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기록' 각인시켜 녹취 내용 신빙성 높여
"오빠", "보고 싶어서 눈물"등 '로맨틱 대화' 해명은 전무
스피커 한동훈 공격해 논란 덮으려다 '팀킬', '확인사살'
김승원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3일 서울 종로구 적선현대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여성 브로커 양모 씨의 부탁을 받고 신약 임상시험 승인을 청탁한 구체적인 정황이 녹취를 통해 4~6일 사흘에 걸쳐 공개됐다. 대화 내용을 보면 둘 사이의 사적 친밀감이 느껴지는 호칭이나 말투가 확연하고, 청탁 내용이 김 후보자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로 넘어가 일이 진행되는 과정까지 비교적 상세히 드러난다.
법무부 장관은 국가의 법무 관련 사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다. 다른 국무위원이라고 해서 예사로이 넘길 일은 아니지만, 법무부 장관에게는 더 냉철한 법적, 윤리적 잣대가 요구된다.
그런데, 이런 논란에 휩싸였으니 지명한 이재명 대통령에게는 상당히 곤혹스런 일이다. 더구나 김 후보자의 지명이 ‘공소취소를 위한 포석’이라는 야권의 의혹이 사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거사를 앞두고 거사를 진두지휘할 선봉장을 날리는 셈이 아닌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곤란한 상황에 처한 건 마찬가지다. 청문회에서 ‘거사의 선봉장’인 김 후보자를 감싸야 하는데, 그들도 염치가 있다면 편을 들더라도 명분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민주당은 즉각 ‘논란 덮기’에 나섰다. 그런데, 그 방법이 참 지켜보기에 안타깝다.
"수사자료라고? 픽션이 아니었네?"
조계원 민주당 대변인은 녹취를 공개한 무소속 한동훈 의원에게 “불법적인 녹취와 수사자료 입수 경위를 소상하게 밝히고 국민 앞에 사과하라”고 공격했다. 그는 “사적 통화 녹취는 당사자 아니면 수사기관 등 제한된 경로를 통해야만 나올 수 있다. 입수·유출 경위에 위법성이 있다면 명백한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한 의원이 김승원 후보와 양모 씨 사이의 더 적나라한 대화가 담긴 녹취를 공개할 것을 미리 막아서기라도 하려는 듯 “앞으로도 녹취와 수사자료를 공개하겠다고 하는데, 그럴수록 한 의원의 범죄혐의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동아 의원은 한 술 더 떠 한 의원의 녹취 공개를 두고 “명백한 공무상비밀누설이자, 피의사실공표, 개인정보보호법 및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에 해당하는 중대 범죄”라며 한 의원과 그에게 수사기록을 건넨 성명불상의 제공자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한다고 밝혔다.
이런 민주당의 급발진은 국민들로 하여금 확신을 갖게 했다.
“아 저 듣고 상상하기도 거북한 중년의 로맨스가 터무니없는 픽션은 아니었구나.”
그렇다. 민주당의 공세에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언급이 전혀 없다. 오히려 녹취가 ‘수사자료’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킴으로써 신뢰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일종의 ‘팀킬’이자 ‘확인사살’이다.
김 후보자 반박에도 "오빠", "보고 싶어서 눈물" 등 해명은 없어
물론, 김 후보자가 직접 나서 녹취 내용을 반박했다. 6일 언론 공지를 통해 “전체 맥락을 삭제해 공익 민원을 불법 로비로 왜곡하는 정치공세”라며 “승인 압력이 아닌 심사 지연 사유 확인”이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임상시험 승인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유추할 수 있는 녹취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 ⓒ뉴시스
하지만, 중요한 내용이 빠졌다. 핵심을 짚은 건 여야 다툼에서 사실상 중립기어를 박고 독자노선을 걷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다. 그는 지난 5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보도대로라면 (김승원 후보자가) 술집에서 알게 된 여동생이라는 분의 청탁으로 식약처에 신약 승인 로비를 했다는데 그 신약은 또 위험 물질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주가 조작도 있었다는 것인데 그런 사건이 왜 기소유예 처분이 됐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수사도 개판이다. 그런데 그건 인사 청문회가 아니라 부인 앞에 가서 부인 청문회를 당해야 할 거 아닌가”라고 덧붙였다.
김 후보자의 해명에서 빠진 것은 바로 한동훈 의원으로부터 “로맨틱하다”는 평가를 받은 대화 내용들이다. 기혼 남성이 외간 여자와 로맨틱한 일을 벌였으니 ‘부인 앞에서 청문회를 당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다.
한 의원이 공개한 녹취를 보면 김 후보자는 2022년 2월 8일 양 씨와의 통화에서 “동생, 보고 싶어서 눈에서 눈물이 나네 그냥”이라고 말했고, 양 씨는 “오빠, 지금 달려갈게”라고 답했다.
이후 “어디야”(양 씨), “여의도야”(김승원), “나 하남인데 1시간 후에 도착인데 그래도 돼?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할 테니까 주소 주세요”, “잠시만…아 우리 법원 인사철도 있고 그래서”, “아 너무 긴가?”, “기다릴게” 등의 대화가 차례로 이어졌다.
같은 날 이뤄진 2차 통화에서도 둘은 “20∼30분밖에 못 보면 아쉽잖아”(김승원) “안 아쉬워. 물건을 잔뜩 챙겨서 가고 있으니까 일단 있어봐”(양 씨), “그래그래 있을게” 등 사적 친밀감이 확연한 대화를 나눴다.
‘오빠’라는 호칭. 혈연관계가 아닌 남녀 사이에서는 특별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설령 김 후보자가 남이 자신을 오빠로 부르든 말든 신경 안 쓰는 테토남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른 여성을 ‘보고 싶어서 눈물을 흘릴’ 정도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국민들은 사적 인간관계와 청탁 논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을까?
김 후보자와 민주당은(그리고 어쩌면 이재명 대통령도) 사적 인간관계와 청탁 논란을 분리해서 논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겠지만, 국민들의 시선은 그렇지 않다.
무려 법무부 장관 후보자다. ‘오빠’ 소리에 휘둘려 보고 싶어 눈물을 흘릴 사람이, 부부관계에 치명적이 될 만한 이성관계로 약점을 잡힐 만한 사람이 법무부 장관이 돼 국가의 법무 관련 정책을 사심 없이 공명정대하게 집행할 수 있을까.
민주당 주장대로 ‘불법 수사기록 유출’이니 없던 일로 하자고 한다면 그 로맨틱한 대화들이 국민 뇌리에서 잊힐까. 이 사태를 스피커(한동훈 의원)를 향한 공격으로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민주당의 해맑음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민주당의 ‘김승원 후보 지키기’는 ‘팀킬’이자 ‘확인사살’이었다.
ⓒ데일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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