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 대선, 연예인이 안 보인다

이슬기 기자

입력 2017.05.05 06:00  수정 2017.05.05 08:11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위축, 대세론 정국에서 특정 후보 지지 필요성도 낮아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가 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에스엠(SM) 아티움을 방문해 180도 원형 화면으로 영상이 비치는 에스엠 극장에서 김영민 사장(왼쪽 두번째)과 배우 김민종씨(오른쪽), 가수 슈퍼주니어 이특씨(오른쪽 두번째) 등과 한류 문화산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데일리안

“잘 생겼다!”

19대 대통령 선거를 닷새 앞둔 4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삼성동 코엑스 SM아티움에 등장하자, 앳된 얼굴의 소녀가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곳곳에서 스마트폰 플래시가 터졌다. 건물 안에선 아이돌 그룹 ‘엑소’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친구들과 코엑스를 찾은 15세 여학생은 ‘엑소’ 멤버인 백현 씨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일찍부터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근데요, 문재인 아저씨는 여기 왜 온 거에요?”라고 물었다.

문 후보는 이날 SM아티움에서 열린 '비상하라! 한류문화콘텐츠, 현장의 목소리를 듣다' 간담회에 참석해 문화예술인들의 고충을 들었다. 이 자리에는 김영민 SM엔터테인먼트 총괄사장을 비롯해 소속 배우 김민종 씨와 그룹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씨, 작곡가 김이나 씨 등이 참석했다.

다만 유명인사로서 문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은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한류문화산업에 대한 정부 차원의 제도적 지원, 소규모 기획사를 위한 법적 장치, 실업급여 적용 등 업계종사자들의 생계 문제와 공정한 제작 관행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자리로 진행됐다. 이특 씨도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듯 보여 선거법에 걸릴지 모른다”며 평소 선보이던 손 인사도 생략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왼쪽부터), 자유한국당 홍준표, 바른정당 유승민, 정의당 심상정,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후보가 2일 오후 서울 상암동 MBC 스튜디오에서 선거관리위원회 주최로 열린 마지막 TV토론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데일리안

‘문화계 블랙리스트’ 영향, 연예인도 후보도 ‘몸조심’

'문화계 블랙리스트' 파문 때문일까. 이번 대선 무대에선 연예인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동안 대선 정국이면 어김없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 모임이 등장했다. 특히 진보정당의 경우, 당내 경선 시즌부터 ‘연예인 응원단’이 결성돼 지역순회 경선 현장을 채우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제 지난 2012년 대선에선 배우 박상원 씨를 비롯해 인기 트로트 가수인 김흥국·설운도·현미 씨 등 100여명의 연예인들이 유세단을 결성해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또한 배우 문성근·명계남 씨와 방송인 김제동 씨 등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문 후보에게 힘을 실었다.

2002년 대선은 한층 화려했다. 가수 안치환·전인권·윤도현 씨와 자우림·크라잉넛을 비롯해 배우 권해효 씨 등이 노무현 후보를 공개 지지하며 ‘연예인 홍보단’ 구성에 앞장섰다. 경쟁 상대였던 이회창 후보 측에는 배우 이덕화·최수종·전인화·김혜수·송혜교 씨는 물론, 가수 조용필·태진아·신성우 씨 등도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하지만 현 정권의 '문화계 블랙리스트'를 비롯해 비선실세 최순실 씨의 관리 아래 연예인으로 구성된 '회오리 축구단' 논란이 거세게 인 후, 대중문화업계 종사자들이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현상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는 블랙리스트 논란을 거치면서 과거에 비해 위축된 문화계의 분위기를 방증한다. 또한 특정 후보를 지지해 불이익을 당하거나, 대중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가수 전인권 씨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를 지지했다가 콘서트 환불이 이어졌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씨는 자신이 문 후보를 지지해 방송 섭외 시 불이익을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자연히 후보 측도 지지를 요청하기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대선 후보를 패러디한 TV프로그램과 희극인들이 주목받고 있다. tvN 방송화면 캡처

‘희극인 패러디’가 전부...후보 자녀들 전면에 등장

최근에는 연예인들의 지지 선언 대신, 각 후보들을 패러디한 TV 프로그램이 등장해 눈길을 끄는 추세다. 공개적으로 특정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희극인들이 후보들의 외모와 말투 등을 본 따 대중으로 하여금 정치에 대한 관심도를 높인다는 취지다.

아울러 후보들로서도 희극인을 통해 한층 편안하게 유권자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됐다. 문 후보는 최근 한 TV프로그램에서 자신을 흉내 낸 ‘문재수’ 캐릭터의 김민교 씨를,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레드준표’를 연기한 정이랑 씨를 만났다. 안 후보와 유 후보는 각각 ‘안찰스’와 ‘유목믹’ 캐릭터의 정상훈·장도윤 씨를 만났고, 심 후보를 패러디한 ‘심불리’(희극인 이세영 씨)도 등장했다.

한편 연예인이 떠난 자리를 대선 후보의 자녀들이 채우고 있다. 특히 국민의당 유승민·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경우, 각각 딸 유담 씨와 아들 이우균 씨가 화려한 외모로 대중의 관심을 사면서 부모의 유세를 적극 돕고 있다.

앞서 경선 현장에서부터 모습을 드러냈던 유담 씨의 영향으로 유 후보는 SNS상에서 이른바 ‘국민 장인’으로 등극했고, 아들 사진이 공개된 후 여성 네티즌들로부터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얻은 심 후보는 "유권자가 늘어나야 하는데 며느리감만 늘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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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wisdom@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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