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팹 앞당기자 전력 확보 비상…왜 '25조 선납'까지 나왔나

백서원 기자 (sw100@dailian.co.kr)

입력 2026.09.10 13:48  수정 2026.09.10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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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팹 완공 최대 12년 단축…전력수요 14GW 이상

AI·반도체 추가 수요 최대 30GW…원전 20기 규모

송·변전망 투자 29%↑…삼성 20조·SK 5조 선납 논의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오른쪽)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 회장이 6월 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 반도체 생산시설 구축 일정을 최대 12년 앞당기면서 전력 확보도 속도전으로 접어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반도체 산업 확대로 추가 전력수요가 최대 30기가와트(GW)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대규모 전력망 구축에 필요한 재원 부담도 커지는 모습이다. 한국전력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총 25조원 규모의 전기요금 선납 방안까지 제시한 배경이다.


10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들어설 삼성전자 국가산업단지와 SK하이닉스 일반산업단지의 최종 팹 완공 시점은 당초 계획보다 각각 7년과 12년 앞당겨질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향후 5년 내 국내 메모리 생산능력을 2배로 확대한다는 목표다.


팹 건설 일정이 빨라지면서 전력 공급 시간표도 함께 압축되고 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 7월 삼성전자 국가산단의 경우 2030년까지 산단 내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인근 선로 보강으로 초기 전력을 공급하고, 2036년까지 기존 선로 용량을 늘린 뒤 최종 전력수요 공급 시점을 2053년에서 2042년으로 11년 앞당긴다는 계획을 밝혔다. SK하이닉스 일반산단도 기존 2039년까지였던 전력공급체계 구축 일정을 2031~2032년으로 앞당겼다.


지난달 체결한 용인·호남 반도체 산단 전력공급 협약에서는 일정이 한층 구체화됐다. 삼성전자 국가산단 6개 팹에는 2041년까지 단계적으로 전력을 공급한다. 용인 국가·일반산단의 전력수요는 2041년까지 14GW 이상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호남 반도체 산단에도 6GW 이상의 전력이 필요할 전망이다. 정부는 2029년 초기 팹 가동에 맞춰 약 3GW를 우선 공급하고 이후 추가 선로와 변전소를 구축해 6GW 이상으로 공급 규모를 늘릴 계획이다.


1단계 전력공급설비 비용은 공공과 민간이 사용 비중에 따라 분담하며, 민간 분담금 일부에 대해서는 반도체특별법에 따른 국가재정 지원도 검토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까지 더해지면 수요는 더욱 커진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최근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생산 확대, 신규 AI 데이터센터 건설 등에 따른 추가 전력수요가 25~30GW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원전 약 20기의 설비용량에 해당하는 규모다.


정부가 마련 중인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잠정 수요 전망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 지난달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공개된 전망에는 반도체 메가프로젝트 20.6GW, AI 데이터센터 7.9GW의 추가 전력수요가 반영됐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가 지난 8월 11일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일대에 건설 중인 반도체 팹을 방문한 더불어민주당 3대 메가프로젝트 지원 특별위원회 위원들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막대한 전력망 투자비를 어떻게 마련할지도 과제다. 한전의 제11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필요한 투자비는 72조8000억원이다. 직전 제10차 계획의 56조5000억원보다 16조3000억원, 28.8% 늘었다.


이에 한전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향후 5년치 전기요금을 미리 내는 방안을 제안했다. 삼성전자 20조원, SK하이닉스 5조원 등 총 25조원 규모다. 지난해 양사가 낸 전기요금인 삼성전자 약 4조1000억원, SK하이닉스 약 9000억원을 토대로 2027~2031년 5년치를 산정했다. 대규모 송·변전망 투자를 앞두고 사채 발행 외에 새로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이다.


전기요금 선납제 자체는 기존에도 운영됐지만 지난해 선납액은 약 3900억원으로 대부분 국가기관이 납부했다. 이번에 제안한 25조원은 지난해 전체 선납액의 60배가 넘는 규모다. 현재 논의되는 방안은 양사가 약 1년에 걸쳐 선납금을 나눠 내고, 한전이 매달 발생하는 전기요금을 선납 잔액에서 차감하는 방식이다.


다만 아직 확정된 방안은 아니다. 참여 여부와 이자율, 선납 규모와 기간 등 세부 조건은 한전과 양사의 협의가 필요하다. 한전의 총부채가 지난 6월 말 기준 210조7000억원에 달하는 가운데 송·변전망 투자 규모도 크게 늘면서 사채 발행 외에 새로운 재원 확보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다.


손현정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대규모 전력망 투자로 한전의 차입 부담은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정부 출자와 정책성 비용의 재정지원, 전기요금 선납 등 투자재원을 다변화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반도체 기업 입장에서는 전력망 조기 구축이 절실한 반면, 양사 합쳐 25조원에 달하는 전기요금을 미리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국내외에서 대규모 설비투자를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만큼 선납에 따른 자금 운용과 투자 여력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전력망 구축 속도는 반도체 투자 일정과 직결된다. 팹을 계획대로 완공하더라도 필요한 시점에 충분한 전력이 공급되지 않으면 생산시설 가동 일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어서다.


변수는 재원뿐만이 아니다. 대규모 송전선로는 부지 선정과 인허가, 주민 수용성 확보에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4개 노선의 345킬로볼트(kV)급 초고압 송전선로를 놓고 후보 지역에서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되는 등 주민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팹 건설 속도에 맞춰 실제 전력망을 구축할 수 있느냐도 관건으로 꼽힌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팹 건설 일정에 맞춰 대규모 송·변전망을 얼마나 빨리 구축하고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국내 반도체 투자 속도를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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