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덜어내고 예술가의 고뇌로… '시크릿' 떼고 본질 찾은 재연
8월 1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2023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돌아온 뮤지컬 ‘베토벤’은 타이틀에서 부제 ‘시크릿’을 떼어내며 작품의 방향성을 재정립했다. 초연 당시 관객의 호불호를 갈랐던 유부녀 안토니 브렌타노와의 자극적인 연애 구도와 개연성 부족을 과감히 정돈하고,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 속에서 끝내 음악을 완성해 가는 예술가의 고독과 집념에 집중했다. 초연에서 몰입을 방해한다고 지적받은 연출들을 덜어내는 대신, 유년기 아버지의 학대 트라우마와 동생 카스파의 부재, 귀족 사회의 조롱 속에 고립되어 가는 인물의 내면을 서사의 중심에 놓았다.
ⓒEMK뮤지컬컴퍼니
이 같은 서사 개작의 중심축을 이루는 것은 단연 베토벤의 명곡들을 재해석한 뮤지컬 넘버들이다. 작품은 베토벤이 남긴 클래식 원곡 51곡의 멜로디에 가사를 입혀 인물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도록 설계했다. 대표적으로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은 인물의 정숙한 내면을 보여주는 ‘세상이 너에게’로,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은 감정의 파도를 담아낸 ‘잔인한 내 사랑’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교향곡 3번 ‘영웅’은 동생과의 관계를 다룬 ‘형제의 재회’에, 교향곡 6번 ‘전원’은 ‘바덴의 숲’에 각기 이식돼 극의 정조를 잡는다.
재연에서는 기존의 과도한 리프라이즈를 줄이고,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의 신곡 ‘포에버 트루’를 비롯해 ‘비창’과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의 선율을 정교하게 엮어낸 베토벤과 안토니의 듀엣곡을 새롭게 추가하여 음악적 완성도를 높였다.
음악적 재해석은 청력 상실이라는 시련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체감하게 만드는 연출과 결합하며 극적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베토벤의 시점에서 들리는 찌르는 듯한 이명과 먹먹한 소음 효과는 그가 직면한 고립감을 객석으로 직접 전달한다. 1막 엔딩에서는 난청의 고통과 분노를 견디지 못한 베토벤이 피아노 위에 올라가 울부짖는 순간 교향곡 5번 ‘운명’의 선율이 격렬하게 울려 퍼지며 정점을 찍는다.
이어 2막 클라이맥스에서는 지휘를 마친 베토벤이 세상의 침묵 속에서 반응을 느끼지 못할 때, 안토니가 그를 돌려세워 객석의 박수를 눈으로 확인하게 하는 교향곡 9번 ‘합창’ 장면을 통해 절망을 넘어선 환희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끌어낸다.
ⓒEMK뮤지컬컴퍼니
웅장한 음악과 밀도 높은 연출은 홍광호와 윤공주라는 두 베테랑 배우의 가창과 연기로 완성된다. 루드비히 역의 홍광호는 바리톤의 묵직한 중저음부터 단단하게 분출되는 고음까지 다채로운 음색을 활용해 예술가의 거친 자존심과 그 이면에 숨겨진 나약함을 극명하게 대비시킨다. 가창력의 압도는 물론, 소리를 잃어가는 과정에서의 절망을 섬세한 표정과 호흡으로 채워 넣는다.
안토니 역의 윤공주 역시 변화된 서사 속에서 베토벤의 영혼을 이해하는 정서적 동반자로 중심을 잡는다. 윤공주는 특유의 단아하면서도 강인한 가창으로 홍광호의 강렬한 에너지를 부드럽게 받쳐주며, 듀엣 넘버에서 정밀하게 조율된 음색의 조화를 선보인다.
다만 서사의 명확성을 위해 갈등 구조를 단순화하다 보니, 후반부 전개가 다소 예상 가능한 틀 안에 갇히는 아쉬움도 남는다. 갈등의 외부적 긴장감이 낮아진 탓에 극 전반을 흐르는 우울한 정조가 다소 무겁게 다가올 여지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연의 아쉬움을 상당 부분 덜어내면서 비로소 ‘인간 베토벤’의 면모가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선 반가운 변화다. 공연은 8월 1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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