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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정가영 감독 "욕망하는 마음, 인간을 가장 살아있게 만드는 것"


입력 2021.12.05 14:57 수정 2021.12.05 08:57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전종서·손석구 주연 '연애 빠진 로맨스' 연출

충무로, '여자 홍상수'로 불려

"박정민과 작업하고파"

'혀의 미래', '처음', '비치 온 더 비치', '너와 극장에서', '밤 치기', 하트' 등 정가영 감독이 그동안 연출한 영화들은 술자리에서 솔직하고 유쾌한 수다를 떤 것 같은 여운을 준다. 여성의 욕망과 성(性)에 대한 이야기를 직선적으로 표현하며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90년생 정가영 감독이 이번에는 호기롭게 상업영화 데뷔작을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다.


상업 영화라고 그의 재기발랄함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연애와 일상에 지친 자영과 우리가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나 몸으로 교감을 시작하지만, 이내 서로에게 끌리고야 마는 이성과 감성에 충실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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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작품들은 그동안 친구들과 모여 옹기종기 수다를 떤 느낌이었다면 '연애 빠진 로맨스'의 판은 조금 더 커졌다. CJENM이 투자 배급을 맡고, 충무로 대세 배우 전종서, 손석구가 주연으로 출연해 정가영의 색채를 조금 더 다채롭게 만들었다.


"믿기지가 않아요. 비디오 가게에 가면 꽂혀있는 비디오를 제가 만들었다는 거잖아요. 실감이 안 나요.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했고, 운도 따랐고, 저도 열심히 달려왔어요. 그런 것들이 영화 안에 다 담겨 있어요. 관객들이 웃으면서 영화를 한 시간 반 동안 재미있게 봐주시는 게 제 바람입니다."


정가영 감독은 '연애 빠진 로맨스'로 상업 영화에 도전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됐다.


"독립영화를 연출할 땐 규모도 작았고 제한된 인물들끼리 대화를 나누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에는 아무래도 예산이나 규모 면에서 크기가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죠. 등장하는 배우, 참여하는 스태프가 늘었고 회차도 길었고요. 조금 더 넓은 의미로 영화를 경험하게 된 것 같아요. 그 도안 제가 익히지 못했던 영화 현장의 지식들이라든지, 부족했던 모습들을 다시 알게 된 시간이었어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웃음)"


정가영 감독은 처음에 '우리, 자영'이라는 제목으로 기획해, 지금의 상업적인 구조를 갖추고 시나리오를 확정하면서 '연애 빠진 로맨스'를 4년 가까이 준비했다. 여성이 주체가 돼 성적인 이야기를 과감하게 풀어내는 것을 두고 많은 영화 관계자들의 다양한 의견들을 수렴했다. 관객들이 받아들였을 때 날카롭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을 매만지려고 노력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 역시 중요했다.


"자영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욕망이 이 영화의 핵심 감정입니다. 서로를 원하는 남녀의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불편하거나 부담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아슬아슬한 욕망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런 선을 잘 지켜내면서 매혹적으로 표현하는 게 '연애 빠진 로맨스'의 중요한 지점이었죠. 두 사람이 처음에 몸으로 교류하지만 결국 인간에게 끌리는 이야기잖아요. 그런 이야기로 받아들일수록 애썼어요."


그동안 정가영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직접 출연해왔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담인가요?'라는 말이 가장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다. '연애 빠진 로맨스' 역시 시나리오 작업에 그가 참여했기에 그의 모습이 어느 정도 녹여져 있는지 궁금했다.


"자영이라는 캐릭터가 20대의 저와 비슷한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모두들 다 20대 때 연애하고 헤어지고 하잖아요. 연애가 내 뜻대로 안되고, 그렇지만 원하기는 하고. 그런 점들은 저와도 맞닿아 있죠. 그 괴리 안에서 생기는 혼란스러움이 자영과 석구를 통해 잘 담긴 것 같아요."


정가영 감독의 영화 중 관전 포인트 하나는 캐릭터들의 맛깔나는 대사다. 그의 작품 속 대사에 변화구는 없다. 강력한 펀치처럼 날아가는 직구만 있다. 자영이 앱을 통해 우리를 선택한 이유는 "성병에 안 걸릴 것 같아 보여서"라고, 우리가 자신을 스스로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자 "남자 스스로가 보통이라 진단했다면 두 단계 후진이야"라고 객관적으로 조언을 해준다. 이외에도 두 사람의 원나잇 속에서 오가는 말들과 섹스칼럼을 종용하는 편집장들의 대사가 적나라하다. 적나라하지만 값싸 보이는 것이 아닌, 술자리 속 농담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이 정가영 감독의 특기다.


"관객들이 말맛이 살아있는 작품을 좋아해 주더라고요. 그런 작품을 쓰고 싶어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우리 영화가 코믹한 면이 강하게 어필돼야 하니까 여러 가지 잽을 날릴 수 있는 대사들을 모아놓고 연구했습니다."


정가영 감독은 자영 역의 전종서와 함께 작업을 하며 '동네에 있을 법한 친근한 아이'처럼 느껴졌다고 표현했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전종서의 사랑스러움에 무장해제됐을 것이다. 이는 곧 정가영 감독이 전종서를 카메라로 바라본 시선이기도 하다.


"전종서 배우는 지금까지 강렬하고 차가운 역할을 많이 했잖아요. 그것에 비해 우리 영화에서는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하고,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들죠. 저도 촬영 전과 후 전종서 배우에게 새로운 면들을 많이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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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두 사람의 위기는 우리의 칼럼으로 인해 촉발된다. 우리가 자영과의 만남부터 관계까지 자신의 칼럼을 통해 연재했고, 그 사실을 자영이 알게 된 후 급속도로 멀어지게 된다. 자영은 우리의 신상을 온라인에 공개하고 우리는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고 조롱거리가 된다. 정가영 감독에게는 관객들에게 이 갈등을 잘 설득시키는 것이 과제였다.


"우리라는 인물이 자기가 원했던 소설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잡지사에서 편집장의 강압으로 칼럼을 떠맡게 되잖아요. 주체성이라든지 자신의 입장을 강조하기 힘든 입장에 처해진 인물이죠. 그런 인물이 상황에 따라 자영을 만나고 칼럼을 쓰면서 관객들을 설득하려 했어요. 여기에서 손석구, 전종서 배우들도 의견을 많이 내줬고요. 분명 우리가 한 행동은 나쁜 행동입니다. 이 일로 인해 자영이가 복수를 하고 두 사람이 서로 느끼는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게 주된 갈등이고요. 제가 글을 쓴 사람으로서 목적 구성을 하면서 동시에 관객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어요."


정가영 감독이 모든 작품에서 연애와 욕망, 성을 주제로 가져가는 이유는 호기심과 설렘 때문이다. 현재는 지금과 같은 주제를 가져가고 싶은 마음과 전혀 다른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이 오간다고 웃어 보였다.


"어렸을 때부터 남녀 관계에 관심이 많았어요. 초등학생 때 여자애들 모아두고 '우리 반에서 누구 좋아해?' 이런 질문하는 걸 좋아했어요. 욕망하는 마음이 인간을 가장 살아있게 만드는 것 같아요. 사랑에 빠지면 세상이 달라 보이잖아요. 그래서 더 끌리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정가영 감독의 현재 욕망은 무엇인지 물었다. 그의 영화만큼이나 솔직하고 명쾌했다.


"관객 수라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하. 걱정이 태산입니다. 관객 수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상업영화감독이 됐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더 많은 관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그는 단편영화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에서 배우 조인성을 좋아해 캐스팅하고 싶어 하는 정가영 감독을 연기했다. '조인성을 좋아하세요'에 정가영 감독과 통화하는 목소리는 실제 조인성이다. 이 작품은 조인성을 향해 보내는 정가영 감독의 캐스팅 러브콜이기도 하다. 그가 쓴 단편영화 시나리오 한 편은 하정우를 주인공으로 두기도 했다. 다음 정가영 감독이 작업하고 싶은 배우는 '지옥'을 통해 한창 주기를 높이고 있는 박정민이다.


"박정민 씨는 연기를 너무 정확하게 하시고 마스크도 너무 좋아요. 정감이 가고 궁금한 배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 번 작업해 보고 싶어요."


정가영 감독은 '연애 빠진 로맨스'를 통해 그의 감성이 대중에게도 통했다는 걸 확인받았다. 앞으로도 여성이 주체가 돼 솔직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도 '여성이 남자랑 자고 싶다고 거침없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를 느낄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꼭 성이 주제가 아니더라도 아직 보여주지 않은 여자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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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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