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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디그라운드(104)] 히나인 “좋아서 시작한 음악, 그 안에서 찾은 의미”


입력 2022.06.22 11:30 수정 2022.06.22 11:31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5월 13일 신곡 'Tonight' 발매

2007년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히나인은 “타고난 창작욕이 없다”면서도 음악은 물론, 그림, 영상 등 다양한 창작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을 좋아해 무작정 시작한 음악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에게 특별한 ‘의미’까지 찾게 했다. 좋아하는 일의 결과물에서 희열을 느끼고, 그 중독성에 빠진 셈이다.


곡에 대한 아이디어를 스케치하고, 그 기록들이 쌓아가면서 그는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찾고 있다. 지난달 13일 발매된 신곡 ‘Tonight’ 역시 그 기록들 중 하나다. 특히 “처절하다면 처절함 그대로를 옮기는 작업을 지향한다”는 그의 말처럼, 그가 만든 결과물은 대중들에게도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의 감정으로 전달된다.


ⓒH9ARTWORK 2022 ⓒH9ARTWORK 2022

-처음 음악은 클래식 피아노로 시작했다고요. 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고3 시절은 어땠나요?


살아보니 대한민국에서 가장 평등했던 것이 수능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입시 제도로 인해 꿈에 대한 절망감을 끝도 없이 학습 당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해요. 핑계 같지만 슬픈 이야기이기도하죠. 제가 하던 일은 어릴 적부터 이미 갖춰져 있었어야 했던 부분이 많아요. 저는 단지 훌륭한 연주자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세상은 내가 아는 아름다운 영화와 같지 않다는 걸 뒤늦게 알고는 점차 마음을 내려놓기 시작했어요. 그러니 불안한 마음 역시 컸던 것 같아요. 내려놓는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았던 때라 당장 새로운 몰입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찾은 ‘새로운 몰입’이란 게 뭘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용돈이 생기면 학교 앞 레코드샵에서 테이프와 CD, 악보들을 사 모으곤 했는데 그래서인지 대형서점에서 연주 할 만한 다른 악보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어요. 클래식 악보와는 대조적으로 굉장히 불친절했던 재즈 악보에 막대한 호기심이 생겼고 그 당시 매일 듣던 라디오에서 Ray Brown Trio의 ‘Things Ain't What They Used To Be’를 접하고 완전히 빠져들면서 모든 것이 시작 된 것 같아요.


카세트 테이프를 미리 준비하고 있다가 좋아하는 피아니스트의 연주실황이 나오면 녹음버튼을 눌러 그렇게 연주곡들을 녹음해 모으곤 했는데 그 당시 녹음했던 Ray Brown Trio의 연주곡을 너무 많이 듣는 바람에 테이프가 늘어져 몇 년 동안이나 이 곡의 행방을 쫒기도 했어요(웃음). 어떻게 찾아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한 번씩 온라인 세계를 떠돌며 내가 기억에 담아 두었던 그 앨범 커버를 다시 찾아 다녔어요. 그리고 마침 그 앨범을 포스팅한 글을 찾아냈고 글쓴이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제 사연을 듣고는 앨범 전체를 Flac파일로 보내 주셨죠. 지금 생각해봐도 저에겐 너무 감동적인 사건이었어요.


-재즈 음악을 공부하면서 작곡도 시작하게 됐다고요.


연주를 잘 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재즈는 하나의 곡 안에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게 더 많았던 것 같아요. 재즈 작곡가는 연주가에게 곁을 좀 더 내주는 것 같달까요? 멍석을 깔아주는 셈이죠. 매일 새벽 5시 학교에 도착해 아침 수업 전 까지 연습실에서 손을 풀곤 했는데, 매일 연습해야 하던 브람스와 쇼팽, 베토벤과 같은 입시곡들은 저녁에 연습하고 새벽시간에는 한참 빠져있던 ‘Autumn Leaves’를 연습하고 Solo(Improvisation)를 쓰곤 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작곡도 하게 되었고요. 내가 계속 움직이던 손가락인데 전혀 모르는 세계에 놓여져 손가락이 방황을 하니 재미있기도 했던 것 같아요.


-독학을 한다는 것이 마냥 재미있는 일만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그땐 재즈를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무작정 카피부터 시작했어요.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카페나 음악 포럼 등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쉬웠고요. 각 악기 파트별로 사람들을 모집해 밴드를 만들고 합주와 공연을 하며 레퍼토리를 늘려가니 재즈, 보사, 라틴, 팝, 소프트한 대중 록 등 제가 좋아하던 장르 외의 다른 것들도 공부하게 된 것 같아요. 힘들다기 보단, 그런 점이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H9ARTWORK [Thailand Lomo Film] (2010) ⓒH9ARTWORK [Thailand Lomo Film] (2010)

-본격적으로 음악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계기가 있나요?


아뇨(웃음). 음악적으로 경제적인부분에서 자유로워진다면 그것이 트리거가 되어 끊임없이 다양한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음악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인데 생각이 바뀐 후로는 커리어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을 해결하고자 음악을 하지 않아요. 지금의 나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마음에 음악에서까지 이타적이지 않기로 한 거죠. 그런 부분에서 보면 천상 음악가 기질은 아닌가 봐요. 하하.


-여행도 히나인의 음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것 같은데요.


맞아요. 타국에 있을 때면 백번이면 백번 긴장하게 돼요. 그런 긴장감이 좋아요. 그때는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때만큼 열심히 살았던 적이 또 없는 것 같다 싶을 정도로 여운이 오래 남거든요. 특히 태국이 기억에 남는데요, 태국에 가져갔던 중요한 아이템 중 하나가 아이팟이었어요. 마음에 끌리는 앨범아트를 골라 무턱대고 듣기 시작했고 그 앨범이 그 나라, 그 기운에 너무 잘 스며들어버려서 그때의 순간이 하나의 살아있는 그림으로 제 머리 속에 저장되어 있어요. 그만큼 많이 보게 해주고 듣게 해주고 느끼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제게 의미가 큰 거죠. 태국에 다녀온 후로 칠링에 어울리는 가사 없는 음악을 많이 듣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최근은 코로나19로 여행을 다닐 수 없는 환경이었잖아요. 히나인에게 중요한 부분이었던 여행의 갈증을 어떤 방식으로 해소했나요?


다른 중요한 부분을 키웠죠. 올해 여덟 살이 된 저의 애묘에 대한 책임감이 더욱 강해졌고 내 고양이들과 함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많이 봤어요. 제가 영화광이거든요. 하하.


-‘히나인’이라는 이름의 의미도 궁금해요.


‘하얀 아이가 울리는 텐션’이라는 의미에요. 하얗게 생긴 ‘흰 아이’와 숫자 ‘9’가 합쳐진 이름이죠. ‘9’는 불완전한 숫자이지만 텐션으로서의 존재감이 음악을 다르게 느끼게 하잖아요. 그래서 ‘흰 아이’에 ‘텐션 나인’을 올린 거죠. 원래는 ‘희나인’이었답니다(웃음).


-지난 5월엔 새 앨범 ‘Tonight’을 발매했어요. 곡 소개 부탁드려요.


본가에 들러 필요한 짐 들을 가지고 다시 작업실을 가던 길이었어요. 늦은 밤 서둘러 이동하던 중 오래된 집 들 사이로 적막함을 느꼈는데 어두운 길 위로 솟은 나뭇가지 사이에 엄청 크고 밝은 달이 보였거든요. 힘이 들기도 하고 지친 하루에 무거운 짐 때문에 어깨도 아팠지만 달을 보는 순간 황홀함 때문에 숨도 쉬어지지 않더라고요. 작업실로 돌아오면서 잊지 않고 그 느낌을 버릇처럼 휴대폰에 메모했죠. ‘오늘밤 달이 나무위에 걸린 채로 멈췄네요, 어디로도 가지 못하고 있는걸’이라고요.


ⓒH9ARTWORK [Tonight] (2022) ⓒH9ARTWORK [Tonight] (2022)

-음악과 보이스, 영상의 조화가 참 좋아요. 각각의 작업물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면요?


화려함이요. 화려함이 있어 더욱 공허한 법이니까요. 모든 부분의 중심이 어두운 거리, 달, 혼자, 화려한 네온이었거든요. 외로움 속의 공허한 어두움은 표현이 쉬워도 누구를 위해 저렇게 화려한 불빛을 뿜어댈까 싶은 네온은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베이스 라인도 생각보다 화려해진 것 같고요.


-이 음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대중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나요?


‘지금 내가 느낀 이 감정’이요. 이 곡은 독백과도 같아서 그 날 유난히 짐이 무거웠고, 유난히 힘들어 고개를 들었던 것뿐인데 나무사이로 달이 보였고 그것이 마치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나와 같아 보였어요. 누구나 처한 상황에 따라 같은 음악도 다르게 들리곤 하잖아요. 개인적으로는 흔들림의 감정이 많이 담겨져 있어요.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것인지 바람이 움직이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사실 움직이는 건 내 마음 뿐인거죠.


-음악은 물론이고 영상과 앨범커버 디자인까지 손수 참여하셨는데요. 예술적 감각을 타고 난 걸까요?


타고난 창작욕은 별로 없어요. 단지 보고 듣고 만지는 걸 좋아하다보니 그냥 그러한 일들을 고민하고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생각과 비슷한 형태의 결과물이 육안으로 확인이 되면서 희열을 느끼는 편이에요. 그래서 그런 중독성 때문에 거침없이 시도를 해나가고 있는 것 같고요.


-멀티플레이어로서 앨범 하나를 만들어내면서 힘든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아마 가장 어려운 부분은 컨트롤이 아닐까 싶어요. 해야 할 일이 많다 보니 부족한 점도 많아지는데 그 부족함도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면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죠. 에너지를 빼앗기는 느낌이 많이 줄어드니까요. 이 부분은 모든 제작자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편곡을 하거나 믹스에 주력하기보다 다른 부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을 때면 과연 이게 맞을까 싶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음악을 만들고 있죠. 하하.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게 마인드컨트롤이고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데뷔 초반과 지금, 음악적으로 달라진 부분이나 차별점들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과거엔 음악을 만들고 악기 파트들을 알아가면서 각 악기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터라 활기 있는 화려한 악기 구성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반면 지금은 단조로운 게 더 좋아요. 음악에 잔상과도 같이 울림이 남는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려 하고 있어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잖아요.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누군가의 한 공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제가 찾는 그 어떤 공간처럼 말이죠.


-앞으로의 음악적 방향성도 궁금해요. 앞으로 어떤 활동들을 보여주게 될까요?


음악과 미술, 영상이 어우러진 재밌는 작업들을 많이 해보고 싶어요. 음악은 그때그때 떠오른 상황이나 감정에 따라 느낌이 가장 잘 맞는 장르로서 정리가 되곤 하기 때문에 나아갈 방향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2018년 발매한 앨범 ‘9oodbye’의 수록곡인 ‘Flower’를 시작으로 ‘Stray Cat’과 같은 비주얼적 접목이 참 즐거웠거든요. 일렉트로닉, 뉴트로, 웨이브, 사이버펑크 등 조금 더 다양한 장르와 제가 좋아하는 텍스처, 주제들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더욱 집중을 하고 싶어요.


-가수 히나인, 인간 한리아의 최종 목표가 있다면?


어떻게 컨트롤을 해나가야 지금보다 조금 더 지혜로울 수 있는지 내 자신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져요.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래도 내 마음이 건강해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제 안에서 수많은 요소들이 서로 부딪히며 매번 싸우겠지만 풀고 조이고를 반복하며 그렇게 재미있는 작업들을 많이 해나가고 싶어요. 사실 최종 목표라기엔 거창한 느낌이 들어요. 지금으로서는 꾸준한 작업과 전시가 가까운 목표인데 그것이 어떻게 표현될지는 아직 모르겠네요(웃음).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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