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감의 선의가 연체를 낳아서는 안 된다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6.10.03 07:07  수정 2026.10.03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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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감면만으로는 차주의 상환능력과 경제활동 복귀 보장하기 어려워

일률적 탕감, 형평성·도덕적 해이·재정 부담 초래…맞춤형 조정 절실

英·美처럼 감면은 상담·상환계획·이행관리와 결합되는 게 바람직

해당 이미지는 AI로 제작됨.

코로나 19 충격과 고금리·고물가의 장기화는 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를 채무위기로 몰아넣었다.


사업 실패가 개인 파산으로 이어지고, 채무불이행이 다시 경제활동의 단절로 연결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공적 채무조정 제도가 필요하다.


2022년 10월 출범한 새출발기금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90일 이상 연체한 부실차주에게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채권을 매입해 원금조정을 포함한 채무조정을 제공하고, 연체 90일 미만의 부실 우려 차주에게는 신용회복위원회를 통해 금리·상환조건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대규모 원금감면이 실제 상환능력 회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연체가 발생한다면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재점검해야 한다.


핵심 문제는 채무조정이 빚을 줄이는 데 치우치고, 차주의 소득·재산·사업 수익성·현금흐름·재기 가능성에 대한 정교한 진단과 사후관리가 충분히 결합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률적 감면은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논란 및 전략적 연체 유인을 낳을 수 있으며, 낮은 채권 회수는 결국 공적 재원의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


우선 높은 원금감면이 실제 상환능력 회복과 충분히 연결되지 못할 수 있다.


채무조정의 목적은 빚을 없애는 데 있지 않고, 채무자가 감당 가능한 상환계획 아래 다시 정상적인 경제활동으로 복귀하도록 돕는 데 있다.


매출이 회복되지 않고 사업의 수익구조가 개선되지 않았으며 생활비와 사업자금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원금만 크게 깎아주면, 남은 채무조차 다시 연체될 수 있다.


또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및 도덕적 해이 발생도 문제다.


성실하게 원리금을 갚기 위해 소비를 줄인 자영업자와 연체 이후 큰 폭의 감면을 받는 차주 사이의 격차가 커지면 금융규율은 약화될 수 있다.


따라서 재산·소득·사업 지속가능성을 충분히 확인하지 않은 채 일률적 감면이 이뤄지면, ‘어려워지면 기다렸다가 조정받는 편이 유리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사후관리의 공백도 해결해야 한다. 채무조정은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아니다.


연체율은 조정 이후에도 소득·매출·고용·건강·주거·사업경쟁력 문제가 지속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숙박·음식점업, 도소매업, 개인 서비스업처럼 경기·상권·원가 변동에 취약한 업종의 경우 채무감면만으로는 차주의 회생 가능성을 높이기 어렵다.


채무조정 직후 일정 기간에는 상환 이행, 매출 변화, 세금·사회보험 납부, 추가 대출, 생활비 부족 등을 점검하고, 이상 징후가 나타나면 재상담과 사업·고용 지원을 연계해야 한다.


해외에서 성공적으로 평가받는 채무조정 제도는 단순 탕감보다 상담·상환계획·보호·이행관리를 결합한다는 시사점이 있다.


영국의 ‘브리딩 스페이스(Breathing Space)’ 제도는 과중 채무자에게 최대 60일 동안 독촉·강제집행을 중지하고 대부분의 이자와 수수료 부과를 동결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이는 무조건적 상환 면제가 아니다. 이용자는 공인된 채무상담기관의 상담을 거쳐야 하며, 보호기간 중에도 가능한 범위에서 채무와 생활비를 계속 납부하면서 지속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으면 채무상담사가 보호조치를 취소할 수도 있다. 영국 사례의 핵심은 ‘시간을 주되, 계획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미국의 개인회생 제도인 챕터13도 시사점을 준다. 개인사업자를 포함한 일정 소득이 있는 개인은 법원 감독 아래 통상 3~5년간 채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분할상환하는 계획을 제출할 수 있다.


즉, 채무감면 혜택은 일회성 선물이 아니라, 소득·재산·생계비를 공개하고 이행 가능한 변제계획을 성실히 수행하는 조건과 결합된다.


우리도 대폭 감면 여부만을 논쟁할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어느 정도의 감면을 제공하고 어떤 회복 경로를 요구할 것인가’에 초점을 옮겨야 한다.


불가피한 충격으로 무너진 차주에게는 충분한 감면과 신속한 보호가 필요하다.


반면 상환능력이나 처분 가능한 재산이 확인되는 차주에게까지 동일한 감면을 적용하는 것은 정책의 공정성과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해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새출발기금은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에게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이다.


고금리와 경기침체,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충격 속에서 모든 연체를 개인의 무책임으로만 볼 수는 없다.


채무조정은 경제적 실패가 인생 전체의 퇴출로 이어지는 것을 막고, 노동시장과 소비시장으로의 복귀를 돕는 중요한 정책 수단이다.


하지만, 선의의 제도는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대규모 원금감면 이후에도 재연체가 반복되고 회수율이 낮다면, 정책의 초점은 ‘더 많이 감면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다시 연체하지 않게 할 것인가’로 바뀌어야 한다.

ⓒ

글/ 서지용 상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jyseo@smu.ac.kr/rmjiseo@hanmail.net)


※외부 필진 칼럼입니다.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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