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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105)] 매드엑스피, 인생 밑바닥에서 찾은 한줄기 빛


입력 2022.06.29 14:14 수정 2022.06.29 13:14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솔로 앨범 'HWAN' 6월 5일 발매

2019년 니어아이고(수코지, 매디엑스피)로 데뷔한 매디엑스피(MADDYXP)는 3년 만에 솔로 앨범 ‘HWAN’을 지난 5일 발매했다.


이 앨범은 가혹한 삶 속에 몸에 마비가 와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했을 당시, 그가 찾은 한줄기 빛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서럽고 외로운 절망 속에서 일어난 자신의 이야기를 음악으로 만들면서 그는 미친 듯이 소리지르다보면 누군가 한 명 쯤은 분명 들어주리라고,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당신은 사실 혼자가 아니라고 대중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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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근황을 듣고 싶어요. 정말 오랜만에 앨범인데요,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요?


미루고 미루면서 지냈어요. ‘언젠가는 또 노래를 만들어서 사람들에게 들려줘야지’라는 기약 없는 목표를 마음 깊은 곳에 간직만 한 채로 살고 있었네요. 그 사이 학교도 졸업했고, 사회에 뛰쳐나와서 적응하고 아르바이트 하느라 제일 정신 팔려 있었던 것 같아요. 퇴근하면 꼭 가사 한 줄이라도 더 써야지, 한 마디라도 더 짜야지 하다가 그대로 침대에 쓰러져서 자고요.


-이번 신곡 ‘HWAN’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들려드리게 된 ‘HWAN’은 제가 3년 만에 공개하는 곡입니다. 직접 작사, 작곡, 프로듀싱, 믹싱을 도맡아 했습니다.


-이 곡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삶이 너무 가혹해져서, 다 의미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겨울, 이제는 포기하고 먹고 살 길을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자취방에서 짐을 싸던 중에 과로와 지병으로 사지에 일시적인 마비가 왔었어요. 난방이 고장이 나서 싸늘하게 식은 자취방 바닥을 기어다니다가 겨우 구조요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조 뒤 몇 달 동안 재정비를 하는 기간 동안 많이 서럽고 외로웠어요. 누구보다 가진 게 없어서 악착같이 살아가야하는 것, 나는 또 다시 이렇게 무너져서 언제 다시 일어나게 될지도 모르는데 시간이 잔인하게 흘러간다는 것, 그런 상황 속에서 겨우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어 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와중에 몸은 마음대로 가눌 수가 없고. 그런데 참 사람이 신기한 게 어떻게든 다시 살아지더라고요. 몇 달 만에 노트북 앞에 앉아 30분 만에 스케치를 완성했습니다.


-음악을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던 건가요?


하나의 분노이자 경고를 말하고 싶었어요. 세상은 가혹하고 잔인해서 한 사람을 이렇게까지 망가뜨릴 수 있고, 괴물처럼 만들 수도 있다고.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그 자에 분명 숨어있는 한 줄기 빛을 말하려고 했어요. 미친 듯이 소리지르다보면 누군가 한 명 쯤은 분명 들어주리라고, 사람은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당신은 사실 혼자가 아니라고.


-가사에서도 그런 의도가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곡의 가사를 멀리서 보면, 제가 보기에도 참 처절하고 무섭기까지 해요. 하지만 한 줄 한 줄 뜯어서 보면 그런 가사가 절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가다가 꼭 한 번씩 무너지고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을 마주하곤 해요. 태어난 걸 원망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용기를 가지고, 연대하고, 사랑하고, 싸워내다 보면 빛나는 순간이 꼭 찾아오리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매디엑스피에게도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이 있었나요?


너무 많았죠, 그래서 오래 멈춰서있었어요. 저 되게 나약하거든요.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너지고 그래요. 그런 끔찍한 삶 속에 제일 끔찍한 일들은 또 항상 벌어지고요. 언젠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때가 오지 않을까요?(웃음)


-앨범 소개글에서 ‘연대의 힘’을 강조하는데, 이게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을 이겨낸 매디엑스피의 원동력일까요?


한동안은 철저히 세상에서 외면당하고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제 세상을 잘 들여다보니 내가 이렇게 비참하고 초라해도 항상 누군가가, 한 명쯤은 곁에 있더라고요. 그 사실을 알기만 해도 사람은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그 누군가가 어떤 보상을 주지 않아도, 하물며 어떤 말로 위로를 하지 않아도요. 그냥 그런 존재가 나를 지지하고 믿는다는 사실은 언제나 큰 힘이 돼요.


그리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이 생겼을 때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는 거죠. 그냥 묵묵히 옆에서 자리를 지켜주는. 저는 그게 연대라고 정의하고 그 힘은 정말 사랑스럽고 위대하다고 늘 말해요.


-만약 ‘HWAN’이 그런 순간과 과정, 결과를 담은 것이라면. 매디엑스피 스스로에게도 이 음악이 위로가 되었는지도 궁금하네요.


반반이에요. 이 곡을 쓰게 된 계기와 곡을 쓰면서 갈등하고 몸부림쳤던 순간들을 생각하면 소름 끼치고 우울해져요. 아무래도 분노를 꾹꾹 담아 쓰기 시작한 곡이니 그 에너지가 전해지지 않을 수도 없고요. 그런데 또 이 곡이 깊숙이 품고 있는 메시지와 이 곡을 이렇게 써서 세상에 내게 된 수많은 이유들, 연대하고 싶은 마음을 다시 되새기면 또 그렇게 아프지 않아요. 무엇보다 저는 다시 일어서서 새로 곡을 쓴 제가 정말 대견하고 그 사실 자체로 위로가 돼요.


-가사에 나오는 ‘뱀’의 의미도 궁금해요.


이 곡의 가사를 쓸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이 바로 앞서 말씀드린 사지 마비가 찾아왔던 순간들이거든요. 처절한 뱀처럼 기어 다니며 어떻게든 살아보려던 제 모습. 거기서 ‘뱀’이라는 큰 주제를 잡고 가사를 빌드업하기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생각하는 ‘뱀’은 그렇잖아요. 대상을 서서히 조여 잡아먹는, 음흉하고 사악한 존재. 하지만 어릴 때부터 제가 이해한 뱀은 대지를 기어 다니며 가장 낮은 곳의 소리를 듣고 흙의 태동을 느끼는 생명과 치유의 존재였어요. 이를 바탕으로 스토리텔링하고 싶었어요. 모두가 기피하고 무서워하는 대상이 사실은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고. 그리고 여담으로 그냥 뱀을 좋아해요. 태몽도 뱀이고 뱀띠거든요. 하하.


-음악적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도 있나요?


안 해본 것만 골라서 해보려고 했어요. 저는 일단 곡을 끝까지 완성하는 경우가 잘 없는데, 처음 스케치 할 때 앉은 자리에서 바로 완성하려고 노력했어요. 큰 덩어리를 하나 만들어낸 거죠. 그리고 조각하듯이 크게 깎아내고 쳐내는 방식을 사용했어요. (제 기준에서) 아주 화려한 곡을 만들었는데, 사실 프로젝트를 뜯어보면 그리 많은 것이 들어있진 않아요. 아주 거칠고 러프하죠. 디테일에 집중하기보다는 곡의 터프한 질감을 살려서 가사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닌, 곡 자체가 지닌 의미를 극대화하려고 했어요.


-특히 멜로디의 하행스케일이 주는 몽환적이고, 혼란스러운 느낌을 강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이런 반복적인 멜로디라인은 어떤 효과를 위함이었나요?


정확히 짚어주셔서 감사해요. 하지만 계산적으로 짜낸 멜로디 라인은 아닙니다. 저는 악보를 잘 못 써요. 그래서 비트를 계속 반복 재생해서 흥얼거리다가 마음에 든다 싶으면 바로 녹음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입에서 나온 멜로디였어요. ‘아, 이 멜로디는 정말 불안하고 이상하게 들리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우연적인 혼란 끝에 ‘이런 건 나라도 원하지 않았어’ 부분으로 정리되는 느낌이 좋았어요.


-래퍼 슬릭이 이번 앨범에 함께 했어요. 어떻게 인연이 됐나요?


무작정 생각났고, 무작정 주변에서 연락처를 얻어냈고, 무작정 연락했어요. 그게 다에요(웃음). 안 그래도 며칠 전에 슬릭이 묻더라고요. ‘어쩌다 자신에게 연락하게 된 거였냐고’요. 그새러 말했어요. ‘그냥 운명처럼 생각이 났어, 누군가가 점지해준 것처럼.’ 그렇게 밖에 말이 안 되더라고요.


-함께 작업하는 과정(혹은 섭외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이건 슬릭이 할 말이 더 많을 것 같아요. 아무 커리어도 없이, 안면도 없이, 부가 설명도 없이 무작정 ‘당신이 필요해요’라며 연락했던 저의 제안을 받아들인 슬릭의 이야기가 더 재밌지 않을까요? 하하. 둘 다 낯을 엄청 많이 가리는데, 대체 어떤 마음이 통했는지 녹음 끝나고 한 잔 했어요. 아무래도 제가 너무 귀여운 탓이겠죠? 저랑 많이 친해지고 싶었을 거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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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비디오가 주는 시각적 충격도 컸어요.


뮤직비디오를 연출해주실 감독님을 섭외하는 과정이 되게 어려웠어요. 발매 준비도 혼자 겨우 해내고 있는데 뮤직비디오까지 해결하자니 시작부터 막막했거든요. 하염없이 SNS로 포트폴리오 영상들을 보다가 운명처럼 이은경 감독님을 찾았습니다. 그냥 또 바로 연락드렸어요. 뮤직비디오의 연출에는 큰 개입을 하지 않았어요, 아이디어 몇 가지를 던지고 나머지는 감독님께 거의 모든 걸 맡겼습니다. 저는 그저 감독님이 세우신 세상에서 어떻게 움직일까 고민하는데 집중했어요.


-몸무림 치는 여성의 모습을 안무로 표현한 것도 재밌는데요. 어떤 의미를 주기 위한 연출인가요.


감독님과 저는 ‘지옥에서 몸부림치는’이라고 표현했는데요. 말 그대로 처절히 짓밟히고 몸부림치고 발광하는 모습이 찍힌 거예요. 모두 프리스타일로 약 5번의 원테이크를 찍었고, 그것들을 편집해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하나의 살풀이와도 같았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 안무 씬을 몇 번이나 반복해서 원테이크 촬영한다는 게 사실은 체력적으로 부담이 갈 법한 일이긴 하잖아요, 그래도 너무 즐겁게 임할 수 있었어요. 홀가분했거든요. 뮤비에는 담기지 않지만 미친 듯이 소리도 지르고 오열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모든 것을 털어낸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 수코지와 함께 했던 ‘Martini Haze’와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요. 음악적인 변화를 준 이유도 있을까요?


그런 음악을 했었죠, 좋아했고 지금도 좋아해요. 그런데 ‘음악적인 변화’라는 단어가 어울리진 않는 것 같아요. 저도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생각해보니까 원래 제 음악은 이거에요. 그 때와는 다르게 혼자서 모든 걸 만들고 계획하고 세워냈어요. 나다운 건 사실 이런 거였고 제가 뒤늦게 찾은 거죠.


-‘Martini Haze’가 데뷔 앨범이기도 한데요. 어떻게 음악을 업으로 삼게 됐나요?


아득하네요. 초등학생 때 아버지가 생일 선물로 사주신 기타를 독학하면서 음악을 처음 시작했어요. 하지만 내 한계는 분명 여기까지라는 생각을 했고 자연스레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소심하고 여린 성격으로는 절대 더 큰 무대에 나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예술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미술을 전공했어요. 평생 이걸로 먹고 살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전시회를 했는데,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은 거예요. 사람들이 저를 보지 않고 제 그림만 보는 게 싫었어요. 그러다가 깨달았죠. ‘나는 사실 사람들 이 바라보는 앞에서 빛나고 싶구나’라고요. 그때부터 다시 음악을 시작했어요.


-데뷔 초반과 지금, 달라진 점들이 있다면?


나이를 먹었다는 점? 하하. 평생 어딜 가도 황금 막내일 줄 알았어요. 지금은 그냥 금쪽이 정도? 별로 달라진 건 없어요. 오히려 여전한 게 더 많죠. 전 여전히 음악이 좋아요,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게 기뻐요, 사랑도 눈물도 많은 사람이고요. 그건 평생 여전할 것 같네요. 저는 어떻게 보면 다시 시작하고 있는 거니까, 앞으로 달라질 것들이 훨씬 많겠죠?


-앞으로의 활동도 궁금한데요.


먼저 9월 18일에 정규앨범 ‘EPOCALYPSE’가 발매됩니다. 준비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어요. 그 사이에 공연들로 또 찾아뵐 예정입니다. 또 뭘 하면 재밌을까 생각 중이에요.


-음악적인 매디엑스피의 신념이나, 지향점이 있다면?


항상 자기 소개로 이야기하곤 하죠. 지속 가능한 음악을 합니다. 온갖 멋진 일들을 몰고 다닙니다, 우리는 서로를 이끌고 위로합니다.


-또 음악 외적으로, 요즘 매디엑스피가 관심,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비거니즘, 페미니즘, 퀴어 인권 그리고 조주기능사 시험 준비.


-매디엑스피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더 이상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기.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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