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만찬 불참…오피니언 리더 설득 외교
"요구 수용할 수 없어…합리적 타결 기대"
"3500억 달러 투자, 통화스와프 없인 어려워"
조지아주 단속 영향…비자 규제도 변수로
한미 간 3500억 달러 규모 대미 투자 패키지를 둘러싼 관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놓인 가운데, 이재명 대통령의 유엔총회 외교도 단기간 내 실질적 합의로 이어지지 못한 채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외교·재정 당국이 협상 환경 조성에 나섰지만, 협상의 초점이 분산됐다는 지적 속에 돌파구 마련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25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유엔총회를 계기로 미국 상·하원 의원, 오피니언 리더, 재무당국자 등 다양한 접점을 통해 우리 정부의 입장을 전달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대면은 무산됐고, 상무부가 아닌 다른 채널을 통한 외교적 설득전이 한미 간 실질적 합의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대통령실 복수의 고위 관계자들은 유엔총회 이후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관세 협상의 다음 주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협상의 시계가 APEC로 옮겨간 셈이다.
우리 정부는 통화스와프 없이는 3500억 달러 투자의 현금 집행이 IMF(국제통화기금) 금융구제와 유사한 외환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며 스와프 체결을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삼고 있다. 우리는 외환시장 안정이 선결되지 않으면 투자 이행 자체가 어렵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미국은 통화스와프 요청에 여전히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과 만나 한미 관세 협상과 관련해 "상업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한국과 미국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진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해 통화스와프의 필요성을 직접 설명했고 한국은 경제 규모와 외환시장, 인프라 측면에서 일본과 크게 다르다는 점도 강조했다. 통상 문제는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이 이끄는 상무부가 주된 창구이지만, 통화스와프는 재무부가 직접 관여하는 사안이라는 판단에 따른 행보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3일 뉴욕에서 6년 만에 유엔총회 연설을 한 뒤 각국 정상과 배우자들을 위한 환영 만찬을 주재했지만, 이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신 이 대통령은 미국 싱크탱크 지도부와 언론인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초청해 별도의 만찬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이들과 한미동맹 및 무역협상 동향, 한반도 문제, 국제 정세 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교착 상태인 관세 협상과 관련해서는 "우리가 미국 측 요구를 무조건 수용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하고, 한미 양국이 합리적인 타결책을 찾아내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상 간 직접 협상보다는 여론과 정책 형성에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의 소통을 택한 셈이다. 다만 실질 협상 주체와의 접촉이 이뤄지지 않은 만큼 이러한 소통이 협상 타결에 얼마나 기여할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최근 조지아주에서 발생한 우리 근로자 단속·구금 사태가 비자 문제에서 비롯된 만큼, 비자 제도 역시 대미 투자 실현의 제약 요인으로 부상하는 분위기다.
앞서 한미 정부는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관세 협상과 연계해 협의해온 바 있다. 이와 별도로 국내 주요 기업들도 지난 7월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150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통해 경제·기술 동맹을 강화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조지아주 현대차그룹과 LG에너지솔루션이 합작해 건설 중인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우리 근로자 단속·구금 사태가 벌어졌다. 이는 비자 문제에 따른 이민법 위반 이슈는 물론 한미 경제협력의 문제로도 불거졌다.
여기에 더해 관세 협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국내 산업계에서는 통상환경에 대한 불확실성이 다시 커지고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이날 김민석 국무총리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한 인터뷰에서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의미 있는 진전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3500억 달러 대미 투자의 불확실성을 언급했다. 김 총리의 발언은 투자 보류 가능성으로 해석됐다.
김 총리는 "프로젝트가 완전히 중단되거나 공식적으로 보류된 것은 아니다"라며 "비자 문제가 풀리기 전까지는 많은 인력이 미국에 신규 입국하거나 재입국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비자 문제가 지난 7월 무역협상에서 합의한 3500억달러 규모 대미 투자 펀드에도 불확실성을 드리우고 있다"고 했다.
김 총리 역시 '통화스와프'를 언급하면서 "미국과 투자를 약속한 3500억달러가 한국 외환보유액의 70% 이상에 해당한다"며 미국과 스와프 체결 필요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다만 총리실은 "김 총리의 발언은 현재 조지아주에서 진행 중인 투자와 관련된 것이고, 한미 간 논의되고 있는 3500억 달러 투자와는 무관한 내용"이라는 입장을 내며 논란을 수습했다.
우리 정부는 외환시장 안정이 협상의 핵심 변수임을 재확인하면서, 다음 협상 계기로 APEC 정상회의를 지목하는 입장을 이어가고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미국 뉴욕 프레스센터에서 가진 현지 브리핑에서 "외환시장에 관한 문제의 주무장관이 베센트 장관이고 대통령이 직접 그 포인트를 상세히 설명했기 때문에 이후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 협상 과정에서 (두 사람의 면담이) 중대한 분수령이라 본다"고 했다. 이어 "다음에 중요한 계기가 경주 APEC 정상회담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참석할 것이고 양국 정상 간에 면담이 있을 것이고, 그래서 협상하는 담당 장관들과 협상팀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계기"라고 덧붙였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도 전날 "경주 APEC 계기 한미 정상회담이 예상되고, 그 계기에 맞춰 관세협상을 포함한 여러 현안을 진전시키는 일이 따라오게 된다"고 했다. 다만 "사실 정상회담 계기에 맞춰 타결하라는 법은 없다"고 했다.
이 대통령은 3박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한국 시간으로 26일 귀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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