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e음, ‘신규등록 순’ 허점 노출
행안부, 전국 지자체에 ‘과열경쟁 자제’ 공문 발송
“민간전문가와 협의해 제도 개선 할 것”
일부 지자체에서 답례품 노출을 이유로 매크로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향사랑e음 사이트 메인에는 이런 매크로를 활용한 답례품이 신규 답례품을 밀어내고 메인 상품에 노출 돼 있다. ⓒ고향사랑e음 캡처화면
시행 3년 차에 접어든 고향사랑기부제가 일부 지자체의 ‘노출 경쟁’이 과열되면서 공정성 훼손에 대한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제도가 양적으로 성장했음에도 운영 시스템의 허점을 파고든 지자체들의 ‘매크로 작업’이 도를 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향사랑기부금 통합 시스템 ‘고향사랑e음’ 답례품몰의 기본 노출 기준인 신규등록 순 정렬 방식이 문제의 출발점으로 지목된다. 2025년 기준 기부금 1000억원 돌파, 제도 도입 3년 만에 누적 2500억원을 훌쩍 넘기며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이 같은 정황이 포착되자, 행정안전부는 지난 15일 전국 지자체에 과열경쟁을 자제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또한 22일 민간전문가를 섭외해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고 전국 지자체 담당자들과 화상회의를 열었다.
‘신규등록 순’이 만든 비정상 경쟁 구조
고향사랑e음 답례품몰 메인 화면은 기본적으로 ‘최근에 등록된 순서’대로 답례품을 보여주는 구조다. 기부자가 별도의 정렬 설정을 바꾸지 않고 접속할 경우,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상품들은 거의 모두 ‘신규등록’으로 올라온 답례품이다.
노출 위치가 곧 기부 실적으로 이어지는 구조 탓에 일부 지자체는 이 점을 노린 공격적 운영에 나선 셈이다. 문제는 이런 공격적인 운영이 다른 지자체나 상품을 방해하는 컴퓨터 자동화, 즉 ‘매크로(자동화) 시스템’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특정 지자체들이 자동화 도구를 활용해 기존에 등록돼 있던 답례품을 수시로 삭제한 뒤 동일·유사 상품을 다시 등록하거나, 삭제 없이 유사 품목을 여러 개로 쪼개 반복 등록하는 방식이 활용된 정황이 포착됐다.
데일리안 취재 결과, A도 B시 등 일부 지역은 기존 등록 답례품을 수시로 삭제한 뒤 매크로를 이용해 동일 상품을 재등록하는 방식으로 노출 순위를 끌어올렸다. 한 지자체는 12월 초 하루 신규등록 수가 60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전국 평균 등록 수(지자체당 약 4~6건)의 10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렇게 되면 실질적으로는 변동이 없는 답례품이 매일 ‘신규’로 올라오는 것처럼 상단을 장기간 차지한다. 정상적으로 새로 입점한 답례품은 화면 아래로 밀려나는 구조가 된다.
실제 운영 원리상 특정 시간대에 한 지자체가 수십 건의 ‘신규등록’을 쏟아낼 경우, 동일 시점에 등록된 다른 지자체의 답례품은 첫 화면에서 사실상 사라질 수밖에 없다.
국토연구원이 2024년 발표한 ‘고향사랑기부제의 모금 실태와 제도 개선방안’에서도, 제도 도입 이후 일부 지자체에서 모금 경쟁이 과도하게 벌어지고 있으며, 제도 취지를 벗어난 홍보·마케팅 경쟁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다.
이 보고서에서는 “기부금 모금 실적을 둘러싼 지역 간 경쟁이 심화될 경우, 답례품 구성과 홍보 방식에서 편법에 가까운 행태가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신규 답례품 노출 박탈과 선택 왜곡
이 같은 노출 경쟁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진짜 신규 답례품’과 이를 준비한 지역 업체들이다. 제도 설계상 신규 등록된 답례품은 일정 기간 상단에 노출되며 기부자에게 소개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특정 지자체의 반복 등록이 집중될 경우, 실제 새로 올라온 답례품은 상단 구간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고 곧바로 하단으로 밀려난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제도 취지대로 정당하게 신규 상품을 올려도, 재등록을 반복하는 지자체와 경쟁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기부자 입장에서도 선택권 제한과 정보 왜곡 문제가 발생한다. 메인 화면에서 보이는 상당수 상품이 ‘가장 자주 재등록된 기존 답례품’일 가능성이 커졌다. 플랫폼이 제공해야 할 정보인 ‘최근에 발굴된 지역 특산품’과 ‘다양한 선택지’가 가려진다.
국토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 등 연구기관들은 고향사랑기부제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기부자에게 제공되는 정보의 투명성과 공정성이 핵심이라고 입을 모은다.
답례품 노출 구조가 왜곡될 경우, 제도에 대한 신뢰 저하는 물론 장기적으로는 기부 참여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일부 지자체에서 고향사항기부제 답례품 노출 순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과열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행안부, 답례품 상단 독식에 브레이크… 랜덤+전문가 개편 예고
고향사랑기부제 답례품몰을 둘러싸고 일부 지자체의 과도한 홍보 관행이 위험수위에 오르자, 행정안전부도 일부 지자체의 ‘답례품 상단 독식’에 자칫 고향사랑기부제 취지가 반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급기야 지난 18일 관련 지침을 담은 공문을 전국 지자체에 전달하고 진화에 나섰다. 공문에는 ‘답례품 홍보를 위해 불필요하게 새로운 정보를 반복 입력하거나 과도한 홍보를 시도하는 행태를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행안부 관계자는 “반복적으로 내용을 바꿔 올리는 방식으로 노출을 늘리려는 시도가 계속될 경우, 제도 취지를 벗어난 과도한 홍보로 비칠 수 있다”며 “신규로 등록되는 답례품의 노출 기회를 축소시키는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관련 법령상 이런 행위에 대해 곧바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는 명시적 조항은 없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법적 조치나 제재 수단 마련을 검토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행안부는 지난 15일부터 지속적으로 고향사랑e음 홈페이지를 모니터링하며 해당 지자체 담당자들에게 재차 경고에 나서고 있다. 22일 오전에는 민간전문가와 함께 제도 개선과 각 지자체 화상회의를 진행했다.
지금과 같은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시스템을 다시 예전처럼 ‘랜덤 방식’을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단순히 무작위 정렬로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전문가를 섭외해 전체 구조를 점검한 뒤 단계적으로 ‘정상화’하겠다는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일부 지자체의 ‘과한 움직임’이 제도 전체에 부정적 이미지를 씌울 수 있다는 점에는 빠르게 제도 개선에 착수 할 것”이라며 "신규 등록증 제도와 같은 세부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영상 회의 등을 통해 민간 전문가와 지자체 의견을 함께 듣는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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