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2차 지명 ‘되돌아보기’

입력 2007.08.16 15:28  수정

2001년부터 2차 지명에 스포트라이트 집중

흙속의 진주와 이변…2차 지명이 주는 매력

16일 서울교육문화회관서 열린 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2차 지명에서 대통령배 우승을 이끌었던 에이스 정찬헌이 전체 1순위로 LG트윈스의 지명을 받았다.

전통적으로 프로야구 신인은 지역연고 1차 지명자가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들에게 밀려난 선수들은 2차지명으로 떨어져 다시 구단들의 낙점을 기다려야 할 운명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2차 지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 2001년부터 1차 지명자가 1명으로 줄어든 것이 큰 원인 가운데 하나다. 게다가 구단 스카우트와 정보력은 2차 지명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2001년 이후를 중심으로 프로야구 2차 지명을 되돌아본다.



▲ 2차 지명이 낳은 스타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장종훈·김상진·박경완 같은 연습생 신화는 있었지만, 2차 지명 신화는 많지 않았다. 제도라는 이름의 거대한 벽이 2차 지명 신화를 원천봉쇄한 것.

1985년까지 각 팀은 연고선수를 무제한으로 지명할 수 있었으며 1986년부터 무제한 지명이 없어졌지만, 그래도 무려 10명이나 지명할 수 있었다. 1987년부터 1차 지명자가 3명으로 제한했지만, 자원이 많지 않은 한국프로야구 풍토에서 2차 지명자 중 신화가 나오기란 쉽지 않았다.

연습생들에게는 벼랑 끝 의지가 있었지만 정식선수인 2차 지명자는 아무래도 달랐다. 물론 신화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김응국·서용빈·장원진은 1990년대 2차 지명이 낳은 스타였다.

하지만 2001년부터 2차 지명 성공선수가 속출했다. 2001년 이대호를 시작으로 2002년 윤길현·신용운·조동찬·고영민, 2003년 이성열·강명구·전병두·나주환·이대형·우규민, 2004년 오재영·윤성환·이용규, 2005년 정의윤·양훈·오승환·윤석민·정근우, 2006년 류현진·민병헌·황재균·조용훈 등이 스타 및 주전으로 성장했다. 이대호·고영민·오승환·윤석민·정근우·류현진 등 한국야구를 짊어지고 나갈 선수들의 지명은 어떤 면에서 놀랍지 않다. 이들 모두 고교 및 대학시절 명성을 떨쳐 2차 1라운드에서 지명 받았기 때문.

하지만 이대형·우규민·이용규·민병헌·조용훈 등 2차 지명에서도 하위권으로 처졌지만 저마다 성장곡선을 그리고 있는 이들은 2차 지명이 낳은 진정한 흙속의 진주라 할만하다.


▲ 롯데의 2차 지명 불운

2001년 2차 지명에서 SK는 신생구단 자격으로 3명의 선수를 1라운드에서 우선 지명했다. 투수 김희걸을 필두로 조형식·김동건을 뽑았다. 미완의 대기로 평가받은 이대호를 SK가 지나친 것이었다. 롯데가 연고출신 이대호를 놓칠 리 없었다.

SK에 이어 지명권을 갖고 있던 롯데는 2차 1번으로 두말하지 않고 이대호를 지명했다. 이대호는 인고의 세월을 뒤로한 채 지난해부터 롯데를 넘어 프로야구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2001년 이대호 지명이 롯데 스카우트의 안목보다는 운이 좋았다는 것이 이후 4년간 2차 지명에서의 실패사례가 그대로 증명하고 있다.

롯데는 2003년부터 2006년까지 4년 연속 2차 전체 1번 지명권을 얻었다. 4년간 최하위를 한 유일한 덕이었다. 2001년부터 선택의 폭이 넓어진 2차 지명 전체 1번 지명권을 4차례나 연속으로 얻었다는 것은 롯데에게도 팀을 재건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2003년 김대우, 2004년 김수화, 2005년 조정훈, 2006년 나승현 모두 실망스럽다. 김대우는 메이저리그 진출을 이유로 롯데와의 계약을 거부했고 김수화·조정훈·나승현의 합작 성적은 105경기 169⅓이닝 2승15패16세이브 방어율 5.32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아직 이들은 젊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지명한 기간 동안 롯데가 기나긴 암흑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오히려 2004년 2차 2번·3번으로 지명한 최대성과 강민호의 성장이 놀라울 따름이다.


▲ 두산과 현대의 성공사례

두산과 현대는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은 팀들이다. 최근 몇 년간 시즌 전에는 하위권으로 평가받지만 정작 시즌 뚜껑이 열리자마자 기대이상의 성적으로 전문가들의 밥숟가락을 놓게 할 기세로 질주했다. 두 팀의 대표적인 공통점 중 하나가 바로 2군의 운영시스템이다.

1987년 최초로 2군을 운영하기 시작한 두산은 말할 것도 없다. 두산이 2군 운영을 맨 먼저 닦아 놓았다면 현대는 2군을 효율적으로 디자인하며 활용했다. 1996년 창단하자마자 원당구장을 훈련장으로 마련하며 2군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스타들이 배출되는 근간에는 2군이 자리하고 있는 것.

하지만 2군의 근간에는 또 2차 지명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6년간 두산이 지명한 2차 지명자 중 주력멤버로 발돋움한 선수로는 김상현·고영민·김승회·오재원·금민철·민병헌 등이 있다. 2005년 다니엘 리오스를 영입할 때 KIA에 건네준 전병두도 원래 두산이 2차 지명한 선수였다. 현대도 만만치 않다. 현대는 모래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 못지않게 막막했던 2001년 이전의 2차 지명에서도 조용준·송신영·신철인이라는 막강 불펜투수들을 차례로 발굴해내는 안목을 보였다.

지난해 입단한 장원삼도 2002년 2차 11번, 정확히 87번째로 지명된 선수였으며 조용훈·황재균도 2차 중·후반에 지명됐다. 하위 라운드에서 재미를 본 것에서 나타나듯 어느 정도 운도 작용했지만, 인천·경기 연고를 포기한 후 올해로 무려 6년째 1차 지명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성공작이라 할만하다.


▲ 의외와 이변이 주는 매력

스포츠세계에서 의외와 이변만큼 재미있는 일은 없다. 프로야구 2차 지명에서도 의외와 이변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지난 2년은 2차 지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충격과 공포였다. 한쪽에서는 쾌재를 불렀고 나머지 한쪽에서는 자신들이 지명한 선수들이 언젠가 반전을 일으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있다.

2005년 오승환, 2006년 류현진의 그 충격과 공포의 중심에 서있다. 이들을 지명한 삼성과 한화는 향후 최소 10년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지만 그들을 지나친 팀들에게는 가슴시린 일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2차 지명 당시만 하더라도 오승환과 류현진의 지명을 놓고 누구도 의외라는 코멘트를 달지 않았다. 지명 당시에는 모두 합당한 선택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스카우트들은 모험운전보다는 안전운전을 우선시 삼는다. 팀 전력에 따라 즉시 전력감과 성장 가능성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서지만 대체로 부상선수는 피하는 경향이 강하다.

오승환과 류현진은 모두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은 부상 경력이 있었다. 야수가 아니라 투수라는 점에서 부상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컸다. LG와 한화가 오승환을 포기하고, 롯데가 류현진을 지나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선수의 부상과 소문에 대한 확실한 점검과 확인 그리고 결정은 2차 지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건이다. 삼성은 오승환의 부상상태를 면밀하게 점검했고 한화는 류현진을 둘러싼 소문이 거짓임을 알아냈다. 행운은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라 스스로 좇아야 잡을 수 있는 것이었다.

☞2007 프로야구 ‘기대 이상의 선수들’①


데일리안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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