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인야구 선수에 '7이닝 92구'…볼넷 '전무'
실력 안 되면 용규놀이라도 하던가…프로의 오만함인가
25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슈퍼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0-5로 패한 한국 선수들이 아쉬운 표정을 보이고 있다.ⓒ연합뉴스
한국 야구대표팀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슈퍼라운드 1차전에서 일본에 0-5로 완패하며 국민의 분노를 자아냈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패배했는데 안타까워하진 못할망정 왜 화를 내느냐고요?
일본은 야구강국입니다. 양국 프로리그를 놓고 비교한다면 우리가 일본에 밀리는 건 당연합니다. 일본은 야구의 역사도 우리보다 한참 선배고, 수천 개에 달하는 중·고교 야구팀을 기반으로 하는 선수 풀, 선수 육성 시스템, 시장 규모에 있어서도 우리보다 한참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25일 슈퍼라운드 1차전에서 우리를 누른 일본 대표팀은 사회인야구리그에서 선발한 선수들입니다. 일본은 자국 프로리그 운영에 차질을 빚는다는 이유로 아시안게임에는 프로야구 선수들을 출전시키지 않습니다. 반면, 우리는 병역 혜택을 노리는 군미필 선수 위주로 프로 선수들이 모여 팀을 구성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아시안게임에서 4연속 우승하고 올해 5연패를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으로 생각한 이유도 이 때문이죠.
사회인야구팀은 말 그대로 전업 야구선수가 아닌 사회인들로 구성된 팀입니다. 25일 경기에서 한국 타선을 7이닝 무실점으로 꽁꽁 묶은 일본팀 선발투수 히구치도 일본 제지회사인 오지 홀딩스의 시설부 직원으로, 낮에는 청소나 물건 운반 등 회사업무를 하고, 퇴근 후에나 연습을 할 수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사회인야구팀 선수들에게 ‘밥 먹고 야구만 하는’ 프로 선수들이 깨졌으니 니편내편 따지기 전에 일단은 욕을 먹는 게 당연한 일이겠죠.
나아가, 그런 거시적 상황보다 경기 내용을 보고 분노한 이들도 많습니다.
류지현 야구대표팀 감독을 비롯, 많은 전문가들이 일본전 패배의 원인으로 ‘선발투수 히구치 공략 실패’를 꼽습니다.
이 선수의 투구 내용을 볼까요? 7이닝 동안 22타자를 상대해 92개를 던져 안타 4개를 맞고 실점은 하나도 내주지 않았습니다.
선발투수가 6이닝 동안 3점 이내로 내주면 잘 던졌다고 ‘퀄리티스타트’라는 딱지를 붙여줍니다. 같은 조건에서 이닝이 하나 늘어나면 ‘퀄리티스타트 플러스’가 됩니다. 히구치는 7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으니 특급 활약을 한겁니다.
25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야구 슈퍼라운드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일본 선발 히구치가 역투하고 있다. ⓒ 뉴시스
자, 그럼 히구치가 특급 활약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선수들이 어떤 도움을 줬는지 살펴봅시다.
7이닝 동안 히구치의 투구수는 92개였습니다. 개인별 차이는 있지만 통상적으로 선발투수의 한계투구수를 100개 내외로 잡습니다. 똑같이 100개를 던지더라도 안타를 많이 맞고 볼넷을 많이 내주면 5이닝도 못 버티는 거고, 상대 타자를 헛방망이질이나 범타로 돌려세우는 경우가 많으면 더 오래 버티는 거죠. 9이닝을 선발투수 혼자서 막는 완봉, 완투는 프로리그에서도 흔치 않은 일입니다.
이 때문에 상대 투수가 강하다고 생각하면 타자들은 초반 최대한 공을 많이 던지게 해서 진을 빼놓습니다. 되도록 짧은 이닝에 한계투구수에 도달하게 만들어 투수를 갈아 치우게 만드는 거죠.
전 프로야구 선수 이용규의 ‘용규놀이’가 이래서 나온 용어입니다. 상대 투수의 공을 최대한 지켜보다가 볼카운트가 늘어나면 그때부터 계속해서 파울을 쳐내는 겁니다. 그렇게 한 타자에게 10구 이상 던지며 투구수가 늘어나면 투수 입장에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입니다. 소화할 수 있는 이닝 수가 줄어들 뿐 아니라 멘탈 측면에서도 큰 손해를 봅니다.
그동안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우리 야구대표팀, 그러니까 올해 대표팀의 선배 선수들은 미국이나 쿠바, 일본 프로야구 대표팀과 같은 강팀을 맞아 ‘용규놀이’를 선보이며 상대 투수의 멘탈을 뭉개고 객관적 전력보다 뛰어난 성적을 거두며 큰 성원을 받았습니다.
25일 경기에서 일본 선발 히구치가 92개의 공을 던지며 상대한 우리 타자는 22명이었습니다. 타자 한 명당 공을 4개 밖에 던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 대표팀이 7회까지 히구치를 끌어내리지 못한 겁니다.
류지현 감독은 이날 경기 패배 후 “전력분석팀과 제가 일본에 가서 전력 분석을 할 때 가장 에이스 역할을 할 수 있는 선수가 히구치라는 부분을 알고 있었다”며 “굉장히 준비를 많이 했는데 생각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에이스 투수임을 미리 인지하고 준비까지 했는데 22명의 타자가 7이닝 동안 달랑 92개의 투구수에 막혔다? 심지어 단 하나의 볼넷도 없다? 이건 ‘실력’은 둘째 치고 ‘태도’의 문제라고 밖에 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인 야구팀 출신 투수를 상대로 볼넷을 기다리거나 용규놀이까지 해가며 절박하게 상대할 수 없다’는 프로선수로서의 (쓸 데 없는) 자존심이 히구치의 특급 활약을 이끈 셈입니다. 팀 차원에선 준비를 했더라도 선수들 개개인의 플레이에는 히구치를 얕보는 오만함이 은연중에 녹아들어 있었음을 보여준 경기였다고 생각됩니다.
25일 오후 일본 아이치현 도요하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남자 야구 슈퍼라운드 1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에서 0-5로 일본에 패한 한국 선수들이 굳은 표정으로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 뉴시스
문제는 또 있습니다. 7이닝을 막아내려면 21명의 타자를 아웃시켜야 합니다. 여기에 안타나 볼넷 등으로 루상에 나간 타자를 더한 숫자가 투수가 상대한 타자의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날 히구치가 상대한 한국 타자는 그보다 적은 22명이었습니다.
루상에 나간 타자가 후속 타자의 병살타로 횡사한 횟수가 많다는 얘깁니다. 이날 한국 대표팀은 3개의 병살타를 기록했습니다.
타자가 매번 안타를 칠 순 없습니다. 세 번 중 한 번만 쳐도 타율 3할 이상의 강타자라는 소릴 듣습니다. 잘 치는 타자도 타격감이 떨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야구 경기에서 단 한 점이 아쉬운 상황에서는 팀의 중심인 4번타자에게도 번트를 대도록 합니다.
한일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작전이나 팀배팅보다는 개인의 실력에 기대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병살타로 이어지며 경기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습니다. 상대가 사회인야구 대표팀이라고 해서 얕본 것은 아닌지 짚어볼 대목입니다.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경기에 나갔으면 이기는 게 최선이지만, 간혹 진 경기도 박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일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잘 싸우지도 못했습니다. 심지어 열심히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한국이 결승전에 오르려면 일단 26일 경기에서 중국을 이겨야 합니다. 이후 다른 팀간 경기와 득실차 등 경우의 수를 따져봐야겠지만 결승에서 또다시 한일전이 성사될 가능성도 높습니다.
‘낮에 일하고 저녁때 야구하는 아마추어 출신으로 구성된 대표팀이 프로 선수만으로 구성된 타국 대표팀을 두 차례 누르고 금메달을 차지한다’. ‘인간승리’ 클리셰가 물씬 풍기는 일본 스포츠만화 스토리에 딱 들어맞습니다.
우리 대표팀이 오만함을 버리고 절박함을 장착하지 않는다면 그 만화에 ‘찌질한 악역’으로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 경기부터는 절박한 용규놀이와 자존심을 버린 팀플레이, 흙으로 범벅이 된 유니폼을 볼 수 있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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