해 관객에게 말을 걸고자 했다, 그것이 엘비스의 DNA라고 생각했고 자신도 그렇게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또 버틀러는 루어만과 2년간의 협업, 작업을 넘어선 우정에 대해 ‘엘비스가 준 선물’이라고 표현했다. 감독 바즈 루어만과의 작업 속에서 영화 ‘엘비스’는 배우 오스틴 버틀러의 인생에 뜻깊은 세계가 되었다.


세 번째는 버틀러의 연기 비법인 동시에 영화 ‘엘비스’의 주제이자 우리의 심장을 건드리는 대목이고, 엘비스 프레슬리가 감독과 배우뿐 아니라 관객인 우리에게 남긴 선물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 자신에 대한 의심과 두려움, 내가 충분히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두려움을 가질 때가 있는데 엘비스 프레슬리가 그것을 깨주었다는 사실을 버틀러는 알게 됐다. 자신 역시 똑같은 의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고, 엘비스의 방식으로 의심과 두려움에 응했다.


무슨 얘기인가 하니 두려움 속에서도 두려움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오히려 두려움을 긍정의 방향으로 가져간다면 아름다운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엘비스가 이미 보여주었고 버틀러 역시 엘비스 역을 하면서 경험했고, 엘비스가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영화 ‘엘비스’가 관객에게도 같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엘비스의 음악을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부족해도 괜찮아, 충분히 잘하지 못해도 괜찮아, 두려워하지 마, 나 역시 그랬어”.


포스터 장면과는 또 다른 감동을 선물할 '언체인드 멜로디' 장면 ⓒ 포스터 장면과는 또 다른 감동을 선물할 '언체인드 멜로디' 장면 ⓒ

엘비스 프레슬리가 너무 거대한 인물로 느껴진다면, 말도 안 되는 기적을 만들어 당장에 우리 눈앞에 엘비스를 데려온 오스킨 버틀러를 보자. 부족한 나를 들킬까 두려움에 떨기보단 한 발을 앞으로 내딛는 편이 낫다는 걸, 시간과 최선의 공을 들인다면 ‘이게 정말 내가 해낸 일인가’ 싶은 결과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도 ‘엘비스’를 만나는 것이다.


전 세계의 관객을 만나는 콘서트 투어를 하고 싶었으나 자신이 책임져야 할 주변의 많은 것들에 묶여 꿈으로 간직한 채 세상을 등져야 했던 엘비스 프레슬리를 대신해 바즈 루어만 감독과 배우 오스틴 버틀러가 영화 ‘엘비스’를 들고 세계를 찾아다니고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 월드 투어 콘서트 티켓을 사는 마음으로 영화표를 예매하는 건 어떨까.


영화 ‘엘비스’의 모든 장면이 ‘우리가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움을 이겨낸 이들의 아름다운 창조이지만, 특히나 ‘Unchained Melody(언체인드 멜로디)’를 부르는 장면은 압권이다. 필자는 극영화에서 다큐멘터리 필름으로 넘어간 것으로 착각했다. 그는 분명 생전의 엘비스 프레슬리였다. 하지만 보디수트를 입고 분장한 오스틴 버틀러의 모습 위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입혀진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엔 모습마저 엘비스 프레슬리로, 공연 실황으로 이어진다. 실로 두 아티스트의 영혼이 만나는 장면이다. 어느 지점에서 실존 인물로 바뀌는 것인지 눈치채는 행운을 맛보고 싶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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