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논리에 밀린 예술 교육, 현장선 '생태계 파괴' 우려
수도권 인프라 점유율 80%대...인프라 격차 외면한 하향식 행정 반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을 중심으로 문화예술 기관의 지방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현장에서는 예술 교육의 경쟁력 저하와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지속해서 제기된다. 충분한 현장 조사나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 없이 진행되는 하향식 행정이 예술계의 위기를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예술단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서울예술단
지난해 3월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한국 2035’ 정책을 통해 서울예술단을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이전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새 정부에 들어서면서 전면 보류됐으나 올해 2월 원칙대로 이전을 공식화했다. 이어 올해 4월에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민형배·정준호·전진숙 의원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하며 서울예술단과 함께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도 광주로 이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준호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의 골자는 한예종을 올해 7월 출범하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로 전면 이전하는 것이다. 학교의 숙원인 석·박사 과정 대학원 설치를 허용하는 대신, 학교 소재지를 광주광역시로 명시하는 조항을 담았다. 이는 교육적 필요성에 의해 논의되어야 할 학제 개편을 특정 지역의 정치적 이익과 결부시킨 전형적인 조건부 입법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정권이 바뀌고 여야가 공수를 교대해도 문화예술을 대하는 정치권의 태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현실에 안타까움을 내비치고 있다. 서정민갑 문화평론가는 “광주전남의 정치 행정으로는 한예종 아니라 한예종 할아버지가 와도 말아먹을 것”이라며 “차근차근 숙의하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무턱대고 제안부터 하는 방식, 의견이 쏟아지는데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는 무책임, 건물부터 지으려는 근시안”이라고 문제점들을 꼬집었다. 최여정 공연평론가 역시 “이번 법안의 핵심 동기가 학교 발전을 위한 제안이 아닌 (광주전남)통합시 출범에 맞춘 지역 정치 어젠다가 1차적”이라고 비판했다.
예술 교육 기관과 단체의 지방 이전은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공연, 오디션, 방송 등 실습 중심의 예술 교육 특성상 수도권에 구축된 문화 인프라와의 접근성은 교육 경쟁력과 직결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2025년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의 문화기반시설 집중도는 박물관 33%, 미술관 38% 수준이며, 수도권 공연 티켓 판매 점유율은 80%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립예술단체의 서울 공연 비율 역시 85.5%에 달하는 반면, 지방 공연 비율은 대구 1.6%, 경북 1.1% 등 극히 저조한 실정이다. 특히 이번에 서울예술단과 한예종 이전을 강하게 추진 중인 광주의 공연 비율은 0.8%에 불과하며, 전남(0.6%)을 합친 광주·전남 전체를 모두 더해도 1.3%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이러한 인프라 격차는 우수 강사 확보의 어려움과 교육 여건 저하로 이어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술대학 강사는 “현업에서 활동하는 최정상급 강사진이 거리 문제로 이탈할 경우 교육의 질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예종 재학생 역시 “대학원 설립은 정당한 교육권의 문제지 지역 이전의 대가가 될 수 없다”라며 “모든 기회가 서울에 집중된 환경에서 광주로의 이전은 예비 예술가들에게 사실상 커리어를 포기하라는 요구와 다름없다”라고 호소했다. 한예종 총학생회는 “정치적 필요에 따른 교육기관 이전 대상화이자 학습권 침해”라며 일방적인 이전 추진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작 전남·광주 지역에 터를 잡고 있는 예술인들 또한 한예종의 광주 이전에 대해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공연 기획자는 “당장 한예종을 이전한다고 그로 인해 지역 예술이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라며 “예술대학을 옮겨오기 위해선 주변 인프라가 중요한데 현재로선 시기상조”라고 짚었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최휘영 장관은 논란이 극에 달한 뒤에야 뒤늦게 입장을 밝혔다. 최 장관은 한예종의 광주 이전을 논의한 바 없다면서 “예술 교육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물리적 이전은 국가 예술 자산의 성장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하지만 예술계 내부에서는 부처가 선제적으로 갈등을 조율하기보다 여론의 눈치를 보며 뒷북 대응에 그쳤다는 냉소적인 반응과 함께 주무 부처의 행정력 부재와 방관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수도권 중심의 문화예술 인프라와 교육 여건 쏠림 현상은 분명 해결해야 할 과제”라면서도 “다만 이것은 수도권에 기존 자리 잡은 예술 기관이나 학교를 이전하는 1차원적인 방법으론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을 실습할 수 있는 총체적 여건을 재구축하기에는 시간과 예산이 막대하다”며 “준비 없는 강제 이전은 우수한 예술 인재들이 수도권 대학으로 이탈하는 부작용을 낳고, 결과적으로 국내 예술 교육 전체의 경쟁력을 하락시키는 원인이 된다. 콘텐츠가 없는 그릇에 기관만 밀어 넣는 방식의 행정은 정치가 문화를 도구화하는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다”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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