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은 선수만의 것일까…록인리오를 울린 화사, 그리고 한국이 계산하지 않은 값 [김희선의 글로벌 K컬처 이야기㉙]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09.18 09:19  수정 2026.09.1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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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리우데자네이루의 시다지 두 호키. 브라질 국기를 몸에 두른 화사가 눈물을 훔치며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케이팝(K-POP) 여성 솔로 아티스트 최초로 오른 록인리오 메인 스테이지, 팔코 문도. 통역을 거쳐 관객과 농담을 주고받던 그녀가 '마리아'를 부르자 관객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들었고, 조직 측이 안전을 위해 한 발짝 물러나 달라고 요청할 정도였습니다. 현지 매체는 이 밤을 록인리오 역사에 남을 순간이라 적었습니다.


그녀가 왜 케이팝계의 팝스타로 불리는지, 그 이유를 증명한 무대였다고요. 70만 명이 열흘 새 드나들고, 티켓 절반 이상이 리우 밖에서 팔려나가며, 지역 경제에 9000억 원 가까운 파급효과를 낸다는 이 축제의 메인 무대에 케이팝 여성 솔로 가수가 처음으로 오른 밤이었습니다. 같은 시각 한국에서 이 소식을 접한 이들 중 몇이나 그 무대의 규모와 역사와 의미를 궁금해 했을까요.


ⓒ화사 공식 인스타그램

태민이 코첼라 메인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최초의 한국인 남성 솔로 가수가 됐을 때, 팬들이 만든 해시태그는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1위에 올랐고 현지 매체는 새로운 팝스타의 탄생이라 불렀습니다. 제니의 코첼라 솔로 무대를 두고는 롤링스톤 필리핀이 기준선이 공식적으로 높아졌다고 평했고, 빌보드는 제니가 회의적인 시선마저 침묵시켰다고 썼습니다. 25만 명이 몰리고 매년 수천억 원대 경제효과를 낳는다는, 바로 그 사막 한복판의 무대에서 말이죠. 스트레이 키즈는 롤라팔루자 시카고와 파리, 브리티시 서머 타임 하이드 파크를 헤드라이너로 장식한 데 이어 4만 1000석 규모의 시애틀 구장을 매진시키고 오라클 파크에 케이팝 보이그룹 최초로 입성했으며, 이제는 아예 그들의 이름을 딴 축제 스트레이시티가 중남미 세 도시에서 열립니다. 몇 해 전만 해도 케이팝 아티스트가 이런 무대에 서는 일 자체가 이색적인 초청이자 하나의 사건이었습니다. 지금은 한 시즌에 여러 무대를 오가며 헤드라이너 자리를 반복해서 차지하는 이름들이 늘고 있습니다. 세계가 이들에게 묻는 것은 더 이상 얼마나 신기한가가 아니라, 얼마나 완성도 있는 아티스트인가입니다.


무대 뒤편에는 늘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페스티벌 기획사와 몇 년째 이어온 초청 협상, 현지 프로덕션 팀과의 밤샘 리허설, 무대마다 새로 짜는 세트리스트와 안무, 실시간 통역과 경호와 안전 인력, 이 모든 일정을 조율하는 매니지먼트 실무진까지. 한 곡 한 곡의 완성도 뒤에는 수십 개 팀이 몇 달을 갈아 넣은 시간이 쌓여 있습니다. 그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산업이고 성취인데, 이 서사는 국내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은 채로 지나갑니다.


ⓒ에스파 공식 인스타그램

그런데 이 온도차, 곰곰이 들여다보면 단순히 무관심 때문 만은 아닙니다. 올림픽 국가대표를 떠올려 보면 다른 게 보입니다. 우리는 결과와 무관하게 그들의 훈련 과정 자체를 애정으로 소비합니다. 메달이 없어도 '졌잘싸'라는 말까지 만들어 얹으면서요. 국가대표라는 이름이 붙는 순간, 준비 과정 전체가 국위선양이라는 공식적인 틀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아이돌에게는 이 틀이 애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연습생 시절의 훈련 강도, 단 한 번의 무대를 위해 몇 달을 갈아 넣는 준비, 실제 경제적 파급력과 화제성은 웬만한 국가대표를 능가하는데도, 이 노력을 국위선양으로 읽어주는 사회적 합의가 아직은 얕은 듯합니다. 국가대표는 국민 세금이 들어간 공개 선발 과정을 통과해 태생부터 '공적인' 존재로 출발하지만, 아이돌은 사기업이 사적으로 발탁하고 키워낸 '사적인' 존재로 출발하니 이 공과 사의 출발선 차이가 승인의 격차로 그대로 이어지는 셈입니다. 그러니 성과가 나면 화제는 외모와 태도로 새고, 크게 회자되지 않으면 그냥 무관심해집니다. 국가대표는 지든 이기든 자랑스러워하는데, 아이돌은 세계 최고의 무대에 서고도 가십으로만 남는 이유가 여기 있는지도 모릅니다.


소속사와 공연기획사, 이해관계자들이 돈을 버는 구조화된 산업의 결과를 놓고 국위선양씩이나 붙이느냐는 지적,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산업이 만들어내는 국가 이미지와 관광 수요라는 외부효과는 기획사의 손을 떠나 국가 전체로 흩어집니다. 프랑스가 자국 영화 산업에 세금을 투입하고, 영국이 창조산업을 국가전략으로 미는 것도 같은 계산법입니다. 그 산업이 세계 곳곳에 만들어낸 팬덤이 실제로 하고 있는 일도 있습니다.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 여행을 계획하고, 한국을 동경의 대상으로 삼는 일 말입니다. 우리도 한때 그랬습니다. 일본 만화를 보며 일본어를 익히고, 영국 록밴드에 빠져 리버풀과 런던을 순례했습니다. 지금 세계 곳곳의 팬들이 케이팝을 통해 하고 있는 일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물론 이 팬덤을 관광과 브랜드 자산으로 소급시키는 데는 정교한 후속 작업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원재료, 해외에서 이미 검증된 인지도와 호감은 이미 차고 넘치게 쌓여 있습니다. 브라질이 록인리오를 국가 자부심의 무대로 쓰는 동안, 우리는 이미 가진 자산을 국위선양이라는 틀 바깥에 방치해 두고 있는 건 아닐까요. 화사가 그날 록인리오에서 받은 환호는 이미 국경 밖에서 값을 인정받았습니다. 이제 그 값을, 우리도 한 번쯤 제대로 매겨볼 차례입니다.



김희선 Team8 Partners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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