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통과 화물선 12척뿐…전쟁 전엔 하루 125척
유조선들 위치추적장치 끄고 ‘암흑 항해’
중동 원유 수송 하루 1710만 배럴…사우디 수출도 급반등
이란 상선 한 척이 호르무즈 해협의 게슘섬 인근에서 피격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AP/뉴시스
미국과 이란의 충돌로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에서 기묘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선박은 자취를 감췄지만 해협을 빠져나오는 원유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조선들이 위치추적장치를 끈 채 이른바 ‘암흑 항해’에 나서면서 겉으로 드러나는 선박 통항량과 실제 원유 수송량 사이에 큰 차이가 발생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지난 주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원유·원자재 운반선은 불과 12척으로 집계됐다. 전쟁 이전 하루 평균 약 125척이 오갔던 것과 비교하면 극히 적은 수준이다. 그러나 실제 원유 수송량은 이보다 훨씬 많았다. 원유 분석업체 케이플러에 따르면 지난 13일 시작된 일주일 동안 유조선 13척이 총 3400만 배럴의 원유를 싣고 호르무즈 해협을 빠져나갔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사우디산 원유였다.
비밀은 선박자동식별장치(AIS)에 있다. 상당수 유조선이 이란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위치와 항로를 실시간으로 알리는 AIS를 끄고 해협을 통과하고 있다. 레프솔의 맥스 테이는 AIS 신호가 사라진 호르무즈를 사실상 ‘블랙박스’에 비유했다. 업계에서는 실제 호르무즈 원유 수송량을 하루 600만~1000만 배럴 이상으로 추산한다.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아 통과하는 선박도 늘면서 화면에서는 보이지 않는 원유 수송이 이어지는 셈이다.
특히 사우디의 동서횡단 송유관이 후티 공격으로 타격을 입으면서 역설적으로 호르무즈의 중요성은 더 커졌다. 홍해 얀부항을 통한 수출이 막히자 사우디가 다시 호르무즈를 통한 선적을 늘렸기 때문이다. 사우디 원유 수출은 지난달 하루 240만 배럴까지 떨어졌다가 이달 400만 배럴 이상으로 회복했다. JP모건은 최근 10일간 중동 지역 전체 원유 수송량이 하루 평균 1710만 배럴로, 지난해 평균보다 소폭 감소하는 데 그쳤다고 분석했다. ‘봉쇄된 바다’ 아래에서 거대한 원유 수송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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