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수에서 16년차 뮤지컬 장인으로
한국인 최초 브로드웨이 주연 데뷔
8월 17일~9월 6일까지 브로드웨이 '시카고' 록시하트 역
가수 겸 배우 아이비가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주연으로 선다. 오는 8월 17일부터 9월 6일까지 브로드웨이 앰배서더 극장에서 열리는 뮤지컬 ‘시카고’의 주인공 록시 하트 역이다. 한국 프로덕션에서 활동해 온 국내 배우가 브로드웨이 현지 무대에 주연으로 발탁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성과는 한국 뮤지컬 시장의 성장을 보여주는 사건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한 배우가 16년 동안 무대 위에서 성실하게 쌓아 올린 결과물이다.
ⓒ신시컴퍼니
아이비의 이력을 설명할 때 뮤지컬 ‘시카고’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2012년 국내 ‘시카고’ 공연에서 처음 록시 하트 역을 맡았다. 이후 2014년, 2018년, 2021년, 2024년 등 국내에서 열린 거의 모든 시즌의 무대를 지켰다. 2026년 현재까지 약 14년 동안 그가 록시 하트로 무대에 오른 횟수는 통산 600회에 이른다.
단일 배역으로 600회를 소화하는 것은 매일 같은 안무와 대사, 가창을 일정한 궤도 위에서 유지해야 하는 고된 작업이다. 브로드웨이 제작진 역시 이 숫자가 증명하는 숙련도와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력에 주목했다. 한국 무대에서의 오랜 반복이 브로드웨이로 가는 열쇠가 된 셈이다.
이러한 성과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이비는 2005년 대중가수로 데뷔해 히트곡을 내며 솔로 댄스 가수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2010년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의 조연 비앙카 역을 맡으면서 무대 배우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가수의 이름값에 기대지 않겠다는 태도는 이후 필모그래피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위키드’의 글린다, ‘아이다’의 암네리스, ‘렌트’의 미미처럼 감정과 에너지를 쏟아내야 하는 배역들을 차례로 거쳤다. 이후 ‘고스트’의 몰리, ‘레드북’의 안나, ‘마틸다’의 미스 허니, ‘물랑루즈’의 사틴 역 등을 맡으며 라이선스 대작과 창작 뮤지컬을 가리지 않고 무대를 확장했다. 올해로 뮤지컬 데뷔 16년 차를 맞이한 그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한 스타의 기록이라기보다, 성실한 무대 노동자의 기록에 가깝다.
ⓒ신시컴퍼니
제안을 받은 이후의 과정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서기 위해 아이비는 약 1년 동안 3차례의 영상 오디션을 거쳐야 했다. 대사는 물론 모든 뮤지컬 넘버를 영어로 소화하며 현지 연출진에게 실력을 검증받았다. 단순히 언어를 구사하는 것을 넘어, 영어 대사에 인물의 감정과 뉘앙스를 실어 보내는 과정이 요구됐다.
합격 통보를 받은 지금도 그는 훈련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여러 명의 원어민 교사와 함께 발음과 억양, 대사의 리듬감을 파트별로 나누어 교정하는 정밀한 작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다시 언어의 장벽 앞에 서서 신인의 자세로 돌아간 것이다.
아이비는 대중가수의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뮤지컬 전향 이래 16년간 ‘무대’라는 한 우물을 깊게 파왔다. 다양한 작품을 거치며 스펙트럼을 넓히는 와중에도, 자신의 뿌리와도 같은 ‘시카고’의 록시 하트만큼은 14년 동안 600번 가까이 반복하며 장인의 경지까지 밀어붙인 것이다. 무대 위에서 뚝심 있게 쌓아 올린 이 성실함이 브로드웨이의 문을 열어젖힌 원동력이다.
“나이가 많아도,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이번 진출은 단순한 해외 무대 데뷔를 넘어 한 인간의 집요한 노력과 도전 정신이 만들어낸 결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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