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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㉙] 헤어질 결심 서지 않는 ‘박해일표’ 장해준, 한국형 셜록 홈즈로!


입력 2022.06.04 16:37 수정 2022.06.06 11:38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이하 CJENM 제공 영화 '헤어질 결심' 스틸컷 ⓒ이하 CJENM 제공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11행-


지난달 23일 제75회 칸국제영화제가 한창인 프랑스 칸 뤼미에르대극장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감독 박찬욱, 제작 모호필름, 배급 CJENM)을 통해 그 ‘님’을 본 뒤 열이틀이 지났다. 오는 29일 국내 개봉이니 ‘님’을 볼 날이 당분간은 더 남아 있음을 안다. 아니, OTT(인터넷TV) 세상이니 만나려고만 하면 계속 볼 수 있음을 안다.


그러함에도 아쉽다. 헤어지기 전부터 이별이 우려될 만큼 ‘님’이 좋았던 탓이고, 향후 반복 재생해 본다 한들 새로운 모습은 아니어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날로 새롭게 또 날로 새롭게) 계속해서 새로운 모습으로 만나고픈 ‘님’은 감독 박찬욱이 박해일의 몸과 정서와 연기를 빌어 영화세상에 탄생시킨 형사 장해준이다. 칸이 감독 박찬욱에게 ‘감독상’을 안긴 걸작 ‘헤어진 결심’의 주인공, 장해준에 푹 빠지고 말았다.


사랑하게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0.2초라는 연구결과를 2010년 10월 말, 여러 국내 언론들이 미국 사이언스 데일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사이언스 데일리는 당시 ‘성저널’ 최신호를 인용, 미국 시러큐스대학과 웨스트버지니아대학 연구진이 스위스의 대학병원과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라고 밝혔다. 지난 2014년 방영된 드라마 ‘마이 시크릿 호텔’에서는 조성경(남궁민 분)이 남상효(유인나 분)에게 사랑에 빠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분이라 말하고, 남상효는 3초면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고 응한다.


0,2초도 좋고, 3초도 3분이어도 좋다. 명백한 건 너무 신선하고 매력적이어서 한눈에 반해 버린 장해준을 ‘헤어질 결심’에서만 보고 떠나보낼 수 없다는 마음이고, 한결 긴 호흡으로 영국 스파이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도 연출했던 박찬욱 감독을 졸라서라도 형사 장해준을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을 만들어 달라고 싶은 열망이다. 도통 헤어질 결심이 서지 않는다.


형사 장해준 역의 배우 박해일 ⓒ 형사 장해준 역의 배우 박해일 ⓒ

사람은 사랑에 빠지고 나서 왜 빠졌는지를 복기하곤 한다. 사랑에 빠진 이유를 만들어낸다기보다는 찰나의 순간에 나의 뇌와 마음에서 일어났던 작용을 찬찬히 말로 풀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장해준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나 많은데 몇 가지만 추려 보면 이렇다.


장해준은 비폭력적이다. 흔히 보던 영화 속 거친 형사들과 다르다. 그는 용의자 몸에 손대는 것을 혐오하며 인간적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 유가족이자 살인사건 용의자로 마주한 송서래(탕웨이 분)에게 자비를 들여 설렁탕 대신 초밥을 시켜 주고, 칫솔과 치약도 건넨다. 말투도 나긋나긋, 손끝도 점잖다.


장해준은 ‘뇌섹남’이다. 한 번 본 숫자 조합을 기억하고, 제각기 흩어져 있는 현상들을 단서로 조합해 추리를 완성한다. 요란하지 않게 조용히 홀로 수행한다. 그의 집, 한쪽 벽에는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를 걷어내면 미제 사건들의 사진과 단서들이 벽화처럼 붙어 있다. 그 끔찍한 사진들과 풀리지 않은 원혼에 좀처럼 잠들지 못하고, 잠을 못 자는 김에 철야 잠복을 밥 먹듯이 한다. 수면이 충분하지 못한 탓에 약간 예민하고 건조한 점마저 매력적이다.


양복을 입고도 잘 달린다. 컴포트화를 신은 이유, 영화를 보면 확인 가능하다. ⓒ 양복을 입고도 잘 달린다. 컴포트화를 신은 이유, 영화를 보면 확인 가능하다. ⓒ

장해준은 체력도 좋다. 특히 달리기를 잘한다. 유달리 발 빠른 형사는 많았지만, 해준은 지구력이 강하다. 후배 형사 수완(고경표 분), 무척 젊고 다리가 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에서는 나가떨어지는데 해준은 첫발 그대로 오르고 또 오른다.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의 모습이 깔끔한 댄디룩에 점잖은 성격의 해준과 만나면서 의외성과 재미를 배가시킨다.


장해준은 객관적이다. 수완이나 이포의 후배 형사(김신영 분)가 지나치다고 타박할 만큼 서래를 살인범으로 몰며 집요하게 파고드는 면모도 있지만, 모든 증거가 아니라고 말할 때는 이를 수긍한다. 부부간 잠자리의 정규성과 중요성에 무게를 두는 아내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지만, 전적으로 협조한다. 상대가 말하는 바에 귀를 기울이고 나만 옳다고 내세우지 않는다.


의심이 관심으로, 관심을 사랑으로 가꿔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헤어질 결심'으로 직행하는 어른들의 멜로 ⓒ 의심이 관심으로, 관심을 사랑으로 가꿔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헤어질 결심'으로 직행하는 어른들의 멜로 ⓒ

장해준은 어른스럽다. 서래를 좋아하게 됐지만 아내가 있는 남자로서, 바른 경찰로서 선을 지킨다. 1차 바리케이트는 무너졌다 해도 마지막 선은 지키고, 서래에게도 드러내어 표현하지 않는다. 서래를 용의선상에서 지운 것이 객관이 아니라 주관임을, 마음이 시킨 일이었음을 알게 됐을 때 장해준은 무너진다. 그래도 제 인생을 팽개치지 않고 다른 곳 이포에서 다시 시작하려 애쓴다. 그곳까지 서래가 왔을 때, 해준은 흔들리지 않으려 애쓴다. 적어도 다시 한 번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다시금 용의자가 된 서래와 말마디를 섞기 전까진.


장해준은 인간적이다. 오래 버티면 부러진다. 오래 버텨서 부러졌다. 어른이었던, 어른 행세를 했던 해준은 아이처럼 엉엉 운다. 자신이 무엇을 놓친 것인지 그제야 알고, 인생을 놓고 저울질해서도 안 되지만 거꾸로 선택했던 것임을 알고 통곡한다. 남자의 후회는 때가 늦다. 영원할 줄 알아서 지키려 했던 것과 사람도, 잠시 지나는 바람인 줄 알고 외면했던 이와 사랑도 이제 그의 곁에는 아무것도 없다. 해준은 생명의 모태 같은 바다에서 아이처럼 운 뒤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한국 배우 박해일의 면모 ⓒ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빛나는 한국 배우 박해일의 면모 ⓒ

사랑에 덴 뒤 다시는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려 마음먹고 수사에 매진하는 장해준, 그러면서도 또 흔들리는 장해준을 계속해서 보고 싶다. 천재적 기억력과 추리력에 체력마저 영화 ‘터미네이터2’의 액체금속 인간처럼 지치지 않는 형사 장해준을 여러 사건을 통해 만나고 싶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내세운 영화(셜록 홈즈)도 3편까지 만들어졌고, 베네딕트 컴버배치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셜록)도 시즌4까지 나온 마당에 불가능할 일도 없다.


짝꿍은 ‘셜록 홈즈’의 주드 로처럼 잘생긴 고경표도 좋고, ‘셜록’의 마틴 프리먼처럼 차지게 귀여운 김신영도 좋고, 사건에 따라 교차 등장해도 좋다.


영화 한 편에만 등장시키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캐릭터를 감독 박찬욱, 작가 정서경, 배우 박해일이 합심해 탄생시켰다. 일을 낸 자가 해결하는 법이다. 결자해지를 촉구한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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