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파워 오브 더 도그’ 베니스 수상 뒤 오스카 성과…넷플릭스 영화의 이어진 행보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으로 첫발…넷플릭스, ‘가능한 사랑’ 오스카 캠페인 전방위 지원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은사자상인 심사위원대상을 품었다. 한국영화가 베니스 경쟁 부문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을 받은 이창동 감독 개인에게도 24년 만의 베니스 본상이다.
이번 수상에는 또 하나 눈여겨볼 지점이 있다. '가능한 사랑'이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점이다.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영화제에서 스트리밍 영화의 자격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져온 사이 베니스는 비교적 일찍 플랫폼의 경계를 허물었다. 넷플릭스 영화를 경쟁 부문에 올리는 데 그치지 않고 주요상을 안겼고, 그렇게 베니스를 거친 작품 상당수는 이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후보에 오르거나 트로피를 가져갔다.
그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작품이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로마'다. 넷플릭스가 배급한 '로마'는 2018년 제75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차지했다. 당시만 해도 스트리밍 플랫폼의 영화가 기존 영화산업의 질서를 흔들 수 있다는 논쟁이 거셌지만, 베니스는 상영 플랫폼이 아닌 작품 자체를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
이창동 감독ⓒ넷플릭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제영화제인 베니스가 넷플릭스 영화에 최고상을 내주면서 스트리밍 영화의 영화제 진입을 상징하는 순간이 만들어졌다.
'로마'의 행보는 베니스에서 끝나지 않았다. 이듬해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10개 부문 후보에 올라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 등 3관왕을 차지했다. 비영어권 영화로는 당시 역대 최다 타이인 10개 부문 후보에 오르며 넷플릭스 영화가 오스카 작품상까지 경쟁할 수 있다는 사실도 보여줬다.
베니스와 넷플릭스의 접점은 이후에도 이어졌다. 2019년에는 노아 바움백 감독의 넷플릭스 영화 '결혼 이야기'가 경쟁 부문에 진출했다. 이 작품은 이듬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남우주연상·여우주연상 등을 포함해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로라 던이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베니스에서 작품을 공개하고 북미 어워즈 시즌으로 넘어가는 길이 넷플릭스 영화에도 자연스러운 선택지로 자리 잡기 시작한 셈이다.
2021년 제78회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는 넷플릭스 영화들이 더욱 뚜렷한 성과를 냈다. 제인 캠피온 감독의 '파워 오브 더 도그'가 은사자상인 감독상을, 매기 질렌할 감독의 '로스트 도터'가 각본상을 받았다. '파워 오브 더 도그'는 이듬해 아카데미에서 그해 작품 가운데 가장 많은 12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캠피온 감독이 감독상을 차지했다. '로스트 도터'도 여우주연상과 여우조연상, 각색상 등 3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캠피온 감독의 사례는 베니스와 오스카 사이의 연결고리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베니스국제영화제(라 비엔날레) 측은 2022년 캠피온이 '파워 오브 더 도그'로 오스카 감독상을 받은 직후 "최근 9차례 아카데미 감독상 가운데 7차례가 베니스에서 먼저 공개된 영화에서 나왔다"고 밝힌 바 있다.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2013),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버드맨'(2014), 데이미언 셔젤의 '라라랜드'(2016), 기예르모 델토로의 '셰이프 오브 워터'(2017), 쿠아론의 '로마'(2018), 클로이 자오의 '노매드랜드'(2020)가 그 사례로 꼽혔다.
넷플릭스 영화에 국한된 통계는 아니지만, 가을에 열리는 베니스가 이듬해 초까지 이어지는 오스카 레이스에서 얼마나 중요한 출발점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제 그 흐름 위에 '가능한 사랑'이 섰다. 베니스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에 이은 심사위원대상을 확보하면서 오스카 레이스를 시작하기에 유리한 이력을 손에 넣었다.
이창동 감독·설경구·전도연 ·조여정 ·조인성ⓒ넷플릭스
이미 제99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상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된 만큼 베니스 수상이 실제 후보 지명까지 이어질지가 다음 관심사다.
넷플릭스도 힘을 싣는다. '가능한 사랑'은 베니스를 거쳐 토론토국제영화제 등 주요 영화제를 돌며 작품을 알리고, 넷플릭스는 아카데미 시상식까지 캠페인을 이어갈 계획이다. 영화제 수상만으로 오스카 후보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의 인지도를 끌어올리고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영화를 지속적으로 노출해야 하는 어워즈 시즌에서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은 강력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창동 감독에게도 이번 도전은 남다르다. 전작 '버닝'은 2019년 제91회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서 한국영화 최초로 9편의 숏리스트에 진입했지만 최종 후보에는 들지 못했다.
이후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한국영화 최초로 최종 후보의 벽을 넘어 국제장편영화상을 포함한 4관왕을 차지했다.
이번에는 '버닝' 때와 조건도 다르다. '가능한 사랑'은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에 앞서 베니스 심사위원대상이라는 굵직한 이력을 확보했고, 어워즈 캠페인 경험이 축적된 넷플릭스가 배급과 홍보를 뒷받침한다. 작품 자체의 평가뿐 아니라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작품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알리느냐도 후보 지명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이전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섰다.
넷플릭스는 국제장편영화상에 국한하지 않고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 등 주요 부문에서 '가능한 사랑'이 후보에 오를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캠페인을 펼칠 계획이다. 특히 베니스에서 전도연의 연기에 호평이 이어지면서 여우주연상 후보 진입 여부도 관심사다. 전도연이 후보에 이름을 올린다면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주연 연기상 후보가 된다. 베니스에서 확보한 수상 이력과 넷플릭스의 캠페인이 실제 아카데미 후보 지명으로 이어질지가 이제 '가능한 사랑'의 다음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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