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구두와 세족의 갈림길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0.07.22 09:00  수정 2020.07.21 12:58

신발 투척 관습, “내 발 아래에 있는 못난 자식”

세족, 화해·용서·사랑·공경 등 섬김의 대표적 표현

국회를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신발을 벗어 던진 정창옥 씨가 지난 20일 오후 서울 동화면세점 앞에서 시민과의 대화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마음에 들지 않거나 경멸하고 싶은 상대에게 신발을 벗어 던지는 ‘신발투척’ ‘신발세례’가 우리나라에서 유행의 조짐을 보인다.


먼 지역의 습속(習俗)이지만, 그 뜻만 맞으면 유행은 국경과 시대를 쉽게 넘나든다. 중동에서 시작된 이 행태가 세계적인 화제가 된 것은 12년 전의 사건이다. 2008년 12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젊은 이라크 기자가 미국의 이라크 침공, 또 그로 인한 이라크 국민의 속절없는 살상 피해에 항의하기 위해 연단의 부시에게 신발 두 짝을 던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16일 오후 서울에 거주하는 57세의 정모씨가 국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자신이 신고 있던 헌 신발을 투척했다. 정씨는 “문 대통령이 가짜 평화를 외치고 경제를 망가뜨리면서 반성도 없고, 국민들을 치욕스럽게 만들어 (대통령도 치욕을) 직접 느껴보라고 신발을 던졌다”고 경찰에서 말했다. 그에 대한 구속영장은 19일 기각됐다.


이틀 뒤인 18일에는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항의하는 500여명의 시민들이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갖고, 신발을 벗어 하늘로 던져 올리는 집단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들은 “규제의 소급 적용은 위헌”, “세금이 아니라 벌금”등을 외쳤다.


영화나 코미디 등에서 여성들이 치근대는 남성에게 신고 있던 하이힐을 벗어서 가격하는 신(Scene)은 본 듯하나, 실제로 항의(抗議)나 불만(不滿), 경멸(輕蔑)의 염(念)을 담아 대상을 향해서 또는 집단으로 신발을 투척해 치욕(恥辱)을 느끼게 하는 사례는 올해가 처음인 듯하다.


신발 투척의 관습이 있는 중동 지역에서는 신발투척 행위가 상대에 대한 엄청난 모욕의 뜻을 지니고 있다. “내 발 아래에 있는 못난 자식” 대략 이런 의미다. 또 동남아 등지에서 슬리퍼나 신발을 벗어 상대를 후려치는 행위도 이와 비슷한 의미라고 해석한다.


도킨스(R. Dawkins)의 이론을 빌릴 필요도 없이 ‘문화는 모방(模倣)’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모방을 통해 유전적 요소와 관계없이 세대를 걸쳐 사람 간의 정보를 전달 할 수 있다고 한 그의 이론은 탁월하다. 바로 흉내 내기다.


2010년에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아일랜드에서, 2012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팔레스타인에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2012년 이집트 방문에서 신발과 토마토 공격을 당했고, 2014년에서 미국 내에서도 이런 봉변을 당했다. 2013년 일본 참의원에서, 2019년 존 하워드 호주 전 총리가 생방송 도중 신발 세례를 받았다고 외신이 전하고 있다. 전.현직 공직자에 대한 일반인의 좌절과 분노의 표현들이다.


우리말에도 “발톱에 낀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가정의 부부싸움에서 이 말이 등장하면 상대는 긴장해야한다. ‘나를 엄청 무시한다’, ‘가볍게 여긴다’라는 불편한 마음의 표현이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구두 투척이 있기 전 계란이나 밀가루 드물게는 인분(人糞) 투척이 있었다.


1991년 6월 정원식 총리서리가 대학생들로 부터 습격을 받아 밀가루, 계란 등이 범벅이 된 사건이 대표적이고 김영삼,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도 계란투척의 피해자가 된 일도 있었다. 멀리는 ‘국회오물투척사건’이라고 불리는 1966년 9월의 사건도 있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문을 진행하던 김두한(金斗漢) 의원이 비닐에 담은 인분을 정일권 국무총리 장기영 부총리와 장관 등이 앉아 있는 국무위원석으로 뿌렸다. 김 의원은 이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이런 각종 투척의 반대는 아무래도 세족(洗足)이 되겠다. 아랍 문화권에서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 무슬림들은 꼭 손과 발에 묻은 먼지를 씻어내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세족은 상대에 대한 지극한 공경의 의미를 지닌다. 성경(요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마친 뒤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라고 기록돼 있다.


상대의 발을 씻어주는 이러한 세족(maundy)의 의미는 종교적으로 ‘서로의 죄를 용서해 주고 허물을 덮어 주라’ 이지만, 일상적으로는 화해·용서·사랑·공경 등 섬김의 대표적인 표현으로 간주돼, 세계 곳곳에서 깊은 의미를 지닌 채 조용히 이루어진다. 스승과 제자, 부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요즘 들어 이러한 세족식에 대한 소식이 뜸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세상이 너무 험해지고 갈라진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아니면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인가?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신발투척이 성행할지 세족이 성행할지 지금으로서는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세족과 같은 아름다운 마음이 여름꽃처럼 곳곳에서 피어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글/강성주 전 포항MBC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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