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처럼 뚝뚝…엔시티 127·키키·루시갱의 키치한 뮤직비디오 [가요 뷰]

전지원 기자 (jiwonline@dailian.co.kr)

입력 2026.09.27 11:22  수정 2026.09.2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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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시티 127 ‘블링이’, 수트 입은 해결사들의 움직임에 장난기

키키는 사진 꾸미던 시절로…루시갱은 일상적 동작을 비트에 맞춰

의상·소품 넘어 촬영과 편집으로…곡의 분위기 만드는 ‘끊김’

최근 뮤직비디오에서 사진처럼 끊기는 움직임과 반복되는 몸짓이 키치한 분위기를 만드는 장치로 쓰이고 있다. 같은 걸음과 몸짓도 어떻게 끊고 연결하는지에 따라 진지한 인물은 우스꽝스러워지고 평범한 풍경은 리듬을 얻는다.


27일 SM엔터테인먼트에 따르면 엔시티 127(NCT 127)이 지난달 24일 발매한 정규 7집 타이틀곡 ‘블링이’(Blingy) 뮤직비디오는 이날 기준 유튜브 조회수 약 2293만회를 기록 중이다. 영상은 해결사로 분한 멤버들이 서울 곳곳을 누비며 잃어버린 ‘블링이’를 찾아다니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작진은 수색 과정을 유쾌하게 보여주기 위해 한 컷씩 촬영한 장면을 빠르게 연결하는 스톱모션을 활용했다.


스톱모션은 피사체의 위치나 자세를 조금씩 바꿔 한 컷씩 촬영한 뒤 이를 이어 붙여 움직임을 만드는 기법이다. 이 가운데 사람을 대상으로 자세와 위치의 변화를 촬영하는 방식을 ‘픽실레이션’(pixilation)이라고 부른다. ‘블링이’ 속 멤버들의 이동 장면도 이런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엔시티 127 ‘블링이’ 뮤직비디오

영상 초반 수트를 차려입은 멤버들은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수색에 나선다. 복장과 설정은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지만 걸음은 사진을 이어 붙인 것처럼 뚝뚝 끊어진다. 한 자세에서 다음 자세로 넘어가는 과정이 생략되면서 인물들은 공간을 훌쩍 건너뛰는 듯 보인다. 진지한 해결사의 차림새에 엉뚱한 움직임이 겹치며 추적에는 익살스러움이 묻어난다.


SM엔터테인먼트 관계자는 “한 컷씩 촬영한 장면을 빠르게 이어 붙여 순간이동하듯 빠르게 움직이는 효과를 만들었고, 각 시퀀스의 임팩트가 중요한 만큼 짧은 시간 안에도 시선을 끄는 독특한 움직임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시청자는 걸음의 자연스러운 흐름보다 연달아 바뀌는 자세와 위치에 주목하게 된다. 멤버들이 진지하게 수색에 나서도 그 몸짓에는 장난스러운 느낌이 남는 이유다. 누아르의 외형을 빌리면서도 무겁게 가라앉지 않는, 이른바 B급 코미디의 정서가 움직임에서 만들어진다.


키키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 스톱 모션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이처럼 끊기는 움직임은 인물에 장난기를 더하는 동시에 특정 시대의 이미지 문화를 불러오는 데도 쓰인다. 키키(KiiiKiii)가 7월 30일 공개한 ‘캔디 핑크 매직 홀 플립 폰(나 어떡해)’(Candy Pink Magic Hole Flip Phone) 뮤직비디오는 스톱모션에 사진과 글자, 장식을 조합하는 콜라주 구성을 더했다. 필터와 꾸미기 요소를 입힌 멤버들의 사진이 연달아 바뀌면서, 꾸민 사진첩이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듯한 인상을 준다.


곡 제목에 등장하는 ‘매직홀’은 삼성전자가 2009년 출시한 폴더폰으로, 영상 역시 휴대전화를 꾸미고 그 안에 자신의 모습을 남기던 시절의 감각을 담았다. 색깔 가발과 여러 색상의 타이즈를 착용한 멤버들의 사진 위로 장식과 글자가 더해지고, 피처폰으로 사진을 찍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는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진에 효과를 넣어 싸이월드 사진첩에 올리던 감각을 연상시킨다. 이미지가 바뀔 때마다 포즈와 꾸밈이 도드라지고 사진 사이의 끊김은 한 장씩 골라 붙인 듯한 느낌을 살린다.


키키의 복고는 당시의 옷과 기기를 재현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사진을 찍고 꾸미고 남에게 보여주던 방식 자체를 영상의 형식으로 가져왔다. 스톱모션 특유의 끊김이 사진이라는 재료를 드러내기 때문에 가능한 효과다. 여기에 곡의 빠른 비트와 전자음이 더해지면서 옛 사진첩은 현재의 음악에 맞춰 경쾌하게 넘어간다. 복고의 대상이 의상과 소품에서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으로 넓어진 것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유행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최근 몇 년간 의상과 콘셉트, 헤어스타일로 나타났던 Y2K 흐름이 뮤직비디오의 편집 기법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루시갱 ‘헤드락’ 뮤직비디오 썸네일

사진을 잇는 방식이 과거의 감성을 불러온다면 짧은 동작을 반복하는 편집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리듬을 부여한다. 루시갱(Luci Gang)이 7월 31일 공개한 ‘헤드락’(HEADLOCK) 뮤직비디오는 농구장과 거리에서 그 효과를 끌어낸다. 화면 앞에서 랩하는 루시갱을 중심으로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몸짓을 곡의 박자에 맞춰 배치한다.


초반에는 루시갱이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과 뒤에서 농구공을 던지는 사람의 동작이 반복된다. 이런 반복은 짧은 영상 구간을 되풀이하는 ‘루프’(loop) 편집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 번이라면 지나쳤을 평범한 행동도 짧게 되풀이되자 시선을 끈다. 반복되는 동작이 박자를 눈으로 확인하게 하면서 배경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음악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한다.


농구장에서 거리로 배경이 바뀌어도 화면 앞의 루시갱이 시선을 붙잡는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랩과 끊어 반복되는 몸짓이 대비를 이루며 곡의 경쾌함과 재치를 살린다. 일상적인 장소에 반복되는 행동이 더해지면서 거리 풍경은 곡의 유쾌한 태도를 보여주는 무대가 된다.


움직임의 연속성을 깨는 연출이 주는 효과를 보면 끊기는 순간마다 인물과 장면의 새로운 표정이 드러나 재미를 준다. 무엇을 입히고 어떤 공간에 세울지에 더해, 어떤 자세를 남기고 얼마나 반복할지를 선택하는 일이 음악의 개성을 보여주는 연출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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