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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③] 핀란드·독일·스페인…세계는 ‘실험 중’


입력 2021.08.12 07:02 수정 2021.08.12 08:36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아무도 경험 못 한 기본소득

성공과 실패 예측 난무하자

세계 각국 ‘실험’ 통해 증명

지난 4월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설명한 기본소득 구성요소.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사무국 지난 4월 열린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에서 설명한 기본소득 구성요소.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 박람회 사무국

올해 초 한 여당 대선주자는 “(미국) 알래스카를 빼고는 그것(기본소득)을 하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같은당 경쟁 후보가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우자 현실성이 없다고 비판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해당 발언 이후 기본소득에 대한 사람들 관심은 오히려 높아졌다. 언론들은 실제 알래스카에서만 기본소득을 시행하고 있는지 사실확인에 나섰다. 그 결과 세계 많은 나라에서 다양한 형태로 기본소득을 실험 중이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알래스카 경우 우리 사회에서 논의되는 기본소득과 다소 거리가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알래스카는 석유 등 천연자원 채취로부터 발생하는 수입을 기금으로 만들어서 그 투자 수익을 주민에게 매년 나눠주고 있다. 일종의 ‘배당금’이다.


이 때문에 해마다 금액이 달라진다. 1982년 시작할 때 연간 1000달러(약 115만원)였고 가장 많은 해는 2008년 3269달러(약 378만원)였다. 자원 수익에 따라 금액이 달라지고 액수도 충분하지 않아 기본소득 기본 조건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전문가들은 기본소득에 연구에서는 핀란드와 독일, 그리고 스페인 등을 통해 살펴보는 게 효과적이라고 한다.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1차 기본소득 실험을 마친 국가이고 독일은 현재 민간 자본을 바탕으로 실험이 진행 중인 나라다. 스페인은 기본소득 논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노동시간을 함께 연구 중이기 때문에 좋은 본보기가 된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2년 실험…고용 ‘실패’·삶의 질 ‘개선’

핀란드는 2017년 1월 1일부터 2018년 12월 31일까지 2년 동안 기본소득 실험을 진행했다. 2000명의 실업자를 무작위로 뽑아 매달 560유로(약 75만6000원)를 지급해 다른 실업자 집단과 고용 효과를 비교했다. 전국 단위로 무작위 통제 실험을 채택한 최초의 기본소득이란 점에서 관심이 집중됐다.


실험설계 당시 핀란드 정부는 실업수당을 기본소득으로 대체할 경우 실업자의 취업 뒤 추가소득은 100% 늘어날 것으로 계산했다. 실업수당은 취업하면 사라지지만 기본소득은 계속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 집단이 실업수당 집단보다 20~50% 더 일할 것으로 봤다.


2년 뒤 나온 결과는 핀란드 정부 예상과 달랐다. 기본수당을 받은 사람은 73일 일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78일 일했다. 8% 정도 차이에 그쳤다.


결과를 놓고 전문가 평가는 엇갈렸다. 실패라고 규정하는 사람들은 기본소득이 실험 목표였던 고용 유발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꼬집었다. 헤이키 히일라모 헬싱키대 사회정책학부 교수는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근로일수도 비슷했고 소득 또한 차이가 없었다”며 기본소득 실험을 실패로 규정했다.


반대 측에서는 기본소득이 사람들에게 높은 행복감을 줬다는 점을 들어 실패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조사 결과 삶의 만족도는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이 7.3점, 그렇지 않은 사람은 6.8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정신적 스트레스도 16.6% 대 25%로 기본소득을 받은 사람이 낮았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 역시 58.2%와 46.2%로 기본소득을 받은 측이 높게 나타났다.


성공과 실패 관계없이 실험 과정부터 잘못됐다는 지적도 있다. 핀란드 정부가 실험 시작 1년 뒤인 2018년 새로운 취업 활성화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실험 도중에 정부가 실업 관련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는 바람에 기본소득의 고용 효과를 제대로 비교할 수 없었다고 비판했다.


이런 논란에 최한수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기본소득 실험은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가진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핀란드 정부는 기본소득이라는 논쟁적이며 재정에 항구적 부담을 줄 수 있는 정책을 검토하면서 정치적 지향 외에 증거에 기반해 판단하는 현명함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지난 201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람들이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 기본 소득을 공여해주자는 제안 국민투표에 참가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스위스 국민은 당시 투표를 통해 기본소득안을 부결시켰다. ⓒ뉴시스 지난 2016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사람들이 모든 국민에게 무조건 기본 소득을 공여해주자는 제안 국민투표에 참가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스위스 국민은 당시 투표를 통해 기본소득안을 부결시켰다. ⓒ뉴시스
독일, 122명에 월 135만원 3년간 ‘무조건’ 지급

핀란드에 이어 경제 규모 세계 4위권인 독일도 기본소득 실험에 나섰다. 독일은 ‘나의 기본 소득 연합’이란 단체를 중심으로 지난 3월부터 실험을 시작했다.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와 함께 진행하는 이번 실험은 대상자 122명에게 3년 동안 매달 1000유로(약 135만원)을 지급해 기본소득을 받지 않는 1280명과 비교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본 목적은 핀란드와 같다. 기본소득이 근로 의욕에 미치는 영향력을 확인하는 것이다. 행동경제학과 사회학, 심리학 등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해 실험 참가자들의 심리상태 등을 분석할 예정이다.


실험에 드는 비용을 시민 후원금으로 충당한다는 건 독일만의 특징이다. 독일 국민 스스로 기본소득을 검증해보겠다고 나선 것으로 실험 참가자 1인당 지원 금액이 핀란드 두 배 가까이 된다.


실험 초반 반응은 긍정적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본소득이 가지는 노동 안정성이 특히 도드라진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한 실험 참가자는 “매달 받는 기본소득이 기존 직장을 나와 내가 원하는 창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긍정적인 부분은 (금전적으로) 안정적이란 것”이라며 “아직 창업 초기라 일거리가 별로 없는데 기본소득이 이런 위기를 넘기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 연구팀이 실험 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1차 설문 결과도 비슷하다. 기본소득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자기계발을 위해 돈을 쓰게 했다. 기본소득을 받으면 일을 하지 않을 거라는 추론도 사실과 달랐다.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가 적었고 그만두더라도 이직 또는 전업을 위한 선택인 것으로 나타났다.


위르겐 슙 베를린 독일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기본소득 지급에 대해 찬반 목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예측일 뿐”이라며 “우리는 과학적 기준에 근거해 그런 주장 가운데 어떤 것이 사질인지 명확하게 밝히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구는 수년 동안 지속한 기본소득에 대한 이론적 논쟁을 사회적 현실로 옮겨 갈 중요한 기회”라며 “우리는 장기간에 걸쳐 기본소득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행동과 인식의 변화로 이어지는지를 알아내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강남훈(앞줄 오른쪽 네 번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이 지난 2017년 8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 개헌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강남훈(앞줄 오른쪽 네 번째)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이 지난 2017년 8월 30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 개헌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스페인, 기본소득 대신 ‘기초생계비’로 실험

지난해 기초생계비 실험을 시작한 스페인 경우 지급대상에서 핀란드나 독일을 압도한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빈곤층 85만 가구에 매달 462유로(약 62만원)에서 1015유로(약 138만원)까지 최저생계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예전부터 논의해 온 최저생계비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빈곤층이 큰 타격을 받자 앞당긴 것이다.


사실 스페인의 최저생계비 실험은 엄격히 말하면 기본소득과 거리가 있다. 기본소득은 소득과 관계없이 모든 개인에게 같은 금액을 지급해야 하는데 스페인은 아니다. 스페인 정부는 저소득층을 14개로 나눠 빈곤 정도에 따라 금액을 차등 지급했다. 대상도 개인이 아닌 가구 중심이다.


결과도 예상과 달랐다. 지난 2월 스페인 정부가 내놓은 중간보고서에 따르면 원래 최저생계비 지급 목표가 85만 가구였다. 반년이 넘는 동안 실제 돈을 받는 건 16만 가구에 그쳤다. 최초 목표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신청자 소득과 자산이 최저생계비 지급 기준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최저생계비가 기본 복지 지원금보다 적은 것도 이유다. 기존 지원금과 중복 수령을 금지하자 최저생계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상자를 선별하는 과정도 오래 걸렸다. 스페인 정부는 무자격자와 중복 수혜를 가려내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자 기본소득 찬성론자들은 스페인의 실험이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지를 역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입을 모았다. 현재 복지제도의 선별, 차등 지원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기본소득이 해결해준다는 주장이다. 기본소득 규모도 기존의 복지비용을 웃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벨기에 정치 철학자이자 경제학자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는 “보편적 수당 제도를 실시했을 때 달성할 수 있는 수급률을 재산 조사에 의존한 수당 제도를 통해 달성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보 캠페인이 필요하다”며 “이에 따라 상당한 인건비와 행정비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결론적으로 선별적인 스페인의 최저생계비 실험이 기본소득의 보편성을 지지하는 근거가 됐다는 설명이다.


스페인은 최저생계비 실험과 함께 주4일 근무도 논의 중이다. 약 200개 기업을 선정해 3년 동안 4일 근무를 도입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줄이지 않고 임금도 삭감하지 않는 조건이다. 근무시간이 줄어 발생하는 생산 손실은 정부가 보상한다. 제도 첫해는 100%, 2년 차엔 50%, 3년 차엔 30%를 지원한다. 스페인 정부는 실험이 성공할 경우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김진경 자유기고가는 “노동시간 단축은 기본소득의 대안으로 자주 논의되는 주제”라며 “회사원과 자영업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노동시간 단축을 공정하게 적용하려면 엄청난 행정비용이 든다는 점이 문제인데 이런 부분을 극복하고 실제로 스페인에서 단축 근무가 시행될지 지켜볼 일”이라고 말했다.


▲[기본소득④]찬반논란 넘어 이제 다음 그림 그릴 때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장정욱 기자 (cju@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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