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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열전②] '산처럼' 묵직한 김태호, '바람처럼' 치고나갈 타이밍은


입력 2020.07.14 05:00 수정 2020.07.23 13:27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만 41세 도지사, 6전 전승 신화 쓴 '선거의 남왕'

"우리 고향에서 대통령 나오지 말란 법 있느냐"

정통 PK 출신 대권주자…잠재력·파괴력 상당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자천타천으로 범보수 진영의 잠룡(潛龍)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사진 왼쪽 위부터 홍준표 무소속 의원, 김태호 무소속 의원, 나경원 미래통합당 전 원내대표, 유승민 전 의원, 원희룡 제주도지사,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 홍정욱 전 의원,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윤석열 검찰총장, 황교안 미래통합당 전 대표. 순서는 원내와 선수(選數)를 우선으로 하되, 선수가 같을 경우 성명 가나다순이다. ⓒ데일리안 사진DB

미래통합당 당헌 제73조는 대선 240일 전부터 대선예비후보 등록을 받도록 규정한다. 20대 대선은 2022년 3월 9일이다. 역산하면 통합당의 대선예비후보 등록은 내년 7월 12일부터다. 우리나라 적통(嫡統) 보수정당의 대권 레이스가 불과 1년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이다.


최근 통합당 내에서는 흥행과 감동, 확장성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는 대선후보 경선을 하자는 논의가 물밑에서 한창이다. 한 종합편성채널의 인기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인 '미스터트롯'처럼 하자는 목소리도 높다. 기류로 볼 때 대선후보 경선 일정이 당헌에 정해진 것보다 더 빨라지면 빨라졌지, 늦어질 가능성은 없어보인다.


김태호 무소속 의원이 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마산 합포구 마산어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김태호 무소속 의원이 자유한국당 경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했던 지난 2018년 6·13 지방선거 당시 마산 합포구 마산어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이처럼 통합당의 본격 대권 레이스를 1년 앞두고 범보수 진영 잠룡(潛龍) 중에 김태호 무소속 의원의 정중동(靜中動)이 정치권 안팎의 시선을 모은다.


경남 거창 출신으로 서울대 재학 시절 '거창의 불곰' 김동영 전 정무장관의 서울 자택에서 유숙하면서 일찍부터 정치를 배웠다. 1998년 만 35세에 경남도의원에 당선돼 2002년에는 거창군수, 2004년에는 역대 최연소(만 41세) 경남도지사에 당선되는 등 승승장구했다. 이명박·박근혜정권 때는 차기 대선후보 감으로 '어른'들의 눈에 들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그를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너무 짧은 시기에 승승장구하며 권력 최정상에 다가간 탓일까. 태양에 근접한 이카로스가 추락하듯이 김태호 의원도 부침을 겪었다. 김무성 전 대표를 업을 수 있을 186㎝ 허우대에 걸맞지 않게 처신이 가볍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국민과 당원들의 기대를 받으며 최고위원 후보들 중 사실상 선두를 했으나, 지도부에 있는 동안 내내 좌충우돌을 거듭했다.


이른바 '유승민 찍어내기' 사태 때가 정점이었다. 당시 김무성 대표와 김태호 최고위원, 김학용 대표비서실장은 "회의 끝내, 마음대로 해봐" "이렇게 할 수 있나. 무슨 이런 회의가 있느냐" "에이, XXX야, 그만해" 등 험한 말까지 주고받으며 집권여당의 공식 회의 석상에서 아수라장을 연출했다.


이후 김태호 의원은 와인처럼 숙성의 시기를 보냈다. 20대 총선에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당의 요청에 따라 질 줄 알면서도 출마했던 2018년 지방선거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잠행했다.


인고의 세월을 거친 뒤 이번 4·15 총선에서 고향 경남 거창합천함양산청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정치권 관계자는 "4개 군이 합쳐진 그런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면적이 넓고 조직 선거로 치러지기 때문"이라며 "'김태호가 정말 선거는 잘한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김태호 의원의 당선에는 자취를 감춘 경남 출신 '큰 정치인'에 대한 기대감도 있었을 것이다. 선거운동기간 내내 악전고투를 했던 김태호 의원은 막바지에 "우리 고향에서 대통령 나오지 말란 법 있느냐"는 사자후로 판을 엎었다. 오롯이 경남이 키워낸 정치인 김태호 의원에 대한 지역민들의 기대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김태호 의원의 강점은 정통 PK(부산울산경남) 출신이라는 점이 첫손에 꼽힌다. PK 대권주자는 더불어민주당이 호남 후보를 세워도 유리하고, 반대로 민주당이 PK 후보를 세웠을 때는 거의 유일한 '대항 카드'가 된다. 범용성이 높은 셈이다.


총선의 승패를 갈랐던 서울·수도권은 대선으로 가면 영향력이 낮아진다. 몰표를 주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극단적으로 100개 선거구에서 1표씩 앞서면 총선에서는 100석을 앞서지만, 대선에서는 그냥 100표 앞섰을 뿐"이라며 "대선은 표 쏠림 현상이 나타나는 영호남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영호남이라고 하지만 영남과 호남의 인구는 1대1로 등치되는 관계가 아니다. 대구경북과 광주전남북의 인구가 각각 510만 명으로 상쇄된다. 그러면 부산울산경남 790만 명은 고스란히 남는다. PK 후보가 대선에서 구도상 유리한 이유다.


야권 잠룡 중 PK 출신은 무소속 홍준표 의원(경남 창녕)·김태호 의원(경남 거창)과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부산) 셋 정도다. 안철수 대표는 PK에서 정치활동을 한 경력이 전혀 없다. 홍준표·김태호 의원은 둘 다 경남도지사를 지냈지만, 홍 의원은 대구 영남고를 나왔고 국회의원도 서울과 대구에서 했다. 김 의원은 거창농고 출신으로 경남도의원과 거창군수를 했으며, 국회의원 3선도 모두 경남에서 했기 때문에 PK 기반만 놓고보면 훨씬 탄탄하다고 할 수 있다.


선거에 강하다는 면모도 강점이다. 대선은 우리나라 정치세력이 사생결단을 벌이는 '가장 큰 판'이다. 이런 '큰 판'에 선거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 관료 출신으로 정치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내세우려 했다가 '판' 자체를 말아먹는 사례가 있었다.


김태호 의원은 1998년 지방선거 승리를 시작으로 2002년 지방선거·2004년 경남도지사 보궐선거·2006년 지방선거·2011년 국회의원 재선거·2012년 총선까지 6전 전승을 했다. 이 중 2011년 국회의원 재선거와 2012년 총선은 봉하마을이 있는 '친노의 총본산' 경남 김해을에서 거둔 승리라 '어려운 선거'에 임하는 실력도 검증됐다는 분석이다. 이후 2018년 지방선거 석패와 이번 4·15 총선 무소속 당선으로 총 전적은 7승 1패가 됐다.


인고와 숙성의 시기 거치며 '좌충우돌' 인상 극복
대권가도 위해서는 부족한 대중 인지도 제고해야
'불길처럼' 인지도 끌어올릴 타이밍은 언제일까


김태호 무소속 의원이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내던 2015년 8월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김태호 무소속 의원이 새누리당 최고위원을 지내던 2015년 8월 국회 정론관에서 20대 총선 불출마를 전격 선언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자료사진). ⓒ데일리안

'김태호 대망론' 현실화의 관건은 다른 대권주자에 비해 부족한 대중적 인지도의 제고다. 현재 계속해서 잠행을 유지하고 있는 김 의원의 '치고나갈 타이밍'과도 직결된 문제다.


김형오 미래통합당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대권주자들에게 험지 출마를 권하기 위해 경남을 찾았을 때, 당시 경남 밀양에서 농성(籠城)하던 홍준표 의원에게는 서울 험지 출마를 권했다. 경남 거창에서 농성하던 김태호 의원에게는 경남 창원성산이나 김해을 출마를 권했다.


경남 창원성산과 김해을도 험지지만 '영남 험지'다. 홍준표 의원 등 다른 대권주자들과는 달리 서울·수도권 험지 출마를 권유받지 못했다. 통합당 관계자는 "김태호 의원이 '한 급수 아래'로 대우받은 셈"이라며 "험지 출마 권유 자체가 유쾌하지 않은 일이지만, 특히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대권주자들과 같은 반열이라기에는 아직 '2%' 부족하다는 점은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난다. 쿠키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4, 6, 7일 사흘간 설문한 범야권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 따르면, 김태호 의원은 1.5%의 지지율을 얻었다. 홍준표 의원(8.5%)·안철수 대표(8.4%)·유승민 전 의원(6.8%)의 이른바 '홍안유'는 물론 오세훈 전 서울특별시장(6.2%)·황교안 통합당 전 대표(5.2%)·원희룡 제주도지사(4.6%)와도 적잖은 격차를 보였다.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지도자 선호도 조사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ARS가 아닌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된다. 사람이 직접 묻고 답하는 특성상 대권주자 보기를 불러주지 않고 자유응답을 받는다. 이 때문에 갤럽에서 1% 이상 잡히면 진정한 대권주자 반열에 올라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갤럽이 지난 7~9일 자체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범보수 진영에서는 홍준표 의원과 안철수 대표만 자유응답에서 '마의 1%'를 돌파했다. 정치인이 아닌 윤석열 검찰총장은 7%의 지지율을 받았다. 김태호 의원의 분발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여론조사와 관련해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손자병법에서 "나아갈 때는 바람처럼 날쌔게, 칠 때는 불길이 번지듯 맹렬하게, 머물 때는 숲처럼 고요하게, 버틸 때는 산처럼 묵직하게"라고 했다. 지금의 김태호 의원은 숲처럼 고요하게 산처럼 묵직하게 버티는 모양새다.


각종 현안이 어지럽게 펼쳐지는 최근의 정국에서 김태호 의원은 전략적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무소속 3선으로 생환한 이후 정치행보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아 한마디만 입을 열어도 크게 보도될텐데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김태호 최고가 사실 평소에 여의도에도 거의 머물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밖에서 열심히 전문가들을 만나며 '공부'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인고와 숙성, 공부를 통해 대권주자로서 준비된 면모를 언제 보여줄 것인가. 오랜 침묵을 깨고 일어선다면, 게다가 그 목표가 대권에 있다면 바람처럼 날쌘 모습, 온 천하를 불사를 듯한 맹렬한 모습을 보여줘야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숲처럼 산처럼 고요하고 묵직하게 버티고 있는 김태호 의원이 언제 바럼처럼 불길처럼 치고나갈 것인지, 그 타이밍에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정도원 기자 (united97@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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